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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파티는 끝났다” 미 금융권력 워싱턴으로 이동중 |
"파티는 끝났다."
28일(미국 현지시간) 미 의회와 정부가 7천억달러 규모의 공적자금 투입계획을 담은 법안에 합의한 직후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내뱉은 한마디다.
펠로시 의장의 이 말에는 고수익을 추구해온 월스트리트의 무분별한 투자관행에 대한 정부당국의 엄격한 규제의 칼날을 예고하는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천문학적인 보수를 받는 월가의 CEO들이 규제를 피해가며 시장을 혼란으로 몰아간 후 납세자들의 호주머니를 향해 도움을 청하는데 대해 비판여론이 비등하고 있지만 정부와 의회는 일단 세금으로 구제금융을 단행하되, 방종에 가까운 자유를 누려온 민간 금융권력에 대해 고삐를 단단히 죄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신용경색으로 일대 지각변동을 겪은 월가에는 훨씬 강화된 감독과 규제라는 매서운 한파가 몰아 닥칠 전망이다.
이러한 감독과 규제의 주체는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증권거래위원회(SEC), 그리고 의회다.
종전까지는 대형 금융회사들이 포진한 월가가 정부를 제쳐놓고 민간금융권력을 행사했으나 이제 권력의 중심이 워싱턴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7천억달러의 공적자금으로 정부는 금융회사의 부실채권을 인수한다. 부실채권을 정부에 매각하는 회사는 경우에 따라 공적자금 지원액수만큼 주식지분을 정부에 넘겨야 한다.
정부가 민간 금융회사들의 주인이 돼 회사를 사고 팔 수 있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또 정부의 판단에 따라 부실규모가 큰 민간 금융회사는 파산의 운명을 맞을 수도 있다.
월가가 이런 공적자금을 충분히 수혈받기 위해서는 의회와 행정부의 결정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일단 3천500억달러의 공적자금이 의회로부터 승인되지만 나머지 3천500억달러의 승인을 위해서는 의회와 대통령이 각기 거부권을 확보, 상호 견제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또 구제금융을 시행하는 정부는 구체적인 내용을 의회에 정기적으로 보고하고 FRB의장, SEC의장 등이 포함된 새로운 기구에 의해 감독을 받아야 한다.
예산정책연구소의 선임 연구위원인 제임스 파로티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금융의 수도가 엄청난 정도로 규모가 축소됐다"며 "중요 의사결정이 뉴욕이 아닌 워싱턴의 사람들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록 워싱턴이 금융권력을 보유하는 것은 한시적이기는 하지만 구제금융 계획을 감안하면 4∼5년 정도는 워싱턴이 미국 금융시장에 대해 거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골드만삭스의 최고경영자를 역임한 헨리 폴슨 재무장관은 구제금융 법안의 협상과정에서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금융회사의 경영자에게 퇴직보너스와 연봉을 규제해야 한다는 의회의 요구에 처음에는 강하게 반대했으나 결국 수용했다.
폴슨 장관이 이런 조건에 반대한 이유는 자신이 민간 금융회사의 최고경영자 출신이어서가 아니다.
민간기업의 경영자에게 실적에 상응하는 보너스와 연봉을 지급하는 것을 정부가 나서서 규제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원칙에 관한 문제 때문이었다.
또 민간기업의 의사결정에 정부가 지나치게 관여하고, 행정법규가 일관성을 잃은 채 오락가락하면 투자자들을 해외로 내쫓는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폴슨 장관이 백기를 든 것은 금융권력이 의회의 수중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현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의 금융시장이 통제 일변도의 사회주의형 시스템으로 변모할 것이라고 예단하는 것은 곤란하다.
미국 금융산업은 네거티브 규제로 급성장해왔다.
금융감독 당국이 `해서는 안되는 것'을 명문화해 규제리스트에 올려 놓은 것 이외에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네거티브 규제다. 이 때문에 규제당국이 생각조차도 할 수 없었던 온갖 다채로운 금융상품과 파생거래를 만들어내 세계 금융산업을 주도해왔다.
금융권력의 중심이 정부와 의회로 이동하더라도 이러한 네거티브 규제의 근본 틀이 바뀌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규제방식의 근본을 바꾼다면 금융산업의 건강성마저 완전히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금융회사들의 과도한 차입을 제한하기 위해 자본금 기준을 강화하거나 전체 금융시스템을 모니터링 하면서 위험을 사전에 감지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강구될 것으로 보인다.
또 다양한 금융상품의 등장을 막을 수는 없지만 이런 상품의 안전성을 규제당국이 평가하고 제재하는 방안도 마련될 듯 하다.
이런 변화의 움직임에 가장 빨리 반응하는 것은 역시 월가의 금융회사들이다.
무소불위의 금융권력의 최정점에 도달할 것만 같았던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가 투자은행 지위를 포기하고 일반은행으로의 전환을 신청하면서 스스로 워싱턴의 금융감독 당국에 규제를 자청하고 나선 것은 바로 이러한 권력구도의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박상현 특파원 shpark@yna.co.kr (워싱턴=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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