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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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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심분석과 흑색선전의 달인
‘부시 정권의 설계자’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왜 민주당과 정면충돌면서까지 칼 로브(57) 백악관 비서실 차장을 보호하려고 할까? 하원 법사위 소위는 21일 연방검사 해임사태와 관련해 칼 로브를 소환하기로 했으나, 부시 대통령은 여전히 ‘안 돼’를 외치고 있다.
2004년 대선에서 재선된 부시 대통령은 승리연설에서 로브를 ‘설계자’라고 불렀다. 실제 그는 ‘부시 대통령 만들기’에 그치지 않고, 부시 대통령 집권 6년 간의 국정을 설계한 인물이다.
미국의 언론과 책 등을 보면, 그는 9살 때인 1960년, 존 에프 케네디(민주)와 리처드 닉슨(공화)이 맞붙은 대통령 선거에서 닉슨을 열렬히 지지할 정도로 정치에 관심이 컸다. 유타대학교에 들어갔으나 전국공화당대학생위원회의 사무국장에 전념하려고 대학을 중퇴했다.
그는 73년 이 조직의 의장선거에 출마하면서 부시 집안과 첫 인연을 맺었다. 이 선거는 로브와 상대후보가 별도의 전국대표자회의를 열 정도로 치열하게 전개됐고, 결국 두 명의 의장이 선출됐다. 그때 누가 적법한지를 가리는 사람이 바로 공화당 전국위원장이었던 아버지 부시었다. 아버지 부시가 로브의 손을 들어주면서, 로브는 그의 특별보좌관이 된다. 로브는 이 인연으로 아들 부시를 만났는데, 그를 처음 본 순간 “엄청난 카리스마가 있었다”고 회고했다.
공화당 정치컨설턴트로 일했던 로브는 94년 텍사스 주지사에 출마한 아들 부시의 당선에 결정적 노릇을 했다. 그는 상대 민주당 후보인 “앤 리처드 주지사의 참모들이 레즈비언들에 좌지우지돼도 지지하겠느냐”며 여론조사를 빙자한 흑색선전을 펼쳤다. ‘푸시폴링’이란 이 기법은 그의 주특기이다. 2000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경선에서도 경쟁자인 존 매케인 후보가 뉴햄프셔 경선에서 이기자, 다음 경선인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매케인이 흑인 아들을 두고 있다’는 내용의 푸시폴링을 벌여, 결국 승리를 낚았다.
로브는 정확한 유권자 분석을 통해 지지층 결집하는 데도 뛰어난 재질을 지녔다고 알려졌다. 특히 부동층보다는 투표하지 않는 지지층을 최대한 투표장으로 끌어내는 데 탁월하다. 예를 들어, <폭스방송>을 보고 휴대전화에 발신자 표시가 있거나 쿠어스 맥주를 마시면 공화당 성향, <시엔엔>을 보고 볼보 승용차를 타거나 요가 교실에 나가면 민주당 성향이라는 식으로 데이터를 축적한 뒤, 공화당 지지 성향 유권자를 동성애 문제 등을 담은 안내편지(DM)로 자극해 투표장으로 끌어냈다.
로브는 백악관에 들어가서도 백악관이라크그룹(위그)이라는 비공식조직을 통해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주도했다고 전해진다. 리크게이트로 드러난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침공 정보조작이 이 조직을 통해 주도됐다고 특별검사 조사로 드러났다. 부시가 로브를 끝까지 지켜려고 하는 것은 그가 없는 부시 행정부를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관여한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의길 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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