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울의 쿠바 경제 어디로
미 금수조처 47년·서비스업 76% 불균형 심각“중국처럼 개방” 목소리…화폐개혁 선결 과제 “칫솔 하나를 사려고 이틀을 일해야 한다.” 한 쿠바인이 24일 <비비시>(BBC) 방송 인터뷰에서 털어놓은 얘기다. 쿠바가 처한 열악한 경제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라울 카스트로 체제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는 먹고사는 문제가 얼마나 나아지느냐에 맞춰져 있다. 쿠바인들은 대부분 한달에 약 15~19달러를 받아 살아간다. 정부에서 교육, 의료, 식품 등 기초 생활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해 “굶어죽는 사람은 없다”지만, 쓸 돈이 없으니 살림살이는 팍팍할 수밖에 없다. 실질구매력(PPP) 기준 2007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4500달러다. 중국(5300달러)과 필리핀(3300달러)의 중간 수준이다. 쿠바 경제의 최대 걸림돌은 47년간 지속된 미국의 금수조처다. 쿠바는 지난해 금수조처로 그동안 890억달러의 경제적 피해를 입었다고 밝힌 바 있다. 유엔 총회에서 금수 해제 촉구결의안이 16번이나 통과됐지만, 미국은 요지부동이다. 피델 카스트로가 퇴임을 밝힌 뒤에도 “조만간 금수조처 해제는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라울이 쿠바 내부에서 경제회생의 길을 먼저 찾아야 하는 까닭이다. 그렇지만 경제구조는 불균형 그 자체다. 관광이 국내 경제를 거의 지탱하고 있다. 2007년 국내총생산에서 관광 등 서비스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76%나 된다. 1989년 27만명이던 관광객은 2006년 220만명으로 급증했다. 1989년 옛 소련의 붕괴 직후 ‘특별 내핍’ 기간의 어려움에선 벗어났지만, 니켈·설탕·담배 등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수출구조에도 별 변화가 없다. ‘실용주의자’로 평가받는 라울에 쏠린 기대 만큼 그의 어깨는 무겁다. 알베르토라고 밝힌 쿠바인은 <에이피>(AP) 통신에 “왜 우리는 공산주의 국가면서도 마음대로 많은 돈을 벌고, 자동차와 휴대전화를 살 수 있는 중국처럼 될 수 없냐”며 중국식 경제개방에 대한 바람을 얘기했다. 라울이 쿠바를 지탱하는 관광산업 확대를 주도했다는 점은 이런 기대를 키우고 있다. 약 15만명에 이르는 자영업자도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경제 살리기에 적극 나서야 하는 라울의 최대 과제로는 이중 화폐구조 개혁이 꼽힌다. 쿠바인들은 ‘불태환’ 페소로 월급을 받지만, 외국인들이 달러로 바꿔 쓸 수 있는 ‘태환’ 페소가 아니면 시장에서 물건을 구입할 수 없다. 태환 페소는 미국 1달러와 가치가 거의 같지만, 불태환 페소의 가치는 24분의 1밖에 안된다. 암시장이 번성하고 부패가 만연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라울도 취임연설에서 “쿠바 페소의 발전적이고 점진적이며 신중한 평가절상을 검토 중”이라며 머지않아 환율 재평가를 단행할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라울은 “충격이나 부작용 방지”를 내세워 점진적 변화를 강조하고 있다. <로이터> 통신도 “일부 경제개혁 조처와 환율 재평가가 예상되지만, 급격한 변화의 가능성은 낮다”고 내다봤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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