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미의 새 실험, 베네수엘라에 가다(1)-협동조합 10만 시대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어떤 정책을 펴길래 ‘민중의 호민관’, ‘포퓰리스트’에서 ‘독재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평가를 듣는 걸까. 지난해 출간된 베네수엘라 연구서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 책임 집필자인 임승수씨의 베네수엘라 현지 방문기를 세 차례 나눠 싣는다. 임씨는 민주노동당 방문단에 속해 1월26일부터 5일간 베네수엘라에 다녀왔다. 한밤 중에 차를 타고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 시내를 달렸다. 차창 밖으로 마치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불빛들이 반짝였다. 산비탈에 빈민들이 지어놓은 판잣집에서 새어나온 불빛이었다. ‘란초’라고 불리는 이 판잣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탓에 크리스마스 트리에 매달린 불빛처럼 보인 것이다. 그 아래 카라카스 시내의 평평한 땅으로 눈을 돌리면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일행이 묵은 카라카스 도심의 그란 멜리아 호텔 옆에는 명품 브랜드를 파는 상점들이 즐비하다. 카라카스 동부의 부자촌에는 깨끗한 고급 주택들이 높은 담벼락에 둘러싸여 있다. 이를 지키는 사설 경호원들의 눈빛이 날카로웠다. 카라카스 시내의 대표적 치안불안 지역인 라 베가에 갔다. 치안불안 지역은 동시에 빈민지역이기도 하다. 회색빛 건물들 곳곳에는 ‘차베스에 투표하라’는 등 집권 여당인 ‘제5공화국운동’을 지지하는 낙서들이 가득했다. 차베스 대통령은 이런 빈민들의 지지로 지난해 12월 60%대의 높은 지지를 얻으며 재집권에 성공했다. 카라카스 시내를 벗어나 빈민 거주지역인 까뜨에의 한 협동조합을 찾았다. 군복, 티셔츠 등을 만들어 공공부문에 납품하는 조합이었다. 이곳에서 만난 한 조합원은 “차베스 대통령 집권 전에는 실업상태이거나 열악한 근로조건에서 착취당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직장의 주인이 돼 벌어들인 것을 동등하게 나눠 가진다”고 말했다. 협동조합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이 말을 상투적인 선전으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이 협동조합은 2004년 차베스 정부의 사회경제 프로그램인 ‘미시온 부엘반 까라스’(Mision Vuelvan Caras)의 일환으로 설립됐다. 뜻이 맞는 지역민들이 자체적으로 사업계획을 세워 정부에 제출하면, 정부는 이를 검토한 뒤 물적 지원을 한다. 까뜨에 거주 여성들이 주도적으로 세운 이 협동조합은 설립 당시 정부로부터 운영자금으로 20억 볼리바르(약 9억원)를 무이자로 대출받았다. 현재 원금도 상환 유예받은 상태다. 건물과 장비구입은 국영 석유회사(PDVSA)의 도움을 받았다. 협동조합은 활기차고 자유로워보였다. 이 조합의 자금 담당자는 “조합장과 조장을 직접 투표로 선출하는 등 민주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며 “예산안 같은 회사의 중요한 결정은 조합원 총회에서 투표를 통해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자금 담당자 역시 조합원으로, 선거에 의해 선출된 사람이다. 154명 조합원 모두 협동조합 운영을 위해 ‘인세’(INCE)라는 이름의 정부설립기관에서 교육을 받았다.1998년 차베스가 집권하기 전, 200여 개에 불과했던 협동조합 수는 2006년 현재 전국에 10만 개가 넘는다. 베네수엘라 성인인구의 10% 이상이 협동조합에서 일하고 있다. 폭발적인 협동조합의 증가로 인해 실업률이 1999년 16.6%에서 2007년 1월 현재 11.1%로 줄었다. 서방에서는 차베스 집권으로 베네수엘라의 기업 수가 1만7천 개에서 8천 개로 줄었다며 제조업 기반이 약화됐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이런 지적은 자본주의식 기업 수가 줄어든 대신 협동조합이 급격히 늘어난 점을 간과한 것이다. 카라카스/임승수·<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 책임집필자 reltih@nate.com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