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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5.07 13:51 수정 : 2007.05.07 15:46

ABC방송과의 인터뷰에 응한 정씨 부부. ⓒ 한겨레 블로그 김외현

관련기사: '바지값 600억' 판사에 비난 빗발

3일 뉴스 '굿모닝아메리카'의 한 장면.

이 사건의 당사자 세탁소주인 정진남씨 부부가 소파에 앉아있다. 맞은 편 소파에는 ABC의 기자가 앉아있다. 기자가 묻는다.

"그 사람에게 바지가격을 몇 천 달러나 더 변상하겠다고 했는데도 싫다고 했다는 말씀이시죠?" (You offered to give him the value of the pants, and much more, thousands of dollars more. And the answer was no?)

바지, 8백달러짜리…몇천달러 변상 제안도 거부

정진남씨는 힘차게 고개만 세번 끄덕였다. 긍정의 표시였다. 피어슨 판사가 배상 따위는 필요없고 자신의 '상처입은 마음'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는 의미다. 육성은 한 마디도 등장하지 않았다. 고개를 정말로 힘차게 단호하게 끄덕였다.

하지만 이런 인터뷰는 텔레비전 방송에서 좀처럼 볼 수 없다. 영상뿐 아니라 오디오까지 제공할 수 있는 매체를 가지고 하필 고개 끄덕이는 모습만 내보낸 이유는?

위 관련기사 말미에 집어넣은 <뉴욕타임스>의 보도는 조승희 총격사건 당시 나왔던 22일자 보도내용이다. 조승희 부모가 워싱턴 센트르빌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데, 워싱턴DC를 넓게 보았을 때 2000여개의 세탁소 중 한국인이 1800여개, 즉 90%를 운영하고 있다는 얘기다. <뉴욕타임스>는 당시 보도에서 세탁소업이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선호되는 직업"이라고 전하고, 이는 "일요일에는 교회가기 위해 쉴 수 있고, 영어를 꼭 잘 하지 않아도 되고, 고객들과의 교류가 간단하면서도 풍부"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Dry cleaning is a favored profession among Koreans - some 1,800 of the 2,000 dry cleaners in the greater Washington area are run by Koreans - because it means Sundays off for church and sparse need for proficient English, exchanges with customers being brief and redundant.)

방송 출연해 고개만…하소연 제대로 못 해

이번 사건의 주인공 정진남씨도 이들 중 한 명이다. 방송에 나와서까지 '하소연'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아마도 그는 영어를 그다지 유창하게 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억울한 사람들은 대개 하고픈 말이 많다. 특히 언론을 대할 때는 더욱 그렇다.

정씨는 워싱턴에서 세탁소를 운영한지 7년이 되었다고 하고, 통신이나 <인디펜던트>가 그와 그 가족과의 인터뷰를 싣고 있기는 하지만, 언론이 되었든 피어슨 판사가 되었든 정씨와 얼마나 자유로운 소통을 했을지 다소 염려스럽기는 하다.

그러나 피어슨 판사는 이런 정씨에 대해 가혹해 보인다. 자신이 겪은 "정신적 고통과 불편함과 불쾌함(mental suffering, inconvenience and discomfort)"을 보상받기 위해 가차없다.

'고객만족 보장' 등 모두 소비자 기만 사기 주장

우선 소비자보호법 위반에 따른 배상금을 요청했다. 워싱턴DC주 법률에 따라 하루 한건에 1500달러씩이다. 피어슨 판사는 '고객만족보장'이나 '1일서비스' 등이 모두 소비자를 기만한 사기 건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12건을 1200일동안 위반한 것으로 계산했다. 끝으로 이 값을 정씨 부부와 아들 세 명이 위반한 것으로 간주, 3을 곱했다. (6천4백80만달러)

그가 제출한 재판서류에 따르면 그에게는 자동차가 없다. 그리고 피어슨 판사는 앞으로 정씨의 가게를 이제 이용할 계획이 없다. 따라서 앞으로 10년동안 매주 주말 인근 세탁소에 갈 때 쓸 렌터카 비용을 청구했다.(만5천달러)

끝으로 자신이 입은 심적 상처에 대한 위로금과 소송비용도 포함시켰다. 판사이기 이전에 변호사였던 피어슨 판사는 스스로를 변호하고 있다.

