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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4.18 13:34 수정 : 2007.04.18 19:39

버지니아 공대 총격사건의 가해자인 조승희씨가 부모와 함께 거주해온 버지니아주 센터빌의 타운하우스 앞에서 17일 기자들이 취재를 하고 있다. 센터빌/장정수 기자 jsjang@hani.co.kr

한인 사회 패닉상황…“어떻게 미국인 슬픔과 분노 달랠지”

미국 버지니아 공대의 총기난사 범인이 17일 한국인 학생인 조승희씨로 밝혀지면서 워싱턴 D.C., 버지니아주, 메릴랜드주 등 워싱턴 D.C. 주변의 한인사회는 큰 충격과 당혹감 속에서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야간영업때 돌발상황 우려 저물기 전에 영업 끝내자” 철시 사태

◇…이번 총격 사건의 충격파를 가장 심각하게 느끼는 한인들은 워싱턴 일대에서 세탁소, 델리(샌드위치 판매점), 주류판매점, 소규모 식품점, 복권판매소 등을 운영하는 자영업 종사자들이다. 이들 한인은 17일 경찰 당국이 조승희씨가 범인임을 발표한 이후 패닉 상태에 가까운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김영근 워싱턴한인회 상임고문은 한인사회의 분위기를 ‘망연자실’이라고 설명했다. 엄밀히 말해서 비정상적인 한 개인의 잔혹한 범행에 대해 한인사회 전체의 일인 것처럼 섣불리 나설 경우 역작용이 우려되고, 그렇다고 남의 일처럼 방관할 수도 없는 사안의 복잡하고 미묘한 성격 때문이다. 김 고문은 "어떻게 하는 것이 미국인들의 분노와 슬픔을 조금이라도 달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지었다.

자영업자들은 야간영업 시 발생할지로 모르는 돌발사태를 의식해 날이 저물기 전에 영업을 서둘러 끝냈다. 이날 한인들이 밀집해 ‘코리아타운’으로 불리는 애넌데일의 식당 등 평소에 심야 영업을 해왔던 한인 상점들은 야간이 되자 사실상의 ’철시’ 상태로 됐다. 한인 자영업자들의 상점이 많은 워싱턴 D.C. 지역도 비슷했다. 한국인들이 많이 종사하는 세탁소의 경우도 고객들의 발길이 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역의 한인들도 상당수가 저녁 약속을 취소하고 일찍 귀가했다고 한다. 한인 상인들 중에는 지난 1991년 로드니킹 사건을 계기로 엉뚱하게 한인상점들로 불똥이 튄 로스앤젤레스 흑인폭동의 악몽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다. 상인들은 이같은 분위기가 장기간 계속될 가능성은 적지만 만약 장기화되면 영업에 막대한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우려하는 분위기였다.

위안부 항의 워싱턴 장외집회 긴급 취소

◇…각 한인단체들은 이날 긴급비상대책모임을 열고 대응책을 논의했다.

워싱턴지구한인연합회는 이날 오전과 오전 김인억 회장 주재로 간부회의를 열고 비상대책위원회를 발족시키는 한편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기금의 모금활동을 곧 시작하기로 했다. 워싱턴 인근 지역의 교회단체들로 구성된 교회협의회도 이날 저녁 8시 페어팩스의 구민회관에서 한인 8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기도회를 열고 희생자들을 애도했다.

미하원의 일본군위안부 결의안 통과를 위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위안부문제대책위원회도 이날 긴급모임을 열고 19일로 위싱턴에서 열 예정이었던 장외집회도 취소했다. 26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미국 방문에 맞춰 백악관 앞에서 열 예정인 항의집회의 개최도 현재로서는 유동적이다. 이번 총격사건과 위안부 문제가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현재와 같은 미국사회의 분위기가 가라않지 않을 경우 역풍이 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버지니아 공대 총격사건의 가해자인 조승희씨가 부모와 함께 거주해온 버지니아주 센터빌의 타운하우스. 센터빌/장정수 기자 jsjang@hani.co.kr

“유대인학살 때 생존했던 유대인 교수가 이번에 숨져…유대인 반발 우려”

