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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식 주미대사 ‘부적절 처신’…“한국 대신 사죄 표한다” |
“슬픔을 나누고 자성하는 뜻에서 32일 동안 금식을 하자.”
이태식 주미 한국대사가 17일(현지시각) 오후 기독교 신자들 8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페어팩스 카운티 청사에서 열린, 워싱턴지역 교회협의회와 지역한인회 공동 주최의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 희생자 추모 예배에서 한 말이다. 이 대사는 “대사로서 슬픔에 동참하며, 한국과 한국인을 대신해 유감과 사죄를 표한다”며 이런 제안을 했다.
이에 대해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이 대사의 사죄 표명이나 금식 제안은 정부 방침과 전혀 무관한 일”이라고 말했다. 실제 노무현 대통령이 18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한테 보낸 위로전문이나,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이 17일 늦은 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한테 보낸 조문서한엔 “위로와 애도”는 있지만 “사죄”라는 단어는 없다. 대한민국 정부가 공식 ‘사죄’할 일은 아니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 대사가 개인 자격이 아니라 “대사로서” 32일간 금식을 제안한 대목이다. ‘대사’의 법률용어는 ‘특명전권대사’로, “주재국에 대해 국가의 의사를 전달하는 임무를 지니며 국가의 원수와 그 권위를 대표한다.”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구한 한 외교부 직원은 “외교관을 ‘언어의 예술사’라고 부르기도 하는 건 외교관의 말과 행동이 한 국가의 품격 및 외교정책을 대변하기 때문”이라며 “이 대사의 이번 처신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다른 관계자는 “국가공무원이 공무와 개인의 종교 행위를 뒤섞는 건 심각한 문제”라고 비판했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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