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제조사가 피고인데 정부가 웬 참견” 미국 정부가 고엽제 피해자 등 100여명의 베트남인들이 지난해 뉴욕 브루클린 연방법원에 낸 고엽제(에이전트 오렌지) 피해보상 소송을 기각해줄 것을 관할 법원에 요청해 파문이 일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지난달 28일 보도했다. 베트남 고엽제·다이옥신 피해자 협회(VAVA)가 낸 이 소송의 핵심은 다우케미컬, 몬샌토 등 제조업체들이 베트남전 당시 인체에 치명적인 손상을 끼치는 성분이 포함된 고엽제를 다량으로 미군에 공급해 살포하는 바람에 베트남인들이 암, 신경계 마비, 기형아 출산 등 엄청난 피해를 당했고 환경도 심각하게 파괴됐다며 이들 제조사에 피해를 배상하라는 것이다. 또 정확한 피해 실상 파악을 위해 재조사를 강제해줄 것도 요구했다. 이 소송은 같은 피해를 입은 다수의 베트남전 참전 한국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한국고엽제후유의증전우회’는 한국에 약 8만명의 고엽제 환자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미 법무부는 지난 1월 고문변호인단을 동원해, 이 사건의 심리를 맡은 브루클린 연방법원의 잭 와인스타인 판사 등 재판부에 ‘이번 소송은 대통령의 전쟁 선포권에 대한 위협이며 연방법원의 권한을 지나치게 확대하려는 시도’라는 의견을 제출했다. 법무부는 이어 “원고의 주장이 몰고올 파장은 엄청나다”고 지적한 뒤, “이번 소송이 받아들여질 경우 전쟁 과정에서 미군에 의해 피해를 입은 예전 적국들과 병사들에게 미국 법원의 문을 열어주게 된다”고 주장했다. 원고쪽 콘스탄틴 코코리스 변호사는 미 정부가 이번 소송에서 피소되지 않았는데도 법무부가 나서 소송 기각을 요청한 것은 잘못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이번 소송은 ‘독성 제초제’ 공급에 대한 제조사들의 행위에 국한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제조업체들은 이날 열린 법원의 첫 심리에서 대통령이 군 통수권자로서 내린 명령을 실행한 기업을 처벌할 권한이 법원에는 없으며, 이런 경우 일반적으로 국제법은 기업에 대해 민형사상의 면책권을 주었다고 주장했다고 <에이피통신>이 전했다. 제조업체들은 또 고엽제에 노출될 경우 건강상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을 입증할 명확한 증거가 없다는 종래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이에 대해 와인스타인 판사는 기업의 면책권 주장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고엽제 사용이 국제법에 위반된다는 원고의 주장에도 의문을 표시했다.
2차대전 당시 유대인들을 학살하는 데 사용된 독가스 ‘자이클론 B’를 생산한 독일의 두 업체 관계자들이 종전 뒤 유죄를 선고받고 처형됐다. 또 1984년 미국내 베트남전 참전용사들이 고엽제에 노출된 뒤 암과 기형아 출산 등 각종 후유증에 시달렸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자 7개 제조업체들은 수년간의 재판 끝에 1억8천만달러의 보상금 지급에 합의하고 소송을 마무리했다. 미국은 지난 1961년부터 1971년까지 베트남전 기간에 2100만갤런(약 8000만ℓ)의 고엽제를 베트남 전역에 살포했으며, 이로 인해 수백만의 베트남인뿐만 아니라 미군, 한국군 등 외국 참전병사들도 상당수 후유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 김학준 기자, 외신종합 kimh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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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엽제 부작용
암·기형아 등 후유증
고엽제는 베트남전쟁 기간 중 베트콩의 은둔지와 비밀 수송로로 이용된 정글을 파괴하기 위해 미국이 뿌린 화학물질로, 이에 노출된 수많은 베트남인과 참전 군인, 그들의 자손들이 암, 신경계 손상, 기형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
고엽제는 저장용기의 색깔에 따라 오렌지, 화이트, 블루 등 6가지로 불렸으나 그중 오렌지가 가장 많이 사용됐고 피해도 컸다. 에이전트 오렌지는 2,4,5-T와 2,4-D라는 제초제를 섞은 합성물질로 2,4,5-T에는 2,3,7,8-TCDD라는 다이옥신 성분이 포함돼 있어 극소량으로도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빼앗고 생태계를 파괴한다. 이 다이옥신은 독성이 청산가리나 비소의 수천~만배에 이른다. 다이옥신은 잘 분해되지 않고 용해도 되지 않아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몸에 들어오면 계속 쌓여 수십년이 지나도 각종 후유증을 일으킨다. 이 고엽제를 만든 미국의 다우케미컬은 그 독성을 알고 있었으나 1971년 사용이 중단되기 직전까지 이를 숨겼다. 한국에서도 60년대말 2년 동안 비무장지대에 고엽제가 뿌려진 사실이 99년 밝혀져 사회문제가 됐다.
최대 피해자인 베트남 고엽제 환자는 1백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한국고엽제후유의증전우회’에 따르면 한국에도 약 8만명 정도의 환자가 있다. 김학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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