◇…한인사회는 버지니아 공과대학 총격사건으로 한국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크게 악화될 것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전종준 변호사는 "북한의 핵실험 이후 ’코리아’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않좋아졌는데 이번 사건까지 겹쳐서 폭력적인 민족으로 비쳐질까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전 변호사는 특히 독일 나치의 유대인대학살 때 생존했던 유대인 교수가 이번 총격사건의 희생됨으로써 미국 여론 형성에 영향력이 큰 유대인들의 반발 가능성을 우려했다. 워싱턴 현지에서 발행되는 한국어 신문의 한 간부는 "미국에서 한국인의 이미지는 온순하고 비폭력적인 것이었는데 이번 사건으로 많이 나빠질 것 같다"고 내다봤다. 물론 미국의 식자층에서는 이 사건이 한 개인의 범죄로 국한시키고 한국인 전체을 매도할 사안이 아니라고 냉정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일부 직장에서는 미국인들이 모여서 얘기하다가 한국인 직원이 근처에 오면 대화를 중단하는 사례도 적지 않을 만큼 이번 총격 사건은 미묘한 파장을 던지고 있다.

“조씨 부모 이웃과 거의 교류없이 지내와”

태극기와 성조기가 17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한인 거주 지역에 있는 한인회관에 조기로 걸려있다. 영어와 한글로 “삼가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부상자들의 쾌유를 빕니다”라고 쓰여있다. 로스앤젤레스/AP 연합
◇…총격사건 범인 조씨와 조씨 가족의 인적 사항에 언론의 관심이 집중됐지만 조씨 일가와 가깝게 지낸 인물이 거의 없어 언론들은 조씨 부모의 직업과 주소 등 기본적인 인적 사항을 파악하는 데도 상당히 애를 먹었다. 워싱턴의 한국 대사관과 총영사관에서도 이날 경찰의 발표가 있은 뒤에서 몇시간이 지나서야 간신히 조씨 일가의 인적 사항을 입수할 정도였다.

워싱턴지구한인연합회에 따르면 조씨의 아버지인 조성태씨는 지난 조성희씨가 8살 때인 1992년 이민을 와서 이러저러한 일을 하다가 세탁소에서 부부가 일을 하면서 세탁일을 배운 뒤 세탁소를 인수해 운영했다고 한다. 현재 세탁소 운영을 하지 않지만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는 오리무중이다. 조씨 부모는 현재 워싱턴에서 남쪽으로 약 20마일 떨어진 센터빌의 타운하우스(공동주택)에서 살고 있지만 이웃과 거의 교류없이 지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조씨 부모는 1997년 이 집으로 이사왔다고 한다. 워싱턴지구한인연합회의 한 간부는 "센터빌에서 10년 정도 살았으면 적어도 한 두명은 그들을 아는 사람이 있을텐데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면 외부와는 담을 쌓고 지낸 것 같다"고 말했다.

센터빌은 버지니아주의 한인밀집 지역인 애넌데일과 매클린의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면서 약 10년전부터 개발되기 시작한 신흥거주지역으로 최근에는 ‘제2의 한인촌’으로 불릴 정도로 한인 거주자들이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7일 기자들이 찾았을 때 조씨 부모의 집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전 일찍부터 취재진들이 몰려들자 주민들은 경찰에 취재진의 접근을 차단해 줄 것을 요청하자 페어팩스 카운티의 경찰 10여명이 배치돼 취재진의 접근을 통제했다. 조씨 부모 집에 이르는 도로변에는 취재 차량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으며 CNN과 FOX 뉴스 등 미국 방송들은 생방송으로 집 주변의 상황을 보도했다. 한 인근 주민은 "조씨 부모는 참 온순한 사람들이었는데 이런 일을 당해 안됐다"고 말했다.

또 이날 오전 한국에서는 조씨 부모의 자살설이 나돌았지만 미국 경찰은 자신들이 그들을 보호하고 있다고 확인함으로써 낭설로 밝혀졌다. 미국의 연방수사국(FBI)는 사건 당일 오후 조씨 부모를 불러 조사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장정수 기자jsjang052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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