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8.11.03 18:45 수정 : 2008.11.03 18:45

나는 미국에 온 이후로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운 순간을 목도하면서도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야릇한 자극과 흥분을 느끼고 있다.

내가 1988년에 뉴욕에 와서 경험한 것은 물질적 풍요로움이었다. 평일에는 스테이크를 구워먹고 주말이면 삼겹살을 특별 식으로 구워먹었다. 삼겹살에 곁들여 먹는 깻잎이 삼겹살 값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 놀랐었다. 대형식품점마다 먹거리로 풍성했다. 여름 늦은 오후에 학생들이 커다란 피자를 손에 들고 먹으면서 지나는 광경을 보면서 놀라기도 했다. 피자가 싸구려 음식인 것을 안 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여름 주말에 롱아일랜드 비치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하이웨이를 쉬지 않고 메우는 자동차의 물결에 질색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한국의 모 가수가 맨하탄 지하도에서 1 불짜리 우산 장사를 했다는 소문을 들었었다. 그는 뉴욕의 한 거리에서 제법 큰 옷가게를 하고 있었다. 얼마 안 있어 한국에 돌아가서 다시 가수생활을 시작하고 빅 히트를 쳤다. 1980년대 말엽에만 해도 맨하탄 브로드웨이 도매상권을 한국인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 거리가 코리아타운이 되었다. 뉴욕의 청과상, 봉제공장은 한국인이 대다수 점유하고 있었다. 한국인 업주들은 달러를 긁어모아 어찌 간수할 바를 몰랐다. 이는 한국 이민자들만이 경험하는 것이 아니었다. 미국의 거리에는 달러 지폐가 바람에 날려 다닌다는 소문을 듣고 온 러시아와 동구권 이민자들이 있었다.

이것이 어메리칸 드림이다. 그 실상은 탐욕이다. 어메리칸 드림은 탐욕을 선한 것으로 정당화해준다. 1980년대 말에 공화당 부시가 정권을 잡고 있었고 경제는 어려웠다. 어느 한인은 미국은 전쟁을 일으켜서라도 경제를 살릴 거라고 호언장담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걸프전이 일어났다. 그 아들 부시가 정권을 잡고 있던 기간에 일어난 이라크 전쟁에 미국인들은 경제부흥을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암묵적으로 지원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쟁에 1조 불의 돈을 투자하고도 그 승리는 불투명하고, 경제사정은 100년 만에 최대의 위기에 봉착하고 있다. 우리는 목격하는 것은 탐욕을 지고의 선으로 삼고 그 이름으로 전쟁마저 정당화하던 어메리칸 드림의 붕괴이다.

오바마의 등장이 드라마틱한 것은 이런 어메리칸 드림의 붕괴를 뒤이은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런 붕괴가 없었다면 오바마는 미국 대통령의 자리에 올라설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인들은 부시 정권 아래서 경제의 파산을 체험한다. 그리고 탐욕을 선하다고 가르치고 극대의 만족을 위해서 어떤 수단의 사용도 정당화하는 어메리칸 드림의 허구를 배운다. 이것이 오늘 미국인들이 오바마에게 희망의 시선을 던지는 근거이다. 그러나 그는 잃어버린 어메리칸 드림의 재현을 약속하지 않는다.

오바마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어메리칸 드림을 제시한다. 그의 드림은 기회의 평등이다. 배관공 조는 자기 소유의 일부를 떼어 세금으로 내고 그것이 빈곤층에게 분배되는 것은 정의가 아니고 자기에게는 억울한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오바마는 그의 부는 그가 저소득층에 있을 때 입은 세금감면의 혜택 때문임을 일깨워준다. 그는 경제적 능력이 있는 계층이 그들 수입의 일부를 떼어 사회에 내놓고 저소득층이 힘을 얻어 일어설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을 조에게 상기시켜준다. 오바마의 철학은 가진 자나 가지지 못한 자나 평등한 기회를 갖도록 해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는 탐욕의 철학에 반대한다. 탐욕을 위해서라면, 성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도 상관없다는 윤리성이 결여된 눈먼 철학에 반대한다.

오바마는 교육환경의 개선을 약속한다. 공립학교 교육의 질의 저하는 미국 사회의 골치 덩어리가 되었다. 미국 사회의 대다수의 흑인과 히스패닉이 불가피하게 다녀야 하는 공립학교의 질은 저급하다. 이는 미국의 장래에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사회 계층과 인종 간의 교육의 불균형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런 불균형은 그들 간의 삶의 질의 차별을 영구화한다. 오바마는 인종적인 이유로, 경제적 가난으로 인해서, 교육의 혜택에서 소외되는 불평등을 여하간 허락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특권층의 탐욕을 정당화하고 공공연히 조장하는 교육환경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의료보험이 전국민화 되지 않는 것은 백인들이 흑인들과 자기들의 소득을 나누지 않겠다는 인종주의에서 나온 것이라 한다. 오바마는 미국인 전부가 의료보험 혜택을 누릴 것을 약속한다. 국민 전체에게 건강보험의 혜택을 줌으로 삶의 질의 불균형을 해소하려고 한다. 이것이 그가 제시하는 어메리칸 드림의 청사진이다.

