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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8.24 09:32 수정 : 2006.08.24 09:32

주민 절반 못돌아와,“복구작업 실패”평가

프렌치 쿼터에는 재즈가 흐른다.

카트리나의 모진 재앙도 어느새 잊은 듯 경쾌한 재즈의 선율이 곳곳에서 울려 퍼진다.

버번 스트리트의 성인 술집들도 낮부터 불을 밝혔다. 요염한 무희들의 요란스런 사진은 8월말 무더위에도 아랑곳없이 손님들을 유혹한다.

1년 전, 카트리나가 휩쓸고 간 직후에 찾았던 프렌치 쿼터에는 재즈도, 사람도, 자동차도 없었다. 인근 캐널 스트리트의 상가들은 물에 잠긴 채 약탈당한 처참한 몰골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 때와 비교하면 프렌치 쿼터는 몰라보게 좋아졌다.

하지만 카트리나가 남긴 깊은 상처는 재즈의 선율로도 감추기 어렵다.

프렌치 쿼터의 많은 가게들은 아직도 문을 닫았다. 여기 저기 유리창이 깨지고, 녹이 슨 채로 자물통이 굳게 잠겨 있다. 기자가 묵은 호텔에는 아직도 주방위군이 상주하며 치안유지를 돕고 있다. 거리 곳곳에는 여전히 쓰레기가 넘쳐나고 악취가 코를 찌른다.


프렌치 쿼터에서 35년간 가게를 했다는 바버라 헨리씨는 요즘 매출이 “폭풍 전에 비해 절반도 안된다”고 울상이다. 작년 10월에 곧바로 문을 다시 열었지만 12월 이후 매출은 제 자리 걸음을 거듭하고 있다.

프렌치 쿼터는 그래도 뉴올리언스에서는 별천지다.

침수 피해도 없었을 뿐 아니라, 복구도 빨랐다. 시 당국은 카트리나 엄습 당시부터 뉴올리언스의 상징인 프렌치 쿼터 보호에 최우선을 뒀고, 이후에도 이 지역의 복구를 가장 서둘렀다고 현지 상인들은 말했다.

프렌치 쿼터에서 몇 블록만 벗어나면 풍경은 달라진다.

물에 찼던 흔적이 뚜렷이 남아있는 건물들이 처참하게 파괴된 채 그대로 방치돼 있다. 박살난 교통신호등이 떨어질듯 매달려있고, 끊어진 전선줄이 여기저기 늘어져 있다.

침수피해가 가장 컸던 동부 나인스 워드는 물만 빠졌을 뿐 거의 1년 전의 폐허 그대로였다. 부러진 나무와 폭삭 무너진 집들 주변엔 잡초가 무성하고, 주택가 곳곳엔 아직도 마르지 않은 시커먼 독수가 계속 썩어가고 있다. 물이 빠진 뒤 끌어냈을 온갖 쓰레기와 가재도구들을 덩그러니 쌓아둔 채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이런 폐허더미 속에 살아보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거처는 미 연방재난관리청(FEMA)이 제공해준 트레일러다.

부서진 집 옆에 트레일러를 받쳐놓고, 어떻게든 삶의 터전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이 뉴올리언스 동부지역의 인적을 유지하고 있다.

카트리나 직후 집을 떠나 외지를 전전하다 지난 2월 돌아온 오라 터너씨(58)는 반 년 간을 트레일러에서 지내며 집수리에 안간힘을 다했다. 그런데도 아직 상하수도는 커녕 전기도 안들어온다고 푸념했다.

목수인 폴 롤린스씨(39)도 지난 4월 돌아온 뒤 집을 고치려 갖은 애를 썼지만 이제까지 한 것이라곤 지붕 수리와 벽 페인트칠 정도뿐이다.

그나마 돌아온 이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사람들이다.

