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2.21 21:36
수정 : 2008.02.22 09:13
99년 경선, 통신사 로비스트 청탁에 압력행사 의혹
매케인쪽 “특혜준 일 없고 애정관계 아니다” 부인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를 사실상 거머쥔 존 매케인(71) 상원의원이 최대 위기에 빠졌다.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여성 로비스트와의 부적절한 관계나 특혜 제공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평소 높은 윤리의식과 도덕성을 강조해온 그가 낙마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1999년 초 통신회사인 팩슨커뮤니케이션의 로비스트 비키 아이스먼(40)이 매케인의 사무실과 유세장에 자주 나타나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시작됐다. 2월 매케인은 아이스먼과 함께 선박회사 간부의 마이애미 집에서 열린 선거모금 저녁식사에 참석한 뒤, 팩슨의 제트비행기를 타고 워싱턴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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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존 매케인 상원의원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주장이 제기된 비키 아이스먼. 워싱턴/AF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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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케인의 선거참모들은 두 사람의 동행에 바짝 긴장하고 두 사람을 떼놓기 위한 작전에 돌입했다. 당시 매케인의 최측근 참모 존 위버는 워싱턴의 중앙역인 유니언스테이션에서 아이스먼을 만나 매케인에게서 떨어지도록 강력히 요구했다. 선거캠프 내부 회의의 결정에 따른 것이었다. 위버는 “그 시기에 우리가 내세운 정치적 메시지는 국가의 이익을 개인이나 특정 산업의 이익보다 우선시한다는 데 중심이 맞춰져 있었다”며 “아이스먼의 등장은 그런 노력을 무너뜨리는 것으로 우리는 느꼈다”고 말했다. 매케인의 고위 참모들은 직원들에게 아이스먼의 접근을 봉쇄하도록 지시해 매케인과 충돌을 빚기도 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아이스먼은 위버를 만난 사실은 인정했으나, 그 만남에서 그런 얘기는 없었다고 부인했다. 매케인 또한 아이스먼과는 애정관계가 아니며, 아이스먼에게 특혜를 준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매케인이 팩슨의 텔레비전 방송사 인수의 신속한 처리를 촉구하는 편지를 연방통신위에 보낸 사실이 드러나면서 유착 의혹이 더욱 커졌다. 윌리엄 케너드 당시 연방통신위원장은 매케인의 요구가 민감한 시기에 이뤄졌다며, 위원회의 심사에 절차적이고 실질적인 영향을 줄 수 있었다고 비판하는 이례적 반응을 보였다. 당시 이 사안은 2년 동안 계류 중이었다.
현재 이온미디어네트워크스로 이름을 바꾼 팩슨의 최고경영자 로얼 팩슨은 매케인의 주요 재정 후원자였다. 팩슨은 또 공화당 경선 기간 제트비행기를 4차례 이상 매케인에게 빌려줬다. 게다가 매케인이 문제의 편지를 보낸 시점은 팩슨 간부들과 로비스트들로부터 2만달러 이상의 기부를 받은 뒤다.
매케인은 이밖에도 한 도시에서 두 개의 텔레비전 방송사를 운영하는 것을 허용하는 합의를 연방통신위가 지지해줄 것을 촉구하는 편지를 쓰기도 했다. 이는 아이스먼의 또다른 고객이던 통신회사 글렌케언의 사활적 이익이 걸린 사안이었다.
아이스먼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입증하려는 언론들의 검증 보도가 잇따를 게 확실시돼 끝난 듯하던 매케인의 경선 가도에 빨간불이 켜진 것은 분명하다. 매케인이 결사적으로 부인해왔기 때문에, 애정관계가 확인된다면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거기까지는 아니더라도 팩슨과의 유착 의혹은 두고두고 매케인의 두통거리가 될 전망이다.
공화당에서 ‘이단아’라는 별명을 들을 정도로 워싱턴 정가의 비도덕성을 질타하고 높은 윤리의식을 강조해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그에게 로비 추문은 훨씬 파괴력이 강하다. 매케인은 “단 한번도 로비스트나 특수 이익집단의 편을 들어준 바가 없다”고 강조해 왔다. 특히 선거자금에 대한 엄격한 규제를 주장해 왔다. 그 때문에 매케인을 미국 정치개혁의 십자군으로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의길 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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