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8.24 09:34
수정 : 2006.08.24 09:34
"동포애가 큰 힘", 40여 가구 재기의 몸부림
뉴올리언스는 지금 두 얼굴이다.
카트리나의 상처를 털어내고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지역이 있는가 하면 1년 전 폐허 그대로 방치된 곳이 있다.
흑인 거주지인 도시 동부가 대표적인 ‘폐허지역’이라면, 한인들이 모여사는 메터리와 케너는 복구가 대단히 빠른 곳이다.
뉴올리언스 광역시에 속하는 제퍼슨 패리시의 메터리에 들어서면 풍경이 딴 판이다. 적어도 외관상으로는 카트리나의 피해를 거의 극복한 것으로 보인다. 폐허로 방치된 동부지역에 비하면 “천당과 지옥” 같은 차이라고 한 교민은 비유했다.
상대적으로 침수 피해가 적었던 메터리와 케너지역 교민들은 벌써 피해를 거의 이겨낸 상태다. 침수 피해가 심했던 경우에도 80% 정도는 복구를 마친 것으로 교민들은 추산했다.
떠난 교민들도 예상보다 많지는 않다. 당초에는 상당수 사람들이 뉴올리언스를 떠날 것으로 우려했지만 실제로 이주한 교민들은 40-50가구, 150명 안팎이다. 전체 교민 수의 10%를 넘지 않는 수준이다.
복구사업 특수를 겨냥해 새로 들어온 30-40가구를 감안하면 실제 한인 수는 별로 줄지 않았다는 게 교민들의 분석이다.
이상호 카트리나 피해대책위원장은 뉴올리언스 한인사회가 “기적에 가까울 정도로 열심히 노력해 재해를 이겨냈다”고 표현했다.
우선 한인들의 인명피해가 없었던 게 큰 다행이었고, 카트리나 직후의 참담했던 상황에 비하면 채 1년도 안돼 거의 정상을 되찾은 건 “기적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는 것.
교민들이 집과 가게에 물이 차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상황에서 교회에 모여 함께 자고 밥을 해먹으며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던 데에는 “국내외 동포들의 따뜻한 위로와 격려가 큰 힘이 됐다”고 이 위원장은 강조했다.
동포들이 보내준 성금과 구호품이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큰 도움이 됐다”며 “감사하다는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그는 고마워했다.
뉴올리언스 한인사회가 전반적으로 빠르게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지만 카트리나로 사업기반을 완전히 잃은 40여 가구의 한인들은 여전히 앞날이 막막한 상황이다.
대부분 동부 침수지역에 사업장을 갖고 있던 이들은 물속에 모든 게 잠겨 한 순간에 전 재산을 날려버리다 시피 한 사람들이다.
세탁업을 하다 가게가 완전히 침수된 권오수씨(52)는 아직도 어떻게 사업을 복구해야 할 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홍수보험이 없어 보상 한 푼 못받은 권씨는 임시로 건축업으로 생업을 바꿨지만, 하청을 준 미국인 건설업자가 공사대금을 안주고 내빼는 바람에 인건비조차 건지지 못했다.
LA폭동 때 큰 피해를 보고 켄터키로 갔다 99년 뉴올리언스에 정착한 권씨는 “이제 겨우 자리를 잡아가려던 참에 한순간에 모든 걸 잃고 나니 막막하다”며 허탈해 했다.
같은 침수지역에서 가게를 하다 모든 게 물에 잠기고 보상 한 푼 못받은 박병욱씨는 웨스트 뱅크에 새 가게를 인수, 재기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박씨는 “처음엔 정말 충격이 크고 막막했는데 주위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새 가게를 냈다”며 “흑인 노동자들이 많이 들어오지 않아 일손을 구할 없는 게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했다.
종업원을 12명이나 두고 세탁소를 하던 김격씨는 가게가 크게 부서져 아예 새로 지어야 할 판이다. 부서진 건물을 모두 밀어버리고, 세탁소를 새로 짓기 위해 미 중소기업청(SBA)에 융자를 신청했지만 몇 달 째 돈이 나오지 않아 애를 태우고 있다.
김씨는“처음엔 당장 융자를 해줄 것처럼 해 신청을 했는데 벌써 다섯 달 째 감감 무소식”이라며 “아무래도 기대를 접고 다른 방법을 알아봐야 겠다"고 초조해 했다.
카트리나로 사업기반을 통째로 날린 42명의 한인들은 지난 3월 ‘카트리나 피해상가 복구추진위원회’를 만들었다.
침수와 약탈 피해로 사업기반을 잃은 한인 업주들이 “거의 일어서기 어려울 정도인 피해의 아픔을 딛고 재기의 가능성을 찾아보기 위해” 이 모임을 만들었다고 김선일 위원장은 밝혔다.
이들은 최근 개설한 웹사이트(www.helpkorean.com)를 통해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상황을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다"며 동포들의 도움을 호소하고 있다.
한인 사회의 '기적 같은 복구’속에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잃은 일부 한인들의 눈물겨운 재기의 몸부림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기창 특파원
lkc@yna.co.kr (뉴올리언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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