45만여 명에 달하던 뉴올리언스 인구 중 카트리나 이후 돌아온 사람은 절반 정도로 추산된다. 특히 동부지역에 몰려 사는 흑인들의 복귀율은 40% 남짓에 불과하다. 1년이 지나도록 돌아올 엄두조차 못내는 사람이 오히려 더 많은 셈이다.

통계에 따르면 카트리나 재해 복구비로 투입된 미 당국의 예산은 1천억 달러를 넘는다. 우리 돈으로 치면 100조원이 넘는 막대한 돈이다.

나인스 워드에서 만난 흑인들은 한결같이 ‘그 많은 돈이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고 흥분했다.

복구사업으로 배를 불린 건 벡텔이나 핼리버튼 같은 대기업들뿐이란 비난도 있다. 카트리나 복구공사의 90% 가량은 외지 기업들에게 돌아갔다. 루이지애나나 미시시피주 현지 기업들이 맡은 공사는 10% 남짓뿐이다.

게다가 연방 정부가 지출한 복구 예산이 제대로 집행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기업감시(CorpsWatch)'라는 한 비영리단체의 분석에 따르면 애쉬브리트라는 회사는 피해지역의 쓰레기를 치우는 사업을 야드 당 23달러씩 총 5억달러에 낙찰받았다. 이 회사는 야드당 8달러를 쳐서 다른 회사에 하청을 줬고, 이후 2단계 더 하도급 과정을 거치면서 레스 너들링거라는 회사가 야드 당 불과 3달러에 최종 작업을 맡았다.

미국 정부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보여준 복구의 ‘실패와 낭비’를 뉴올리언스에서 되풀이 하고 있다”는 게 이 단체 프래텁 차터지 국장의 지적이다.

흑인인 레이 내이긴 뉴올리언스 시장도 연방 정부와 언론의 무관심에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 그는 지난주 전미흑인기자협회 연설에서 “(백인들이 많이 사는) 캘리포니아 오렌지 카운티나 마이애미 사우스 비치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지금처럼 대응했겠느냐”고 비난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복구에 대한 기대보다는 절망감이 깊어지고 있다. 흑인 데이비드 파운틴씨는 “정부가 침수된 흑인 거주지역을 아예 없애려 한다는 얘기가 있다”고 전했다.

카트리나는 인종과 계층 갈등 같은 미국의 치부를 드러냈다. 이후 1년간 100조원이나 되는 돈을 쏟아 붙고서도 뉴올리언스의 흑인 거주지역이 폐허처럼 방치됐다는 건 초강대국 미국의 또 다른 수치로 보였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참혹한 현실이 낳은 절망감은 곳곳에서 표출되고 있다.

프렌치 쿼터에서 빗자루로 재즈 연주 흉내를 내는 필립 터너씨(63)는 집이 완전히 물에 잠기고, 가족들을 잃은 뒤, 정신이상이 됐다.

올해 퓰리처상을 받은 타임스 피케윤지의 사진기자 존 맥커스커는 지난주 뉴올리언스에서 난폭운전을 하다 경찰에 붙잡히자 "죽여달라"고 울부짖었다. 지난 1년간 참혹한 카트리나 현장만 렌즈에 담아온 그가 받은 정신적 충격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깊어졌다는 게 의사의 진단이다.

뉴올리언스는 이제 더 이상 낭만의 도시가 아니다. 해마다 1천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몰려오고 컨벤션센터의 예약이 2천36년까지 들어찼던 그런 활기 넘치는 도시가 아니다.

맨 처음 흑인 노예시장이 들어섰던 곳. 기나긴 여행 끝에 죽어나간 흑인들의 뼈가 아직도 땅 밑에 쌓여있다는 버번 스트리트의 한 구석에서 울고 있는 한 거지 흑인여성의 눈물은 오늘 뉴올리언스의 슬픔을 보여주는 듯 했다.

이기창 특파원 lkc@yna.co.kr (뉴올리언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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