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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6.07 18:19 수정 : 2007.06.07 18:29

숨진 채 발견된 빈스 포스터는 오른손에 권총을 거꾸로 쥐고 있었다.

1993년 7월 20일 여름날 새벽 6시, 버지니아주의 주립공원인 포트 마시 공원에서 40대 남성의 주검 한 구가 경찰에 발견된다. 그는 손에 권총을 거꾸로 쥐고 있었고, 입 안으로 발사된 총알에 숨진 것이었다. 현장에서 발견된 서류가방 속에서 27조각으로 발기발기 찢어진 메모가 나왔다.

"워싱턴에서 이런 일을 맡아, 공인으로 조명받으며 살아가는 것, 나와는 맞지 않습니다. 이곳에선 재미삼아 다른 사람을 욕하더군요."

그는 아칸소주의 변호사 출신으로, 당시 백악관 부보좌관으로 일했던 빈스 포스터였다. 사망 당시 45세로, 부인과 슬하에 세 명의 자녀가 있었다. 경찰, 의회, 그리고 사건을 담당했던 연방수사관들은 그의 죽음을 자살로 결론짓고 수사를 종결했다. 담당 수사관 가운데는 훗날 클린턴의 섹스 스캔들을 수사했던 케네스 스타 연방검사도 포함돼 있었다.

클린턴의 어릴적 친구, 힐러리의 변호사 동료
잘 나가던 그가 왜 죽어야 했나

빈스의 죽음은 세간에 화젯거리가 됐다. 그는 그 해부터 임기를 시작했던 빌 클린턴 대통령의 유치원 친구였고, 영부인 힐러리의 변호사 활동 시절엔 절친한 회사 동료였다. 아칸소주의 변호사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해 능력도 인정받았던 그였다.

이렇듯 출세가도로 따지자면야 뭐 하나 빠질 것 없어보이던 사람이 워싱턴 정가 입성 4개월만에 돌연 '자살'했다는 소식은 많은 사람들의 의혹을 불러 일으켰다. 여기에 '빈스'라는 분위기 있는 이름과, 항상 말끔하고 단정했던 용모는 그를 미스테리의 주인공으로 부각시켰다.

음모론이 솔솔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의혹의 내용은 크게 (1) 다른 곳에서 살해된 뒤 공원에 버려졌다 (2) 백악관이나 제3의 장소에서 자살한 것을 관계자들이 발견해 공원으로 옮겼다로 요약된다.


(1) 타살 뒤 주검 유기설 - 타살을 주장하는 이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빈스가 클린턴에게 치명적인 정보를 공개하려 했기 때문에 제거됐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빈스가 힐러리와 '부적절한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제거됐다고 하기도 한다.

(2) 자살 뒤 주검 유기설 - 사망 현장에서 탄약이 발견되지 않은데다, 비탈길이었음에도 피가 비탈길 윗쪽으로 흐른 자국이 있다고 주장한다. 빈스가 백악관이나 제3의 장소에서 총격을 당한 뒤, 죽은 채로 이 공원까지 옮겨왔다는 것이다. 이같은 맥락에서, 기사에서 언급된 빈스-힐러리 염문설은 처음 나온 것이 아니다. 이 당시에도 빈스와 힐러리 사이에 있었던 '관계'로 인해 빈스가 제거됐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빈스 포스터의 죽음에 의혹을 제기한 만화. "사무실 치울 때까지 보고하지 말라고 하시는 영부인, 최초로 수감되는 영부인 될 것", "차 키, 지문, 피, 총탄, 뼛조각, 총성 등 발견된 게 없는데 자살이라니"

특종기자가 8년 취재 끝에 저술한 책에
다시 등장한 그들의 관계

이 연장선에서 워터게이트 특종기자 칼 번스타인은 8년 동안의 취재를 거쳐 힐러리의 삶을 다시 구성했다. 그리고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내용 가운데 힐러리와 빈스의 관계를 다룬 <그녀의 다른 남자 Her Other Man> 챕터를 3일 보도했다.

번스타인은 빈스를 과묵하고, 신사적이며, 꼼꼼한 통찰력이 있는 사람으로 묘사한다. 반면 빌 클린턴은 그와는 다소 다른 성향, 곧 낙천적이고, 자기 자신의 능력을 믿는 자신만만한 사람으로 그리고 있다. 힐러리는, 굳이 말하자면, 양쪽을 모두 가진 셈이었다.

빌 클린턴의 대통령 당선 뒤, 빈스 포스터가 백악관 부보좌관으로 임명됐을 때 빈스는 힐러리의 개인적 '변호사'로 사적인 일을 돌보는 것을 가장 중요한 임무로 생각했다. 힐러리는 빈스의 판단력과 큰 그림을 생각하는 통찰력을 높이 평가했다.