오바마의 삶 자체가 어메리칸 드림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그의 삶은 탐욕의 철학으로 설명될 수 없다. 개인주의적 독점의 철학으로 설명될 수 없다. 그의 친부는 케냐 출생의 미국 유학생이었고, 그의 모친은 인류학 전공의 백인이었다. 그의 계부는 인도네시아 사람으로 미국 유학생이었고 회교도였다. 오바마는 회교국가인 인도네시아에서 유년을 지냈다. 그의 유년의 삶에 그와 함께 하고 그의 인격적 존귀함을 확신하게 해준 것은 그의 백인 외할아버지였다고 한다. 그의 친부는 케냐의 반체제인사로 살다가 교통사고에 횡사했고, 그의 계부는 인도네시아 정권에 유착해서 살다가 몰락했다. 그의 모친은 암을 뒤늦게 발견해서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죽었다. 오바마가 속한 미국 교회의 교단은 미국 내에서 가장 진보적 성향의 교단 중 하나로 꼽힌다. 그가 시카고에서 다니던 교회의 담임목사는 흑인 중심적 인종적 관점에서 설교하고 목회하는 사람이었다.

오바마는 하바드 법대를 졸업한 후에 시카고 밑바닥 공동체 운동에 투신한다. 민권 변호사로 일한다. 그의 아내도 하바드 법대를 졸업해서 오바마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로펌 직장을 포기하고 밑바닥 공동체 운동에 함께 투신한다. 미국 사회의 최고의 엘리트들이 풀뿌리 운동에 참여하면서 사회적 특권을 포기한다. 오바마와 그의 아내를 움직인 것은 탐욕이 아니었다. 밑바닥 삶의 건설이다. 교육과 직업, 건강 그리고 문화에서 소외된 계층을 그 소외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그들의 운동의 목표이다. 오바마의 삶은 탐욕의 철학과는 언제나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에게는 다인종 다문화 사회적 평등의 이상이 낭만이나 이념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그의 삶 그 자체이다. 그것이 어메리칸 드림의 새로운 모델로서 등장하고 있다.

오바마가 주장하는 기회의 평등은 과거의 사회주의 정권이 주장하는 분배의 정의를 넘어선 면모가 있다. 그것은 마치 성서의 가르침과 유사하다. 구약 시대에 추수할 때 밭에 떨어진 이삭을 줍지 말라는 가르침이 있다. 그 이삭은 가난한 자를 향한 야훼의 은혜의 표현이다. 가난한 자도 신의 형상을 입은 존재라는 신학적 인간론이 그 기반이다. 신약 시대에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버려 희생하여 야훼의 은혜로 모든 사람들 불러들인 것처럼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자기 것을 내어주어 다른 이들을 부요하게 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것이 오바마의 철학이다.

이는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외치던 어메리칸 드림이기도 하다. 백인과 흑인 그리고 유색인종, 주인과 노예,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한 식탁에 앉아 우정을 나누고 삶을 나누는 공동체를 향한 꿈이다. 킹 목사는 그를 지지하던 부자들에게서 월남전에 반대하는 발언을 자제해달라고 요청을 받았을 때 그들과 단절하고 월남전 반대연설을 시작했다.그는 얼마 안 있어 암살로 목숨을 잃는다. 킹 목사는 어메리칸 드림의 탐욕의 실체를 본 사람이다. 그는 그 드림이 미국 사회에서 흑인과 인디언, 멕시칸, 가난한 자에게는 악몽으로 변하는 현실을 체험한 자이다. 그리고 그 자신도 악몽의 희생양이다. 이제 오바마는 킹 목사의 꿈을 그의 삶으로 이루려고 한다.

미국에 살면서 가장 어려운 경제적 형편을 체험하면서 마음 한 구석에 벅찬 감동이 흘러나오는 것이 이 때문이다. 마냥 불가능하게만 보이던 킹 목사의 드림이 환상이 아니라 리얼한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흥분할 만하다. 미국에 이런 일이 가능할 줄 꿈엔들 알았으랴. 그렇다고 나는 오바마를 정치적 메시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도 자신을 완전한 인물로 받아들이지 말 것을 호소한다. 그는 자신의 권위를 신비화하지도 절대화하지도 않을 것이다. 오바마의 등장이 가져올 파문을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그가 항상 소통의 공간을 열어놓을 것이라 믿는다. 그의 지금까지의 삶이 그러했듯이.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한겨레 블로그 내가 만드는 미디어 세상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