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7.18 11:58
수정 : 2006.07.18 11:58
블레어, 중동특사 문제놓고 부시에 끌려다닌 인상
러시아 주요8개국(G8) 정상회담에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점잖지 못한 발언들이 '생중계'되며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부시 대통령과 '격의 없는' 수준의 대화를 나눴다기보다 부시 대통령에게 일방적으로 끌려다닌 듯한 모습도 여과 없이 드러나 논란을 빚고 있다.
18일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부시 대통령이 블레어 총리에게 '생중계'의 첫 대목을 "어이, 블레어(Yo, Blair)"로 시작했다는 점부터가 정상간 대화로서 적절한 수준이었는지 의심을 사기에 충분한 부분이다.
스카이뉴스에 의해 작성된 녹취록에서 블레어 총리는 "말했듯이 내가 현재 상황이 어떤지를 한번 봤으면 아주 좋겠습니다. 하지만 빨리 이뤄지지 않으면 일이 꼬일 것이라고 당신이 말했었죠"라며 중동 특사로 활동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은 "조금 있다가 콘디(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가 갈겁니다"라며 블레어 총리의 희망을 매몰차게 꺾어버렸다.
이에 블레어 총리는 "하지만 그게, 그게 문제로군요. 하지만 당신이, 당신이 함께 하는데 시간이 필요할 거라고 본다면요"라고 말을 더듬으며 자신의 뜻을 굽히는 인상을 줬다.
뒤이어 블레어 총리가 이 문제를 다시 언급하자 부시 대통령은 "맞아요. 그건 절차입니다. 그녀에게 당신의 제안을 말했어요"라고 되받으며 블레어 총리의 말을 막아버렸다.
이번 G8 정상회담에서 블레어 총리가 당한 '수모'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블레어 총리는 이번 회담에서 지구 온난화 문제를 제기하려 했지만 미국과 러시아가 주도한 에너지 담론 속에 온난화 문제는 쏙 들어가고 만 것.
적절한 수준에서 러시아의 인권 문제를 제기하려던 블레어 총리의 시도 역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재치있는 농담'을 이용한 역공에 휘말려 버렸다.
블레어 총리는 회담 종료 이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전날 오찬 직전까지도 세계무역기구(WHO) 협의를 되살려야 한다는 자신의 주장이 묵살되는가 했지만 오찬 석상에서 경제협력에 관한 자신의 희망이 겨우 되살아났다고 실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 무대에서 '세계 정치인'으로 발돋움하려는 블레어 총리의 꿈이 이뤄지기에는 아직 많은 고비를 넘어야 할 전망이다.
블레어 총리가 중동 지역에 국제 평화유지군 파견을 주도하고 있지만 자국 안에서조차 파병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불식시키지 못하고 있는데다가 원칙적 동의를 보이고 있는 유럽 국가들 역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숀 매코맥 미 국무부 대변인은 라이스 장관이 중동 순방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히면서도 라이스 장관이 어떤 타개책을 도출할 것이라는 기대에는 부정적 시각을 보였고, 많은 전문가들도 라이스 장관의 중동 방문이 즉각적인 결과를 내지는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고 AFP 통신이 전했다. 한 국제문제 분석가는 라이스 장관의 이번 중동 방문을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로 표현하기도 했다.
김세진 기자
smile@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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