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소식 대비를" 권력이양 장기화할 듯
"나쁜 소식에 대비하기를..." 쿠바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는 잠정적 권력이양 체제 2주일만이자 자신의 80회 생일인 13일(현지시간) 대(對) 국민 성명을 통해 이같이 묘한 여운을 남겼다. 특히 카스트로의 수술후 사진이 처음으로 공개된 이날은 동생이자 공식 후계자인 라울 카스트로(75) 국방장관이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최고 직책인 국가평의회 의장직을 넘겨받은 이후 처음있는 일이다. 카스트로는 이날 성명에서 "회복기간이 짧을 것이고 아무런 위험이 없다고 단언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부정확하다"며 쿠바 권력수뇌부에서 나온 '수주내 권력복귀' 전망을 자진 일축했다. 이어 "여러분 모두가 낙관적이길 촉구하지만, 이와 동시에 여러분들이 반대되는 어떤 뉴스에도 대비할 것을 당부드린다"며 결코 예사롭지 않은 말을 던졌다. 또한 그는 쿠바 청년 공산당원 기관지로 볼 수 있는 '후벤투드 레벨레'(반역의 젊은이란 뜻)에 게재한 이 성명에서 "나는 수술후 회복에 장시간이 걸릴 것"이라고도 했다.이는 카스트로 스스로가 앞으로 상당 시일 권좌복귀가 어려운 상황이 계속될 것임을 강력 암시한 것이란 점에서 단연 관심을 끈다. 따라서 당분간으로 표현된 임시 권력이양 체제가 장기화할 것이란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는 상황이다. 이날 라울이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공개 영접'한 것도 이와 긴밀히 연계, 쿠바가 사실상 '카스트로 이후' 체제에 본격 대비하고 있다는 분석을 낳고 있다. 더욱이 울리세스 로살레스 델 토로 쿠바 사탕수수부 장관은 이날 아바나 교외서 기자들과 만나 "피델 이후, 라울은 국가 운명을 이끌 최고 적임자"라며 이른바 '라울 체제'에 대한 충성심을 드러냈다. 이에 따라 카스트로 1인에 의한 50년 쿠바 절대지배체제의 종말이 사실상 '서막을 올리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본격 제기되고 있다. 앞서 카스트로는 지난 1일 권력이양 다음날 "(수술과 관련해) 긍정적 소식을 거짓으로 만들 수는 없다"며 쿠바 정부에 가해지는 미국의 위협을 생각하면 자신의 건강은 '국가기밀'로 다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주먹을 불끈 쥔 모습 등 카스트로의 수술후 사진 4장과 함께 실린 기사의 제목은 "나는 매우 행복하다"고 돼있다. 흰색 바탕에 붉은색 줄무늬의 '아디다스' 운동복 차림을 한 카스트로가 전날 발행된 것임을 알 수 있도록 신문 전면을 사진기자에게 의도적으로 내보인 점은 사진을 둘러싼 여러 의혹을 사전 염두에 뒀음을 짐작케 한다. 이는 카스트로의 건재함을 알리며 현 쿠바 체제가 안정적으로 지속되고 있음을 국내외적으로 강조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카스트로 앞으로 생일 축하 전문을 보내면서 "현 시대의 가장 뛰어나고 권위있는 정치 지도자"라고 칭송했다. 그러나 일부에선 카스트로가 등을 펴고 앉아서 전화를 받고 주먹도 쥐고 있는 데 자신의 목소리조차 들려주지 않는 이유를 알지 못하겠다고 의문을 제기한다. 카스트로의 사진이 그의 상징인 황록색 군복 대신 운동복 차림인 것도 강인함의 혁명 지도자 모습과는 사뭇 다르고, 향후 권력복귀에도 예전의 강행군은 어려울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다시 말해 '일선 후퇴' 이미지를 강하게 풍기고 있는 것이다. 아벨 프리에토 쿠바 문화장관은 전날 AP통신과 회견에서 카스트로가 앞으로는 자신을 돌보고 휴식을 취하는 법을 습득할 필요가 이례적으로 지적했다. 미국 일부 언론은 카스트로의 사진이 실제인지 아니면 조작된 것인지 아직 속단하기 이른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 미국 마이애미에서 발행되는 일간 엘 누에보 헤럴드는 카스트로가 결장 절개수술을 받았다고 이날 전했다. 마이애미에는 쿠바 망명인 사회가 대규모로 형성돼 있다. 카스트로의 '나쁜 소식' 발언은 장수술후 부작용을 대비하고 있는 것이란 관측도 있다. 김영섭 특파원 kimys@yna.co.kr (멕시코시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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