빈스 부부(왼쪽)와 클린턴 부부

워싱턴 정가에 익숙치 않았던 두 사람

그러나 워싱턴 백악관에서의 정치적 삶에 두 사람은 익숙치 않았다. 특히 힐러리가 맞딱뜨려야 했던 수많은 것들, 예컨대 무지막지한 자금 동원, 헐리우드에 대한 심취, 육체적 피로, 인종문제의 민감함, 새 대통령 내외에 대한 세간의 관심, 앨고어 부통령과의 경쟁심, 페미니즘에 대한 복잡한 심경, 직접 맡은 의료보험 문제 등등...

힐러리는 변하고 있었다. 백악관 초기 시절, 빌 클린턴 대통령은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매일 아침 일어나 모든 업무의 중압감을 정면으로 맞닥뜨리며 "나 이런 거 정말 좋아해(I love this stuff)"라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스태미너를 갖지 못한 그의 아내 힐러리는 그러지 못했다. 힐러리는 수척해지고 있었다. 번스타인은 93년 5월 중순에 찍은 이들 세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에 보이는 모습이 너무도 침울해 보인다고 서술한다.

빈스는 입장이 달랐다. 백악관이라는 세계 정치의 중심지에 오긴 했지만, 그가 온 것은 오히려 대통령 부부와의 사적인 관계 때문이었다. 부보좌관 임명 당시 그의 아내 리사는 그에게 "만약 가지 않는다면, 당신이 그 사람들에게 미안해하지 않을까 걱정이에요"라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워싱턴의 살인적인 물가, 부인·자녀 등 부양 가족과 떨어진 생활로 그는 힘들었다. 아칸소를 떠나 부보좌관이 된 지 4개월 뒤, 빈스는 워싱턴에 실망, 절망한 상태였다. 정치에 대한 염증이었다.

빈스는 이해했지만, 힐러리는 변했다
그래서 더이상 친구일 수 없었다.

그가 '미안해할 뻔 했던' 힐러리는 자신이 너무도 스트레스에 시달린 나머지, 더이상 그를 배려하지 않는 '상사'가 됐다. 빈스는 그녀를 너무도 잘 알았기 때문에, 여전히 그녀의 좋은 의도를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를 기반으로 존경하고 아끼며 소중히 여겼던 두 사람은, 각자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나약함'을 이해하며 서로를 걱정하며 돌보던 두 사람은, 더이상 예전과 같은 '친구 사이'를 유지하지 못했다. 힐러리가 변했기 때문이었다.

칼 번스타인 기자의 새 책 <여성지도자:힐러리 로댐 클린턴의 삶>

빈스는 일이 쌓여가고 있었고, 힐러리는 이를 참지 못했다. 빈스는 매일같이 늦은 시간까지 일을 했고, 이날 7월 20일에도 새벽 1시에 사무실을 나선 것으로 기록됐다. 점심 때 남긴 M&M 초콜렛 몇 개를 동료 린다 트립에게 건네고, 비서인 데보라 고럼에게는 "곧 돌아올께요"라고 하며 나가던 모습이 생전 목격된 마지막 모습이었다.

빈스가 숨진 채 발견됐다는 소식을 들은 힐러리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세상 사람들 천명이 자살한다고 해도, 빈스는 그럴 사람 아니다"라며 울부짖었다.

번스타인의 새 책은 빈스 포스터와의 관계 외에도 그녀의 성장과정과 대학시절, 빌 클린턴과의 만남과 결혼생활, 백악관에서의 생활, 정치인으로서의 성향 등에 주목해, 그녀의 일생을 돌이켜보고 있다. 빈스 포스터 사망 사건에 대해서는, 그가 자살했다고 추정할 수 있는 또다른 많은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타살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에게는 서운할 수 있는 저술인 셈.

클린턴 부부 소재로 한 영화에서도 참모 한 사람 자살

1998년 칸 영화제 개막작이었던 <프라이머리 컬러스>는 클린턴 부부의 백악관 입성을 소재로 만든 영화로 알려져있다. 중앙 정치무대에서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뿐, 능력은 충분히 훌륭한 남부 출신 젊은 정치가 잭 스탠턴(존 트라볼타 분)가, 훌륭한 정치적 조언자 역할을 한 부인 수잔(에마 톰슨)과 함께 대통령의 야망을 이루는 스토리다. 주인공의 섹스 스캔들 등이 르윈스키 스캔들을 연상시켜 관심을 끌었다.

1998년 칸 영화제 개막작이었던 <프라이머리 컬러스>

최근 번스타인의 책으로 빈스 포스터의 죽음이 새롭게 조명받으면서, 영화에 등장하는 한 인물의 자살을 새삼 떠올리는 이들도 있다. 스탠튼의 거짓된 모습에 실망해 자살하는 인물은 그의 참모 리비(캐시 베이츠 분)다.

과연 빈스 포스터는 자살한 것일까? 빈스 포스터는 그가 태어난 아칸소주의 호프에 있는 메모리 가든 묘역에 잠들어 있다. 그에게 묻고 싶어도,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버지니아주의 조지워싱턴공원에서 빈스 포스터가 숨진 채 발견된 위치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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