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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4.25 17:26 수정 : 2007.04.25 17:26

버지니아 집단 살인극은 그 자체의 충격성과는 별도로 한국 사회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었던 문제점들을 삽시에 보여 주었다. 제일 먼저 드러난 것은 한국 언론의 취재력 빈곤과 통찰력 결핍이었다. 한국 언론은 사건의 갈피를 전혀 잡지 못한 채, 미국의 보도를 베껴 옮기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범인이 중국인이라느니, 치정 문제로 빚어진 사건이라느니 등의 오보를 남발했다.

다음으로 드러난 것은 한국 전문가 집단의 비전문성이었다. 그들은 교수입네 혹은 학자입네 하며 신문과 방송에 나와 어설픈 분석과 성급한 일반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그들이 우리에게 알린 정보는 대부분 설익은 것이었고 자의적이고 임의적인 것투성이였다. 조선일보에 게재된 김지하의 사죄시는 무지와 비굴의 극치를 보였고, 한겨레신문에 미국문명사의 권위자라고 소개된 김우창 교수의 분석 역시 무리와 오류를 담고 있었다. 특히 조승희가 말한 이스마엘 도끼를 허만 멜빌의 소설 '모비딕'의 인물 이스마엘과 대비시킨 점과, 버지니아대 영문과 교수의 시 경향에 견주어 조승희 인격의 충격성을 논증하려 한 점은 의미 없는 현학 이상도 이하도 아닌 수준이었다.

외교관이고 대사라고 하면, 그가 전문가에 속하는지 아닌지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볼 수도 있을 터이다. 나는 이태식 대사를 전문가라고 보지는 않는다. 한국에서 출세한 관료치고 전문적 식견을 지니고 있는 사람을 여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번 FTA를 성사시켜 한나라당 전여옥이한테 극찬을 받은 김현종 본부장 역시 유치하고 무지한 모습을 스스럼 없이 나타냈었다. 미국에서 교육 받은 그는 협상에 임하기 전 한국 역사책을 많이 읽었다고 자랑했는데,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그가 과거에 한국 역사책을 평소 얼마나 안 읽었었는지를 드러내는 발언이었다. 게다가 그는 손자병법을 운운하면서 '원교근공(遠交近攻)'론을 뽑내듯이 말했는데, 과연 오늘날 자유무역협정과 중국 중원 제국의 대오랑캐 전략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내 상식으로는 당최 납득할 수 없었다.

김현종이나 이태식은 모두 속칭 미국 명문대에서 공부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거기에 기독교 신자이기까지 하면, 그는 이 시대의 유형적 인물에 속한다. 그들은 대체로 조국의 문화에 어둡고 미국에는 스스로 밝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물질 문명과 약육강식의 신봉자들이다. 그런 인물이 민족에게 무익하다는 것을 보여준 원조는 이승만이었다. 오죽 했으면 미국이 신생국 지도자를 낙점할 때, 미국 유학과 기독교 신앙 두 가지를 자격 조건으로 삼았겠는가? (이게 안 되면 군부 독재자를 선택한다.) 그들은 조국에 무지하며 기실 미국을 제대로 알지도 못한다. 그리고 그들 스스로 자신의 약점을 잘 알고 있는 수가 많다. 그러므로 그들은 스스로의 약점을 감추는 법을 터득하고 있는데, 그 방법이란 단적으로 말해서 '비굴한 처신과 기만적 술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태식은 이 두 가지 악덕을 겸비하고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그는 조승희가 사건을 일으킨 직후, 비굴하기 짝이 없는 발언을 때를 만났다는 듯이 늘어 놓음으로써, 부도덕한 방법으로 한국인을 제압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 저와 우리나라와 여러분 모두를 대표하는 대사로서 이 슬픔의 순간에 동참하면서 우리나라와 우리 국민들의 유감(sorry), 그리고 사죄(apology)를 전하는 바입니다. 우리는 깊이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야 지역 공동체로 다가가서 그들의 깊고 깊은 슬픔과 애통함을 함께 나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 단계에서 한인동포사회는 현실을 직시하고 삼가 몸을 낮추어야 합니다.

그는 예의 비굴하게 몸과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나 그는 한국의 라디오에 출현해서는 사람이 달라진 듯이 도도하게 언성을 높인다. 그는 기만을 행할 때에는 힘이 솟나 보았다.

"제가 언제 사죄한다는 표현을 했습니까? 저는 유감이라고- We feel very sorry - 했을 뿐입니다."

그는 사죄 즉 apology 란 말을 쓰지 않았다고 강변했다. 아울러 그는 치사하게 번역자에게 책임을 돌렸다.

논점이 산만해지지만, 나는 여기서 우리나라 전문가 집단의 비전문성을 또 하나 볼 수 있다. 대담자 손석희는 이태식의 영문 발언 내용도 점검하지 않은 채 인터뷰를 했음이 드러난다. 그는 이태식의 기만을 짚어내지 못한다. 대신 그는 짜증을 참지 않기로 한다.

"대사님은 늘 이렇게 인터뷰를 하십니까?.... 인터뷰를 계속해야 할지 말지 모르겠네요."

며칠 후 손석희는 자기 수양이 부족했던 탓이라고 사죄한다.

아래처럼 정리하고 나면 한국 전문가 집단의 행태는 희극 수준에도 못 미침을 금세 알 수 있다.

1. 조승희 사건은 명백히 미국의 문제다.

2. 그것을 주미대사라는 미국 전문가는 100% 한국인의 문제라고 단정한다. 그에게는 좋은 것은 미국이고 나쁜 것은 한국이라는 고정관념이 있기 때문에 그것은 오히려 당연한 판단일지 모른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종주국에게 사죄한다.

3. 그런데 '사죄'란 표현이 나중에 문제가 된다.

4. 그는 '사죄'라고 안 했다고 기만한다.

5. 대담 전문가라는 손석희는 심증은 가는데 물증은 없어 짜증을 내고 이어 여론이 안 좋아진다.

6. 그래서 '사죄'란 말을 써놓고 안썼다고 기만한 미국 전문가 대신 대담 전문가가 '사죄'를 하는 기현상이 빚어진다.

조승희 사건의 본질은 미국의 것이고 이태식 사건의 본질은 한국의 것이다. 그런데 두 사건은 180도 전되되고 말 뻔했다. 아울러 이 두 사건의 본질이 도치되면서 한국 사회에 나타나는 여러 현상들은 그로테스크한 수준이라고밖에 달리 평할 말이 없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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