전문가도 누리꾼도 한결같이 "집어쳐라"

미국 언론도 이 얌체같은 피어슨 판사를 비판하고 있고, 언론에 인용되는 전문가들도 한결같이 그를 비난하는데다, 일반 누리꾼들의 블로그 포스트나 그에 딸린 댓글 역시 반(反)피어슨판사의 내용이다. "어처구니 없는 소송"을 이제는 그만 두라는 얘기다.

다음 달이면 심리가 끝나는 이 사건의 재판에서 피어슨과 정씨 가족 사이에 어떤 합의도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미 정씨는 '지쳐'있다. 재판비용은 비용대로 지출되고 있고, 연일 잠못 이루는 밤을 보내며 심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들다는 것이다.

손해배상과 관련된 미국의 소송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다. 그만큼 '어이없어 보이는' 사건도 많았다.

1994년 뉴멕시코에서 맥도날드 커피를 마시다가 허벅지에 쏟아 화상을 입은 스텔라 라이벡(81)씨가 '커피가 너무 뜨겁다'며 제기한 2천7백만달러짜리 소송은 대표적인 예다. 2002년 크리스마스가 끝나고 JC페니백화점의 재고방출 세일에서 손님들과 물품 경쟁을 하다가 난투극에 휘말린 캐롤린 웰즈는 백화점에 60만달러 소송을 냈다. 같은 해 몬타나에서는 '잭애스(멍청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남자가 같은 이름의 TV프로그램이 자신의 이름을 '표절'하고 자신의 이미지에 먹칠한다며 방송사를 상대로 천만달러의 소송을 내기도 했다.

정씨의 변호사 매닝씨 사무실에 걸려있는 바지. 피어슨 판사의 바지가 ‘거의‘ 확실하다. ⓒ 한겨레 블로그 김외현

곧 되찾아 돌려주려 했으나 "내 바지 아니다"

다시 이 사건으로 돌아와보자. 피어슨 판사의 바지는 오래지 않아 결국 세탁소에서 발견되었다. 세탁소쪽은 돌려주려고 했으나 피어슨은 받지 않는다 했다. 자신의 바지라고 믿지 않는다고 했다. 세탁 맡길 때 붙인 꼬리표를 보니 피어슨 판사의 바지가 맞다. 잃어버렸다는 가는세로줄무늬의 히키프리먼 바지도 맞다.

그런데도 피어슨 판사는 자기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판사는 800달러를 주고 구입했다고 했다. 히키프리먼이라는 브랜드는 미국동부풍의 나름대로 고급스러운 브랜드라고 한다. 최고의 명품은 아니라고도 한다. 여하튼 그 비싼 바지를, ABC에 의하면 "가장 좋아하는(favorite)" 바지를 찾아가지를 않는다.

바지는 1년 넘도록 정씨의 변호사인 매닝씨 사무실에 걸려 있다.

판사가 법 들이대며 법대로 하자고 하면...

판사가 '법'을 들이밀며 '법대로 하자'고 하면, 영어를 제대로 하는지도 의심스러운 '이주민'은 그 앞에서 작아질 수 밖에 없지 않나. 신문에 담긴 삽화 이미지만큼이나 작아지지 않을까.

입장 바꿔놓고 방글라데시 출신의 이주노동자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한국인 판사가 밥을 먹고 배탈이 나면, 배탈이 났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이주노동자는 긴장할 지 모른다. 소송을 건다면? 모르긴 해도 잠적해버릴 성 싶다.

이 기사를 쓰면서 자꾸만 미국의 수많은 한국인 세탁소 주인들이 자꾸 오버랩된다. 한국의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떠오른다. 꼭 이주노동자가 아니더라도, 권력 앞에서 초라해진 약자자들이 두려움에 몸을 떨고 있음이 느껴진다.

정씨 부부가 운영하는 세탁소 ‘커스텀 클리너스‘ ⓒ 한겨레 블로그 김외현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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