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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진] 나의 미 운전면허 취득기 |
미국에는 대부분 10대 후반이면 일정 테스트를 거쳐 운전면허증을 취득하게 되고, 이것은 가장 확실한 신분증명서 역할을 하며 항시 소지하고 다녀야 하는 중요한 신분증이다. 나와 같은 이방인에게도 미국 생활을 시작함과 동시에 무엇보다 먼저 시간을 내서 취득해야 할 것이 면허증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이 없으면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미국은 주(州)마다 운전면허증이 다르다. 따라서 취득 절차도, 비용도, 디자인도 다르다. 한국으로 말하자면 경상남도 살던 사람이 경상북도로 이사 가면 운전 면허증을 바꿔야한다는 예기다. 엄청 번거롭지 않겠는가? 장단점은 있으리라 생각된다. 내가 최초로 미국 운전면허증을 취득한 곳은 뉴욕 주, 그것도 뉴욕 시 였고, 도도한 미국의 평소 태도에 못지않게 외국인으로서 미국 운전면허증 취득한다는 것은 만만찮게 힘들다는 인상을 나에게 각인 시켰다.
먼저 면허증 취득을 위한 첫 번째 관문으로 필기시험 통과, 물론 시험에 앞서 공포(?)의 등록 과정을 거쳐야 한다. 미국 생활에서 가장 날 힘들게 하는 것 중의 하나가 이 사람들의 속도 개념에 대한 적응을 들 수 가 있다. 한국이 지나치게 '빨리빨리' 의 문화가 사회저변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정말 여기는 무지하게 느려 터졌다. 자신이 성격이 좀 급한 편이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마 속이 수도 없이 터질 상황을 자주 접하게 된다. 혹자는 느린 대신 끝까지 철두철미하게 하는 면은 있다고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내가 10년 가까이 몸소 체험했던 경험으로는 그런 의견에 동의하기는 좀 힘들다.
맨해튼 남쪽 끝 9·11로 사라진 무역센터 빌딩과 근접한 위치에 자리한 DMV (department of motor vehicle)는 겉으로 보기에도 세계 최대의 도시답게 그럴듯한 외관을 하고 있었다. 막상 실내에 들어서니 침침한 실내 인테리어와 길게 줄을 늘어선 소수민족 같아 보이는 사람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당최 뭐가 뭔지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몰라 두리번거리며 안내인인지 경비한테 더듬더듬 물어보니 우선 서류를 받아서 기입하고 줄을 서서 접수를 시키고 필기시험을 치른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었다.
양식작성 부터가 난관이 아닐 수 없었다. 우선 짧은 영어에서 비롯된 문제는 그렇다 치고 우리와는 다른 수치들, 파운드(lb), 피트(ft), 한참을 씨름하고 묻곤 해서 작성한 다음 줄을 서서 기다리기를 몇 시간, 좀처럼 줄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에 잔뜩 짜증이 난 나는, 창구 안에서 서류 접수받는 직원들이 줄을 서있는 사람들에 비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코끼리만 한 덩치를 가진 여자 몇 명은 엉금엉금 걸어 다니며, 농담하고, 샌드위치, 소다 먹어가며 온갖 여유를 부리며 '세월이 좀먹나' 식의 업무를 진행하는 것.
