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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디에고에서 열린 이라크 침공 4주년 반전시위 현장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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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에서 본 반전운동
2003년 3월 20일, 미국이 이라크에 대한 공습을 시작한 이래로 이라크는 지금까지도 미국 주요 신문과 뉴스의 머리기사를 장식할 정도로 미국의 관심의 중심에 서 있다. 중간 선거에서 부시의 이라크 정책을 비판했던 민주당이 압도적인 승리를 얻음에 따라 일각에서는 이라크 사태에 대한 진전이 있을 것을 기대했지만, 지난 3월 15일 민주당이 요구했던 2008년 철군 계획안이 상원에서 공화당에 의해 부결되는 등 여전히 이라크 사태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듯하다. 이라크에 대한 똑같은 기사와 똑같은 논쟁을 보고 있노라면 이라크 사태에 대해서 미국의 시계는 멈춰버린 게 아닐까 싶더니 미국 이라크 침공 4주년이 또 찾아왔다. Bring Troops 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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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디에고에서 열린 이라크 침공 4주년 반전시위 현장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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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전쟁 4주년을 기념하여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개입을 대대적으로 규탄하는 반전시위는 미국 곳곳에서 진행되었다. Downtown의 중심부에서 열린 San Diego의 반전시위는 Los Angeles, San Francisco, New York, 그리고 Washington D.C.와 같은 큰 도시에 비해서는 규모가 크지 않다. 그러나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지향하는 The Peace Resource Center of San Diego나 San Diego Coalition for Peace and Justice와 같은 지역 내의 여러 시민 단체가 참여하고 기획했다는 점에서 목표 달성을 위한 실천적 차원에서의 지역 시민 단체의 연대가 무엇보다 돋보였다. 또한 부모님의 손을 잡고 나온 어린 꼬마아이부터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포함하는 다양한 연령대의 참여가 세대를 초월한 연대를 또 한 번 실감하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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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디에고에서 열린 이라크 침공 4주년 반전시위 현장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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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1시, Downtown의 중심부인 4th street와 broadway가 만나는 길 위에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손에 피켓과 플랑카드를 들고 길 위에 나란히 선 이들은 때론 옆에 서 있는 사람의 얼굴을 마주보며, 때론 지나가는 차를 향해 “Bring troops home!”, “Peace”를 외치는 것으로 반전시위는 시작됐다. 어떤 이들은 클락션을 울리거나 함께 구호를 외치면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했지만, 한 쪽에서는 짜증 섞인 소리도 들려왔다. 한 편에서 열정적으로 구호를 외치며 피켓을 흔들고 있는 동안 또 다른 한 편에서는 “Another Marine Against Liberals!”라고 적힌 피켓을 든 군인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시위 참가자와 말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어쩌면 이라크 사태를 둘러싼 미국인의 태도 역시도 도로와 차도의 차이만큼이나 나누어져 있는 것은 아닐까. 1시간 정도의 길거리 시위를 마치고, 연설과 퍼포먼스가 준비되어 있는 인근의 공원을 향해 30분간의 짧은 행진의 시간을 가졌다. “What we want to do?” “Peace!” “When we want to do?” “Now!”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이들이 외치는 구호에서, 이들이 들고 있는 피켓에서, 그리고 정의롭지 못한 전쟁에 대한 저항과 그 저항의 실천을 요구하는 사람들 속에서 국경을 뛰어넘은 미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과 그 저항의 연대의 가능성을 발견했고 미국의 미래에 대한 작은 희망과 마주할 수 있었다.
제국의 중심에서 2006년 9월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미국인은 61%였고, 최근 이라크 전쟁의 승리 가능성을 묻는 CNN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승리”와 “패배”에 답한 사람이 각각 46%로 동일했다. 이라크 전쟁 당시의 상황과 비교해보면 이라크 전쟁에 대해 반대하는 이들은 점점 더 증가하는 듯 보인다. 이들이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이유 혹은 반대로 입장을 전환한 이유는 무엇일까. 전 세계의 반전 여론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평화 그 자체에 대한 갈망이다. 이라크 전쟁으로 이유 없이 죽어야 했던, 죽음과 가난, 그리고 절망이 일상이 되어버린 이라크 사람들의 모습에 대한 분노가 반전 운동의 가장 큰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미국의 반전 운동 역시 기본적으로 평화에 대한 열망, 전쟁 그 자체에 대한 반대가 전제로 깔려있다. 그러나 반전시위에 등장하는 선전물이나 피켓에서 엿볼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들은 미국 반전 운동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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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디에고에서 열린 이라크 침공 4주년 반전시위 현장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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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이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실패한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전쟁을 단기간 내에 승리로 이끌고 이라크에서 철군하겠다던 부시의 약속은 이미 지키지 못할 약속이 되었다. 