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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병상에서 국가원수직을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방장관에게 이양한 피델 카스트로가 2006년 쿠바 의회에서 동생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 앉고 있다. 아바나/AF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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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델 동생 라울 카스트로 ‘취임 6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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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울 카스트로 취임 뒤 개혁조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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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가 등 현실 제약 한계…‘수문장 국가’ 견지 ‘피델 카스트로 이후’ 사회주의 국가 쿠바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 이것은 2006년 7월, 당시 80살의 카스트로가 병석에 눕기 전부터 국제적 관심사였다. 동생 라울 카스트로가 최고 지도자인 국가평의회의장에 취임한 지 오는 24일로 6개월을 맞는 지금, 그 답은 분명해졌다. 라울은 쿠바가 예상대로 ‘체제 수호형’ 노선을 지향할 것임을 확인시켰다. 사회주의 체제를 버리고 자본주의 시장경제 노선으로 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강화하는 데 필요한 제한적 경제개혁 조처를 취했다. 라울은 지난 2월 1인자에 선출된 뒤, 잇따라 경제 개혁조처를 내놨다. 휴대전화, 컴퓨터 등 가전제품의 일반 판매 허용, 관광호텔 이용 허용, 개인 및 농협에 농지 임대 확대 등이다. 주로 국민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리는 생활 속 규제 해제 조처다. 광범위한 사유화나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근본적 변화가 아니라, 경제적 주변부에 국한된 제한적 개혁인 것이다. <로이터> 통신은 지난 11일 “많은 쿠바인들이 변화는 상징적일 뿐, 달라진 게 없다고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한계는 체제 수호 의지 못잖게, 현실적 제약에 따른 결과다. 미국의 반세기 경제봉쇄 등으로 파탄난 경제는 유가와 곡물가 급등이라는 악재까지 떠안았다. 한달 평균 17~20달러를 받는 쿠바인들에게 최소 200달러가 필요한 휴대전화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식량수입은 지난해 약 15억달러에서 올해 20억달러를 넘어섰다. 라울은 지난달 27일 “모든 문제를 풀려면 우리가 가진 것 이상으로 쓸 수가 없다”며 “좋은 소식만 듣지 않는 데 익숙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국가통제 하의 계획경제 방향은, 개방의 범위가 국가체제를 위협할 때는 국가의 규제권력을 행사하면서 통제를 강화하는 이른바 ‘수문장 국가’의 모습을 확인시켰다. 당연히 정치 체제의 근본적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호세 라몬 마차도 벤투라 등 ‘혁명 1세대’가 국가평의회와 공산당을 여전히 장악하고 있다. 미국과의 적대적 관계 등도 체제 결속을 다지게 만들고 있다. 라울은 이미 지난 2월 취임 때 “단일 정당 아래 뭉친다면 그 무엇보다 더 민주적이다. 어려움이 클수록 질서와 기강, 단결이 더 필요하다”며, 공산당 1당 체제를 고수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파이낸셜타임스>는 19일 쿠바가 ‘달팽이의 속도’로 변할 것이라며, “쿠바가 최근 들어 사회주의 체제를 방어하고 이념 전쟁을 강화할 조짐을 보이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체제 수호를 위해서도 라울 앞에 남겨진 숙제는 많다. 무엇보다, 강력한 달러와 허약한 페소로 쪼개져 경제를 왜곡시키고 있는 이중화폐 구조 개혁이 절실하다. 쿠바인들을 달러에 목매게 만들어, 암시장이 성행하고 교사까지 달러 팁 받기에 혈안이 되는 등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쿠바는 2009년 말 오랫동안 미뤄온 6차 공산당 총회를 연다. 라울은 이 자리가 쿠바의 정치·경제적 방향을 결정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그때까지 쿠바는 인내심이 더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칼럼 쓰며 ‘훈수정치’ 계속 피델 근황은 “보이지는 않지만, 잊혀지지 않았다.” 지난 13일 82살 생일을 맞은 피델 카스트로를 <로이터> 통신은 최근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 공산당 기관지 <그란마>에 칼럼을 쓰면서, ‘훈수정치’를 펴고 있다. 최근 베이징 올림픽과 남북한 관계까지 언급하는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병석의 그는 건강이 여전히 나빠, 지난 6월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만났을 때 모습이 공개된 게 마지막이다. 피델이 얼마나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는지는 아직까지 분석이 엇갈린다. 다만, 피델이 식량 연료화를 비판한 뒤 쿠바 당국이 이달 초 사탕수수의 에탄올 사용 계획을 크게 줄이는 등 그의 영향력이 여전히 감지되고 있다. 김순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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