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4.20 09:29
수정 : 2007.04.20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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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CSD의 Korean-America 학생들의 주최로 열린 추모제. ⓒ 한겨레 블로그 ri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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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의 파장은 미국 뿐 아니라 한국까지 휩쓸었다. 오히려 미국인 켈리포니아 보다 한국이 더욱 더 큰 충격을 받은 듯 하다. 내가 있는 UCSD에서는 오늘 한국학생들 주체로 추모제가 열렸다. 이들은 한국인인 것 때문에 우리가 사죄할 까닭은 없지만 "미셸 위가 골프 대회에서 선전하면 전 한국인이 자랑스러워 하면서 이렇게 안 좋은 일에는 쉬쉬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며 더 많은 책임감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추모제를 지켜보면서 그리고 한국의 이 사건에 대한 반응을 생각해보고 있자니 조금 고통스러운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이 사건이 "미국"에서 일어나지 않았다면? 만약 이 사건의 범인이 한국인이 아니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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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인간적인 범죄에 대한 안타까움과 미안함, 그리고 위로가 국적을 뛰어넘어 존재할 수는 없는 걸까. ⓒ 한겨레 블로그 ri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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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을 초월해서 우리는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범죄들과 테러에 분노하고 그 피해자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내야 할 것이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세계 곳곳의 사람들과 우리는 국적이라는 차이 보다 더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한 가정의 아빠로 엄마로 그리고 딸로 아들로, 노동자로 학생으로, 내일의 희망을 가지고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말이다.
그러나 여전히 국적이 다른 모든 정체성을 압도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먼저 상대의 국적을 따지고 상대 국가와 자신이 속한 국가의 위계 질서를 생각한다. 그래서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한국인의 범죄는 마치 전 국민의 죄인양, 전 국가의 수치인양 여기면서도 최근 PD수첩에서 보도했던 필리핀인을 대상으로한 한국인의 범죄에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 미국 앞에서는 한 없이 작아지던 한국이 필리핀 앞에서는 너무도 당당해 지는 것이다. 1세계를 향한 끊임없는 동경과 3세계를 향한 끊임없는 경멸이라는 준 주변부로서의 한국의 이중적인 모습이 바로 이렇게 서로 다른 태도를 낳은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이 지금 미국인들에게 보내는 위로는 얼마나 순수할까. 우리는 미국인들의 아픔에 정말로 공감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강대국 미국의 눈 밖에 날까 두려운 것일까. 같은 인간으로서 이 총기 난사 사건에 아파하고 피해자들에게 위로를 보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그 아픔과 위로가 미국이라는 국가 뿐 아니라 한국이 상처를 주고 상처를 줬던 모든 나라들에게로 확장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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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도한다. 이번 총기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이들 뿐 아니라 미국으로 인해 고통받는 이라크 인들과, 한국인으로 인해 고통받는 필리핀 여성과, 베트남 전에서 한국군에 희생당한 이들과, 그리고 비 인간적인 범죄와 억압으로 인해 고통받는 이 세상 모든 이들을 위해서. 그들은 국적을 뛰어넘어 사과받고 위로받을 권리가 있다. ⓒ 한겨레 블로그 ri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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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사회를 지배하는 민족주의와 힘의 외교 논리를 극복하는 힘은 바로 국적과 국가간의 위계 질서를 뛰어 넘은 양심과 연대의 세계화일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꼬리표처럼 붙어있는 국적을 넘어 한국인이 피해자가 아니더라도, 한국인이 가해자가 아니더라도 동시대를 살고 있는 세계 모든 이들의 아픔과 상처에 대해 공감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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