주위를 둘러보니 줄을 늘어선 다른 사람들은 마땅히 달리 할 일이 없어선지 아니면 이곳의 스피드에 이미 적응을 했는지 나처럼 짜증스러워 하는 사람들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나와 같이 간 일본인 친구와 반나절을 꼬박 기다렸지만, 오후 5시가 되자 경비쯤으로 보이는 사람이 줄을 선 우리들에게 오늘 업무는 끝났으니 내일 다시 오라며 사람들을 돌려보내는 것이다. 누구 하나 언성을 높이거나 볼멘소리를 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자주 쓰는 말이 있지. "돌아 버리겠네. 진짜"
이런 상황이 한국의 공공기관에서 일어났다고 가정하면 아마도 꽤 불미스러운 사태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대체로 잘 못 기다리지 않는가? 공중전화 좀 오래 쓴다고 뒤에서 삿대질하는 형국 아닌가? 다음 날 우리는 아침 일찍 다시 DMV를 찾아 결국 필기시험을 보고 합격 했다. 그리고 약 한 달 정도가 걸려 퍼미트(Permit) 즉, 허가증을 우편으로 받았다. 이는 혼자서는 운전할 수 없고 운전면허증을 가진 사람과 동석 시만 운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난 또 다음 관문으로 운전면허 학원에 해당하는 업소를 찾아야 했다. 당시 차를 소지하고 있지 않던 나로서는 주행시험을 보려면 누군가의 차를 사용해 시험을 치러야 했던 것. 이 학원은 주행 시험에 필요한 요령을 가르쳐 주고, 미국 운전면허 취득을 필요로 하는 외국에서 온 사람들을 상대로 비즈니스를 하고 있었다.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하고 수강을 마친 후 실기시험을 보려하자 약 한달 반 정도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한 달 반. 달포. 약 45일.
내가 살던 곳에서 기차로 약1시간 정도 걸리는 장소로 이동해 실기 시험을 치루고 운 좋게 한 번에 합격을 했다. 만에 하나 실수로 떨어졌다면 다시 약 한달 반 정도 기다려 그 당시 돈으로 약 100 달러, 한화로 약 10만원 (거의 10년 전 얘기니까 지금은 훨씬 더 비쌀 것으로 생각됨)이 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합격을 한 나는 다시 한 달 정도를 기다려 정식 면허를 우편으로 배달 받게 되었다.
총 몇 달이 소요된 그 잘난 면허증을 쥐고 한국에서 내가 처음 면허증 취득할 때의 생각이 났다. 단 하루에 모든 절차를 해치웠던 가공할 만한 스피드. 면허시험장에 가서 접수하고, 바로 필기시험보고, 합격하면 바로 코스시험, 주행시험까지 보고, 심지어 교양 수업에 면허증 교부까지 단 하루 아니 반나절도 걸리지 않는 우린의 스피드는 이곳에 비교하면 아연 할 수밖에 없는 수준이다.
외국인에게는 비자 기간만큼만 면허기간을 주는 관계로, 바쁘게 살며 갱신기간이 지난 줄도 모르고 운전하다가 경찰에 걸려 순간 현기증이 날 정도의 아찔한 금액의 벌금을 치루고 얼마 후 직장 관계로 난 뉴욕 주 에서 미 중부 한 주의 조용한 시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곳은 뉴욕과는 비교하는 자체가 허무할 정도로 인구 약 5만의 작은 도시이다. 하지만 나와 같은 외국인들이 별로 없는 이런 곳 일수록 이방인들을 당혹케 하는 여러 법률들이 산재해 있다는 것을 이내 깨달았다. 주정부로서도 외국인에 대한 경험이 상대적으로 미천하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주(州)로 왔으니 면허증을 바꾸는 것은 미국 현행법에 따라 당연히 해야 할 것이라 불만은 없다. 단지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이곳 DMV에서 나더러 또 필기시험부터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뉴욕 면허 소지자에게 단지 시민권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그 모든 시험을 다 치르라는 것이다. 물론 주행시험도. 난 개인적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복잡하고, 차량사고가 많은 대도시인 서울, 동경, 뉴욕등에서 생활했다.
만약 이런 작은 도시에서 살다가 뉴욕과 같은 복잡한 도시로 이사를 가게 되어, 뉴욕은 다른 도시와는 달리 운전자들의 비상한 주의가 요구되니 또는 워낙 복잡한 도시라서 비록 여러 곳에서 오랫동안 운전경험을 쌓았더라도, 모든 시험을 다시 치러야 한다면 납득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인구 천만 이상의 대도시에서만 살다온 나로서는 불과 인구 5만의 이 도시의 꽉 막힌 처사에 분괴했다. 어차피 그네들에게는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지는 관심이 없을 것이고 규정대로 할 뿐이겠지. 난 "그래, 로마에 왔으니 로마의 법을 따를 수밖에" 라고 중얼거리며 그놈의 웃기지도 않는 시험 문제지를 또 받아들어 야 했다. 나의 소중한 시간을 쪼개가며.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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