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4.20 19:01
수정 : 2007.04.21 21:36
“청소년 좌절, 총기난사 비화는 미국서만 가능”
FBI, 콜럼바인비극 뒤에도 총기문제는 함구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 조승희씨가 언론에 보낸 동영상 자료는 범행 동기에 강한 ‘사회 증오’가 고여 있음을 보여주었다.
‘사회 증오형 범죄’는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나, 미국에서는 다른 나라들보다 버지니아 참사처럼 대량살인사건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높다. 다인종 다민족 국가인 미국은 사회갈등도 복잡한데다 총기 소지까지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사회 증오형 대량살인’은 ‘미국적 범죄’의 전형이라는 분석이 미국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너무나 미국적인 범죄=영국 <인디펜던트>는 20일 조앤 스미스가 쓴 칼럼에서 “청소년의 심리적 좌절은 어느 사회에나 있지만 총기난사 사건으로 발전하는 건 미국에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영국에선 기껏 칼로 무장하지만 미국에선 대량살인이 가능할 만큼 충분한 총기로 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사회 증오형 범죄자가 “총 대신 칼을 쥐었더라면 희생자가 그렇게 대량으로 발생할 수 없으며, 피해자들이 그를 제압할 가능성도 있다”고 썼다. <뉴스위크>의 리처드 울페도 “총기 살인은 세계 어디서나 벌어지지만, 총기난사 대량살인은 미국만의 현상”이라고 꼬집었다.
1991년 한국에서 터진 ‘사회 증오형’ 범죄인 ‘여의도광장 차량질주 사건’도 이런 시각을 뒷받침해준다. 당시 1명의 어린이가 희생당했지만, 범인이 차량 핸들 대신 총기를 잡았더라면 피해가 끔찍하게 증폭됐을 것임은 틀림없다.
범죄심리학자인 잭 레빈 미국 노스이스턴대 교수는 이미 1985년 <대량살인: 미국의 커가는 위협>에서 대량살인이 ‘미국적 폭력의 전형’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편견과 폭력> 등 20여 권의 저서를 통해 이 분야 연구를 개척한 그는 인종주의, 반유대주의, 사회적 소수집단의 소외감 등 ‘증오 폭력’의 원인을 분석하면서, 이런 증오가 ‘대량살인’의 참사로 발전하는 건 결국 범죄자의 중무장이 가능한 미국적 조건에 있다고 설명했다.
압도하는 비관적 전망=버지니아공대 참사가 미국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총기 보유의 권리’에 수정을 가할 것으로 보는 이는 많지 않다.
1999년 콜럼바인 고교 총기난사 사건 이후 연방수사국(FBI) 산하 폭력범죄분석센터와 연방수사국아카데미 등이 작성한 ‘학원 총기사건 보고서’는 놀랍게도 ‘총기 문제’에 관해서는 거의 함구한다. 보고서는 ‘학원 총기사건에 대한 오해’로 △모든 범인은 비슷하고 △외톨이이며 △범행 동기가 극단적 복수심에 있다는 ‘선입견’을 비판하면서, “무기에 대한 쉬운 접근 가능성이 가장 중요한 위험 요인”이라는 시각 또한 ‘오해’라고 비판한다. 보고서는 학원 총기사건 발생의 개인·가정·학교·사회적 배경을 분석하면서도 △미디어의 영향 △마약과 알코올 △모방 효과 등은 언급했지만 ‘총기 소지’ 문제는 피해가고 있다.
<인디펜던트> 워싱턴 특파원 루퍼트 콘웰은 20일 “심리적 좌절감을 가진 이들은 모방의 유혹 속에서 버지니아공대 사태를 엿보며 더 큰 충격을 예비하고 있다”며 “미국이 ‘총기의 마법’에서 헤어나올 능력이 없는 한, 토네이도가 계절마다 닥치듯 참사는 되풀이될 것”이라고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이상수 기자
lee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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