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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버클리 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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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독설가·사회자 명성 20세기 후반 미국 보수주의 흐름의 중심에 섰던 보수논객 윌리엄 버클리 주니어(사진)가 27일 코네티컷주 스탬포드 자택에서 82살로 숨졌다. 서재에서 숨진 채 발견된 버클리는 당뇨와 폐기종을 앓아왔으나 마지막 순간까지 왕성한 저작활동을 벌여왔고, 이날 밤도 칼럼을 집필 중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아들인 크리스토퍼 버클리는 말했다. 버클리는 미국의 전통적 보수주의와 자유의지론(Libertarianism)을 접목해 미국 현대보수주의의 초석을 놓은 인물이다. 60년대 배리 골드워터를 시작으로 로널드 레이건, 조지 부시의 당선을 낳은 보수주의 흐름의 정신적 지주였던 그의 사망은 새 출발점에 선 미국의 현실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역사학자 아서 슐레징어는 버클리를 “진보진영의 골칫거리”라고 평한 바 있다. 버클리의 명성은 보수적 격주간지 〈내셔널리뷰〉를 통해 쌓은 것이다. 1955년 29살의 나이에 아버지로부터 받은 10만달러를 투자해 이 잡지를 창간한 그는 약 50년 만인 2004년 손을 떼기까지 ‘온더라이트’라는 고정칼럼에 5600여차례 글을 실어 보수주의를 설파했다. 그는 괴팍한 성격에 문장가와 독설가로 이름을 날렸지만, 공영방송 〈피비에스〉에서 최장수 텔레비젼쇼 ‘파이어링라인’의 사회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밖에도 그는 대양횡단에 나서고, 스파이소설·정치서적 등 55권의 책을 남길 만큼 팔방미인이었다. 지난해 정치소설과 〈내셔널리뷰〉의 역사를 돌아보는 회고록을 탈고했고, 올해에는 골드워터와 레이건에 관한 자신의 비망록을 출간할 예정이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미국은 가장 훌륭한 작가이자 사상가를 잃었다”고 애도하고 “미국의 보수주의를 정치 주류에 올려놓고, 미국의 냉전 승리와 현재도 계속되는 보수주의 운동의 지적 기반을 놓은 인물”이라고 치켜세웠다. 류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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