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페루 대선 1차투표 결과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좌파 민족주의자 오얀타 우말라 후보 31%, 중도파 알란 가르시아 전 대통령 24.3%, 보수우파 여성정치인 루르데스 플로레스 후보 23.8%로 나타났다. 에콰도르 대선은 불과 한달 전만 해도 지지도 5위에 머물렀던 반미-반(反)시장경제주의자 라파엘 코레아 후보의 결선진출 결과를 낳았고, 노골적 친미노선의 기업인 알바로 노보아 후보와의 정면 대결을 불러왔다. 대선 재검표 등으로 1차 투표 이후 한달 여만인 지난 3월 당선자가 공식 발표된 코스타리카도 마찬가지였다.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반대여론으로 초강세를 보인 야권 후보가 불과 1%도 차이나지 않을 정도로 친기업 성향 후보를 위협했던 것이다. 멕시코, 볼리비아, 콜롬비아도 결선으로 가지 않았을 뿐이지 좌우파 친미-반미 대립의 양극화가 중심축으로 작용했다. 멕시코 좌우파 대립의 골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볼리비아는 반미 득세, 콜롬비아는 친미 득세의 상황으로 선거가 '조기에' 종료됐다는 것뿐이다. ◇ '때만되면' 정치신인 대통령 = 결선투표로 간 칠레, 이를 앞두고 있는 브라질의 사례는 '친미-반미 양극화'의 예외로 분류된다. 두 나라는 나란히 중남미 온건 실용주의 좌파 정부를 대표한다는 평가다. 또한 상대적인 경제적 성공 속에 양당제를 축으로 한 정당정치가 뚜렷하다는 점은 눈여겨 볼 대목이다. 두 나라는 전반적으로 정치적 합의와 거시 개혁에 대한 여론의 수렴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 이를 보면 결선투표행이란 현상 자체보다도 그 정치경제적 기반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거꾸로 '친미-반미 양극화' 정국은 어쨌든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런 틀 아래 중남미 정치혼란의 중심에 서있는 포퓰리즘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는 물론이고 페루의 우말라, 에콰도르의 코레아는 전형적인 포퓰리스트다. 이들은 거의 예외 없이 혜성과 같이 등장한 정치신인이지만 양극화 정국을 이용한 '하층민 정치동원화의 귀재'다. 빈곤탈출의 길이 보이지 않는 하층민을 향해 이들은 신자유주의 원조 미국 혹은 기존 보수 정치권을 통틀어 '같이 갈 수 없는 적'이라고 규정하며 이분법 대결구도로 정국을 조작한다. 이는 당연히 정당정치 위기론으로 이어진다. 무소속으로 나선 코레아 후보는 정당무위론을 노골적으로 주장한다. 베네수엘라는 '총선 보이콧' 카드를 내밀 정도로 야권 정당이 존립기반조차 잃었고 베네수엘라 의회는 차베스 충성파 일색이다. 정당이 난립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하루살이 인생'이고 포퓰리스트 지도자는 그 정당마저도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국제 신용평가기관 피치는 작년말 보고서에서 효율적 민주제도의 정착을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말과 목표와 달리 민주제도 정착을 위한 방법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보수층은 하나 같이 포퓰리즘을 한치 앞도 내다 보지 못하는 '망국의 길'이라고 몰아세운다. 하지만 수입이 하루 1달러도 안될 정도로 가난에 찌든 원주민과 하층민은 빵조각을 내미는 정부에 박수를 보내고 있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하층민은 기존 정치권을 외면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때만 되면' 무소속 정치신인이 혜성처럼 등장하는 것이다. 김영섭 특파원 kimys@yna.co.kr (멕시코시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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