비밀감시 프로그램 시인… 의회-법원 승인 `우회'
정보제공 국제금융정보망 미법원 피소… 정쟁화 조짐
백악관은 '테러 척결'을 위해 장기간 국제 금융거래를 은밀히 추적해온 것이 공개돼 물의를 빚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후퇴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존 스노 미국 재무장관은 23일(이하 현지시각) 성명을 내고 재무부가 국제금융정보망에서 조회하는 비밀 감시 프로그램을 운영해왔음을 시인하면서 그러나 이것이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는데 극히 중요한 도구의 하나"라고 강조했다.
스노 장관은 프로그램 운영이 "미국인의 개인 금융정보를 체크하기 위해서거나 '낚시용'이 아닌 테러 세력을 겨냥한 것일 뿐"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앞서 뉴욕 타임스와 월스트리트 저널은 미중앙정보국(CIA)이 알-카에다의 서남아 조직 책임자로 추정되는 인물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국제금융정보망인 `국제은행간금융텔레커뮤니케이션'(Swift)을 활용했다고 폭로했다.
전세계 200여개국에서 모두 7천800개가 넘는 은행과 증권회사, 증권거래소 및 기타 금융기관들이 참여하고있는 Swift는 하루 약 6조달러 규모의 거래에 관한 정보가 유통되는 창구로 벨기에에 본부를 두고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Swift측은 23일 낸 성명에서 "필요할 경우 관련 정보를 (미측에) 제공해왔다"고 확인하면서 "불법적인 국제금융거래를 막기 위해 협력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Swift측은 "미측에 제한된 정보를 제공해왔다"고 확인하면서 그러나 "고객의 비밀을 지킨다는 원칙은 어긴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또 Swift 운용을 감시하는 10개 중앙은행에 미 재무부 감시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보고했다고 덧붙였다. 10개 중앙은행에는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일본은행 및 영국 중앙은행인 뱅크 오브 잉글랜드 등이 포함된다.
블룸버그는 미 재무부가 9.11 테러를 계기로 미국인 금융거래를 감시하기 위한 비밀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해왔다면서 건당 1만달러가 넘는 거래는 의무적으로 보고토록 돼있다고 전했다. 또 의혹이 있는 거래는 예외없이 당국에 보고토록 돼있다. 은행의 경우 3천달러 이상의 거래 정보를 보관할 의무도 부과돼있다.
재무부 프로그램은 그러나 의회나 법원의 승인없이 미국 대통령의 `비상경제권'을 근거로 금융거래정보를 조회할 수 있도록 돼있어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는 물론 법적 근거도 희박하다는 비판이 제기돼왔다. 딕 체니 미국 부통령도 23일 시카고에서 열린 공화당 정치자금 모금 회동에 참석해 국제금융거래정보 조회를 시인하면서 그러나 이것이 "테러와의 전쟁을 치르는데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백악관 대변인은 앞서 뉴욕 타임스가 처음 재무부 감시 프로그램을 폭로한데 대해 "비밀 분류된 정보가 공개됨으로써 미국인의 안전이 다시한번 위협받게 됐음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논평했다. 그러나 이에 어떻게 대응할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미국 민주당은 백악관이 테러 척결을 명분으로 앞서 전화를 불법 도청한 것이 파문을 빚은데 이어 개인 금융거래정보까지 CIA가 비밀 추적해왔음을 상기시키면서 정치 쟁점화할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Swift의 정보 제공에 대해 보상과 처벌을 요구하는 소송이 23일 시카고 연방지법에 제출된 것으로 나타나 귀추가 주목된다. 워싱턴 소재 이언 워커란 인물은 변호사를 통해 공개한 소장에서 그간 비밀 감시 프로그램에 의해 피해를 본 모든 미국인에게 보상하라고 요구했다. 그는 정보 제공이 미국법 자체를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그러나 워커의 나이와 직업 등은 공개하지 않았다. 선재규 기자 jksun@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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