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4.20 14:37
수정 : 2007.04.20 17:16
|
버지니아 알렉산드리아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중상을 입은 아들을 둔 어머니 마티 반 후크가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는 모습이다. 알렉산드리아/AP 연합
|
조승희 총기 사건이 있던 날 나는 텍사스주 오스틴에 있었다. 66년 오스틴의 텍사스 주립대 교정에서는 총기 난사로 16명이 사망하고, 30여명이 다친 사고가 있었다. 조승희 사건 이전까지 미국 역사상 최악의 학내 총기사고였다. 그러나 사고 다음날, 그러니까 신문이 이를 처음으로 다룬 날 권위지 <뉴욕타임스>는 1면에 2개의 기사가 있었을 뿐, 2~3~4면으로 이어지는 종합면에는 관련 기사가 전무했다. 관련 기사는 24~25면에 처박혀 있었다. (물론 타블로이드 <유에스에이투데이>는 1~4면에 큼직한 그림까지 곁들여 사건을 보도했다.)
나는 지난 열흘간 하루 10~12시간씩 현직 언론인과 저널리즘 스쿨 학자들, 텍사스와 오하이오주의 정치인들과 토론과 발표를 했다. 정치인들은 공화당쪽이 많았다. 최근 몇일간은 밤을 새다시피하며 신문을 읽고, 텔레비전을 봤다. 하지만 가장 상업적이고 선정적인 <폭스> 뉴스조차도 초기에 조씨가 한국인이라는 점을 언급하고 넘어갔을 뿐, 이제는 '왜 마음이 병든 이 청년이 보여준 여러 징후와 그를 치료 혹은 감금할 기회를 미국은 놓쳤는가' 식의 분석으로 공을 넘긴 상태다. 조승희가 보낸 테이프 전체를 공개한
등 미국 텔레비전 방송국들의 결정은 엽기적이었지만 (시청률을 올려주는 ‘그림’이 확보됐기에 날뛰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기자보다 심리학자들과 범죄 전문가들의 분석이 방송의 주를 이루고 있다. 어제밤에 에서면 5명 이상의 심리학자와 정신과 의사가 출연했다.
애초 나는 이번 사건이 미국 사회 내 총기 규제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질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의외로 민주당 등 총기 규제 진영이 힘을 받지는 못하는 것 같다. ‘학생중 누군가 총을 소지하고 있었다면 이렇게 많이 죽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믿는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영국의 폭정에 맞서 총을 들고 싸운 민병대를 독립의 뿌리로 두고있는 미합중국에서 총기규제에 대한 논의는 뫼비우스의 띄처럼 돌고 돌 것이다. 어쨌든 미국 지역사회에서 영향력이 큰 등 공영 방송들은 조승희 비디오를 트는 것조차 자제하며 이 사건을 철저히 ‘마음이 병든 한 청년의 사건’로 보도하고 있다.
내가 만난 이들 사이에서는 한국 언론과 한국 정부가 ‘오바’ 하는 것이 화제가 되고 있다. 오전에 만난 클리블랜드시의 시의원들과 지역 유지들은 ‘이게 왜 한국에서 미국보다 크게 다뤄지냐’고 되물었다. 내게 예의상 하는 말이 아니었다. 한 지역 언론인은 내게 ‘혹시 미국에 사는 한인들이 9.11 이후 미국내 무슬림들이 당한 피해가 자신들에게 재현될까 우려해 그러는거 아니냐, 그렇다고 해도 너무 저자세다' 라고 지적했다. “수민, 여태까지 미국에서 일어난 수많은 총기 난사 범인의 대부분은 백인 남자였어. 그러나 거기에 대해서 백인들이 사과한 적도, 남자들이 미안해한 적도 없어. 이번 범인이 백인 남자가 아닌 것이 놀라울 따름이야.”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