미국은 현재까지도 이라크에 주둔군을 보내고 있으며, 부시는 앞으로 더 많은 군대를 추가로 보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둔 기간이 길어질수록 미군 측 인명 손실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자국의 인명 손실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국민 미군 측 사상자 수가 증가할수록 이라크 전쟁에 대한 의심과 반대는 짙어지게 될 것이다. 즉각적 철군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도 미군이 이라크 사람들을 억압하기 때문이 아니라 미군의 사상자를 줄이기 위해서라는 점이 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더욱이 미국인들은 아직 이라크에서 만족할 만한 결과를 보지 못했다. 미국은 이라크를 공격했다고 해서 테러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도 못했으며, 이라크를 자국과 같은 “민주주의의 나라”로 전환시키지도 못했다. 군사적으로는 승리했지만 사실상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는 이라크 전쟁은 이미 실패한 전쟁으로 미국인들에게 깊이 각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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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디에고에서 열린 이라크 침공 4주년 반전시위 현장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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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이유는 바로 자국 정부의 정책 실패와 도덕성에 대한 실망감과 배신감이다. 부시 대통령은 전쟁의 이유로 이라크의 9.11 테러 세력에 대한 지원, 대량 살상 무기, 그리고 이라크의 민주주의 확립을 내세웠다. 그러나 앞의 두 가지 이유는 이미 거짓임이 밝혀진데다가 이라크에서 미국인들이 만족할 만한 민주주의로의 진전이 아니라 폭력과 종교적 분파간의 다툼, 혼란한 정치적 상황만이 들려오자 세 번째 이유 역시 이미 타당성을 상실했다. 즉 미국의 대통령이 미국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한 것임이 밝혀지자, “대통령에 거짓말”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았다. 덕분에 미국 내의 반전운동에서는 “전쟁을 일으킨 제국주의적 세력”으로서의 정부 보다는 대 국민 사기극을 벌인 정부와 대통령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더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한 편에선 미국이 제국주의적인 외교 정책에 몰두하느라 국내 정책에 소홀하다는 점 때문에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기도 한다. 연설자로 무대에 올라왔던 전직 군인 출신의 한 미국인은 정부가 이라크 전쟁에 돈과 신경을 쓰느라 국내 교육이나 복지 문제에 소홀하다는 점에 강력한 불만을 표했다. 미국 내의 반전운동이 이라크 전쟁 반대라는 점에서는 모두 한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전쟁에 대한 반대를 제외 한 이유들이 “미국 이익의 손실”이라는 점에서 볼 때 미국 내 반전운동과 부시 행정부는 “미국 이익의 최대화”라는 같은 목표를 공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국의 반전 운동에서는 볼 수 없던 성조기가 미국 내의 반전운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도, 바로 국가 이익을 가치의 중심에 두는 미국적 민족주의와 애국주의가 반전운동에도 반영된 증거는 아닐까. 물론 미국 국민의 이해와 이라크 전쟁을 동일 선상에서 두고 보는 것은, 머나먼 나라에서 일어나는 전쟁으로만 느껴지는 이라크 전쟁을 좀 더 자신의 일상과 연결 지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줄 수 있다. 그러나 미국 내의 일부 반전운동이 미국의 손실만을 따지고 일어난다면, 전쟁 그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와 평화에 대한 열망이 결여 돼 있다면, 똑같은 전쟁이 또 일어났을 때 그리고 그것이 미국의 이익을 보장한다고 했을 때 아프가니스탄 전쟁이나 이라크 전쟁 초기 때처럼 다수의 미국인은 또 다시 침묵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들의 일상을 돌려주라
미국은 “4년 째” 이라크 사태를 해결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느라 골머리를 썩고 있지만 여전히 해답은 오리무중에 빠져있다. 이라크 전쟁이 흔히 제 2의 베트남 전쟁이라고 불리는 것도 바로 답을 찾을 수 없다는 점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칠수록 더 깊이 빠져버리는 늪”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계속 주둔하고 있자니 이라크의 미국에 대한 저항 때문에 미군의 주둔 하에서의 이라크의 정치적, 사회적 안정은 요원해보이고, 그렇다고 즉각적인 철군을 하자니 미군의 힘의 공백을 틈타 내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으니 미국은 이도 저도 선택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져있다. 결국 이라크 전쟁의 실패는 전술과 정책이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정당하지 못한 개입 그 자체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은 사회 구성원이 스스로 싸워서 얻지 못한 “민주주의”는, 아무리 좋은 민주주의적 제도라 해도 그것이 외부의 개입과 압력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면, 그것이 위로부터 일방적으로 수여된 것이라면, 영원히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이룰 수 없다는 점을 간과했던 것이다. 당장의 철군은 힘의 공백을 가져와 이라크의 내전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당장의 철군 보다 현재 주둔군의 규모와 역할을 점진적으로 축소하면서 동시에 이라크 사람에게 주는 피해를 최소화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라크 정부 구성과 정책에 대한 미국의 간섭도 줄여야 한다. 미국이 원하는 이라크의 미래와 지도자가 아니라 이라크 사람이 원하는 이라크의 미래와 지도자를 지원해야 한다. 이라크 사람들은 미국이 생각하는 만큼 어리석지도, 미숙하지도 않다. 그들은 자신의 일상을 지키고 그들이 원하는 미래를 실현해 나갈 권리와 힘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삶과 자신이 속한 사회와 자신이 속한 나라의 오늘을 고민하고 내일을 꿈꾸는 그들의 소박한 일상을 다시 이라크 인들에게 돌려주라.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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