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10.03 21:44
수정 : 2007.10.04 00:57
유사 참극 겪은 아미시인들 화해 다큐 상영
‘용서의 힘’ 주제로 가을학기 잇단 토론회도
지난해 10월2일 트럭운전사 찰스 로버츠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니켈마인스 아미시 마을 초등학교에서 총을 난사해 여학생 5명을 죽이고 5명을 중태에 빠뜨렸다. 니켈마인스 마을은 평화주의자로 유명한 기독교의 한 분파인 아미시(암만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사건 직후 자살한 로버츠는 유서에서 범행 동기가 ‘어린 딸을 앗아간 신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그날 밤, 니켈마인스 사람들은 그의 부인과 부모의 집으로 몰려갔다. 그들은 로버츠의 가족을 껴안으며 ‘그는 용서받았다’고 달래줬다. 딸을 잃은 피해자 가족들은 로버츠의 장례식에 참석했고, 그의 부인과 딸들에게 자신들이 받은 성금을 건네줬다.
니켈마인스 마을이 보여준 용서의 힘은 미국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 8월 니켈마인스 마을 사람 29명은 총기난사 사건을 겪은 버지니아 공대를 찾았다. 그들은 피해자 가족들에게 ‘총을 난사한 조승희씨 역시 피해자이기에 그를 용서해야 한다’며 용서와 평화를 뜻하는 퀼트 이불보를 선물했다. 아미시가 다녀간 뒤인 지난달 30일, 버지니아공대에서는 니켈마인스와 홀로코스트, 북아일랜드의 이야기가 담긴 미국 공영방송 <피비에스>(PBS)의 다큐멘터리 <용서의 힘> 시사회가 열렸다. 버지니아공대는 영화 상영을 시작으로, 가을 학기에 ‘용서’를 주제로 한 토론회를 집중적으로 열 계획이다. 아미시 전문가 도널드 크레이빌 박사는 “아미시는 내가 먼저 용서해야 나도 용서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며 “이는 신이 인간을 용서했으니 인간도 다른 이들을 용서해야 한다고 믿는 전형적인 개신교 교리보다 더욱 강력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피츠버그포스트가제트>는 2일 전 세계에서 손님이 몰려들어, 가족과의 시간을 중요시하고 외부 접촉을 꺼리는 아미시 마을 사람들을 당황케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미시와 가까운 메논교파의 한 간부는 “멀리 이란에서도 아미시가 보여준 용서와 화해에 감명받아 만나러 올 정도”라고 말했다.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는 “9·11 동시테러 뒤 미국에서는 복수와 정의가 지배해 왔지만, 최근에는 용서로 생각을 돌리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용서의 힘>의 감독 마틴 도블마이어의 말을 전했다.
하지만 버지니아공대 학생들이 임시로 만든 희생자 기념석에 포함됐던 조승희씨의 이름은 최근 만들어진 공식 기념비에서는 빠졌다.
서수민 기자
wikka@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