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6.07.26 14:10 수정 : 2006.07.26 14:10

많은 사람들이 '미국은 문화의 용광로다'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세계 각 국의 음식이 어우러져 미국의 음식이 되어 가는 데서 그 말을 실감하였다. 미국에서는 번화한 상가 지역이나 혹은 길가 모퉁이의 작은 상가에서 세계 각 국의 음식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다소 보수적인 지역에 속하는 오하이오도 이러할 진대, 보다 개방적인 다른 주에서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미국에 온 지 몇 달 안 됐을 때 있었던 일이다. 미국의 문화에 대하여 관심이 많았던 나는 미국에 대하여 보다 많이 알고자 하는 바람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질문하곤 하였다. 그 중의 한 가지가 "가장 좋아하는 미국 음식 (American Food)이 무엇인가?"였다. 그런데 어떤 한 친구는 심드렁하게 "프렌치프라이 (French Fries)"라고 대답하였다. 나는 이 친구가 내 질문을 잘못 이해한 것으로 생각하고, "유럽음식 말고!"라고 하면서 재차 물었다. 그러나 그 후의 대답도 다르지 않았다.

왜 미국 사람들이 흔히 먹는 감자튀김이 "프렌치프라이 (French Fries)"라고 불리는 지는 잘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프렌치프라이는 프랑스 음식 이름이 아니라 미국 음식의 하나라는 것이다. 프렌치프라이는 독일계 이민자가 만들었다는 '햄버거'와 함께, 너무도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미국 인스턴트 음식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제 누구도 햄버거 옆에 있는 감자튀김을 보고 유럽의 문화를 연상하지 않는다.

또 이탈리아 음식인 '라자니아', 일본 음식인 '데리야끼 치킨', 멕시칸 음식인 '타코', 중국 음식인 '제네럴 추즈 치킨'(이것은 우리가 탕수육이라 부르는 것이다) 등도 미국인들이 일상에서 자주 먹는 음식들이 되었다. 이밖에도 내가 이름을 알지 못하는 여러 나라의 수많은 음식들이 미국인들의 식탁에 오르고 있으며 인도, 타이, 베트남, 몽고, 한국, 이디오피아, 소말리 등 세계 각 나라의 음식을 소개하는 레스토랑들 또한 미국인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미국문화를 대표하는 패스트푸드 레스토랑 업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예전에 시장을 장악한 것이 맥도날드를 포함한 햄버거 레스토랑이라면, 최근에 새롭게 부상하는 것은 멕시칸 음식 레스토랑들이다. 그 중의 하나가 '치폴레'(Chipotle)라는 회사이다. 히스패닉 고추를 의미하는 단어를 이름으로 하는 이 멕시칸 레스토랑은 조그만 회사로 출발했으나 빠르게 성장하였으며 이런 까닭에 몇 년 전 맥도날드사에 인수되었다. 이것은 많은 히스패닉 계의 미국으로의 유입과 함께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으며, 멕시칸 음식이 미국을 점령한 사례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멕시칸 음식문화가 미국문화에 편입된 과정은 꽤 흥미롭다. 원래 미국 사람들은 대다수의 소수민족들에 대하여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가지고 있지만, 멕시칸 사람들이나 문화에 대하여 더욱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 경향이 있다.

오늘도 부지기수의 히스패닉 계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불법적인 방법으로 풍요로운 미국사회의 한 편에 끼어들고자 한다. 대다수의 미국 사람들이 히스패닉 계 사람들을 싫어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당연히 멕시칸의 음식이나 문화도 배척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다양하고 자극적인 향료들이 들어있는 멕시칸 음식들이 미국인들을 매료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이제 멕시칸 음식들은 미국 전역에 걸쳐 미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미국 음식"이 되었다. 히스패닉 계 이민자들이, 위에서 언급한 '치폴레'라는 회사가 한 것처럼, 멕시칸 전통 음식을 미국인들의 입맛에 맞추고 또 그것에 맞는 다소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하여 미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경제학과 경영학을 전공한 남편은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하여, 멕시칸 음식들이 미국 주류문화에 맞게 새로이 변형되고 포장되어 시장에 선보인 결과, 미국 주류 사회의 인정을 받게 된 것이라는 해석을 했다. 다시 말하면, 시장의 무한 경쟁상태 속에서 "적자생존"의 과정을 거쳐 선택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멕시칸 음식문화가 미국의 주류 사회에 편입되는 과정 속에서 문화라고 하는 것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문화라고 하는 것은 본래 흐르는 물처럼 흘러가는 것이며 동시에 어떠한 것도 배타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끊임없이 변화한다. 이른바 '순수하고 고유한 문화'는 없으며, 우리가 우리 고유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들조차 사실은 다른 문화로부터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일 수밖에 없다.

유독 '찬란한 우리 고유의 문화'를 자랑하는 우리나라의 문화는 사실은 가깝게는 중국, 일본, 몽고, 인도, 인도네시아 등의 아시아의 국가들로부터, 또 멀게는 페르시아, 로마, 라틴 아메리카 등의 먼 나라들로부터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이다. 문화의 고유성을 강조하는 것은 그 사회의 폐쇄되고 고립되었던 과거를 자랑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세계가 하나가 되어가고 있는 요즈음, 흔히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간주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나와 다른 것들을 수용하고 인정할 수 있는 자세를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겨레 필진네트워크 나의 글이 세상을 품는다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