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선거 악재 사전제거.EU와 관계개선 의도”
조지 부시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지금까지 공개적으로 언급을 꺼려왔던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테러용의자 수감 및 신문을 위한 `비밀감옥'에 대해 전격 시인하고 나선 것은 고도의 정치적 계산에 따른 전략적 결정인 것으로 분석된다. 우선 발표 시점이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두 달여 앞두고 예고없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선거를 의식한 것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AP통신은 부시 대통령의 이날 발언에 대해 "부시 대통령 메시지의 많은 부분이 9.11 5주년을 앞둔 국내정치적 상황과 공화당이 의회통제권을 위협받고 있는 중간선거를 의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 및 전문가들의 전망에 따르면 이번 선거에서는 공화당이 12년만에 상하 양원 또는 어느 한 곳에서 다수당의 자리를 내놓을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는 상황이다. 또 이번 선거에선 이라크 전쟁 및 테러와의 전쟁 문제가 핵심 선거이슈로 부각되고 있고 이런 와중에 설상가상으로 CIA 비밀감옥 의혹은 부시 행정부의 도덕성에 심대한 타격을 주고 있다. 특히 이번 중간선거를 부시 대통령의 테러 및 이라크 정책에 대한 신임투표로 몰아가는 민주당은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부시 행정부에 대한 공세를 강화할 태세다. 이런 점에서 비밀감옥 시인은 중간선거의 악재를 사전에 없애겠다는 계산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부시 대통령의 시인이 이라크 전쟁 비판여론에 대해 정면돌파를 시도하고 있는 일련의 이라크전쟁 옹호 연설 시리즈의 일환으로 9.11테러 5주년을 앞두고 9.11 희생자 가족들이 참석한 백악관 연설에서 이뤄진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이와 관련, 부시 대통령은 CIA 비밀감옥 프로그램을 통해 테러활동에 대한 유용한 정보를 사전에 파악함으로써 항공기를 이용한 테러나 차량폭탄테러, 탄저균테러 등을 방지하는 등 효과가 컸다는 점을 강조하고 나섰다. 이는 CIA 비밀감옥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동시에 자신의 테러와의 전쟁 성과를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도 풀이된다. 부시 행정부가 대내외적으로 더이상 CIA 비밀감옥 운용 및 테러용의자에 대한 불법적 수용에 대해 은폐하기 어려운 시점에 이르렀기 때문에 비밀감옥의 존재를 시인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미국이 이미 테러용의자들에 대한 신문을 대체로 마쳤기 때문이라며 자발적인 자백임을 역설했다. 그러나 국제앰네스티 미국지부의 주마나 무사 국장은 "그(부시 대통령)가 마침내 모든 사람들이 항상 말해온, 방안에 있는 코끼리의 존재를 인정했다"고 부시 대통령의 뒤늦은 시인을 꼬집었다. CIA 비밀감옥 운영과 관련, 이미 유럽연합(EU)은 자체 조사활동을 통해 사실 여부를 상당 정도 파악하고, 미국 정부에 대해 `고해성사'를 압박해왔다. 이런 점에서 미국의 이번 비밀감옥 시인이 그동안 테러와의 전쟁과정에 불편한 관계를 가졌던 EU 국가들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포석도 깔린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국내적으로는 미 대법원이 테러용의자들에 대해서도 전쟁포로에 대한 제네바협정의 보호규정이 적용돼야 한다고 판결, 비밀감옥을 통한 테러용의자 구금이 더이상 계속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부시 대통령은 비밀감옥의 존재에 대해 인정하면서도 테러용의자들에 대한 구체적인 신문기법 등에 대해선 언급을 피했고 고문 의혹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부인했다. 이는 국내외적으로 인간의 존엄성 및 인권유린에 대한 비판을 피해나가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뿐만아니라 부시 대통령은 테러용의자들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재판을 열게 하기 위해 이와 관련된 법안을 의회가 신속히 처리할 것을 요청하는 등 `선수'를 치고 나섰다. 여론의 관심을 비밀감옥 논란으로부터 테러용의자 재판문제로 돌리기 위한 것으로 받아들여 진다. 부시 대통령이 CIA 비밀감옥의 존재를 시인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외적으로 모든 논란을 잠재우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영국, 독일 등 EU의 여러 나라들과 유엔이 테러용의자들이 옮겨진 쿠바 관타나모 미군 기지에 대해서도 벌써부터 수감자들에 대한 학대 및 고문의혹을 제기하면서 수감실태 조사, 영구적인 기지폐쇄 등을 요구하고 있어 또다른 논란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다. 김병수 특파원 bingsoo@yna.co.kr (워싱턴=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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