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블로그 내가 만드는 미디어 세상
|
|
[블로그] 해고가 있던 날의 풍경 |
요즈음 내가 다니는 회사에 잔인한 해고 광풍이 계속해서 불고 있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지금까지 한 30~40%정도 정리가 되었다고 하니 상당한 숫자의 사람들이 회사를 떠났다. 아직도 큰 충격에 모두들 움츠리고 주위를 살피고 있지만, 빠른 시일내로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큰 일 이라는 생각만 든다.
내가 속한 반도체 산업은 이미 미국에서는 사양 산업이 되어 가고 있다. 미국내 우후죽순처럼 건설되던 반도체 공장들은 이미 인건비 싼 중국이나 인도로 몰려 나가고 있고, 핵심 연구소나 정부/군사 관련 반도체 제조만 이곳 국내에 남겨두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도 권력이 민주당으로 옮겨 지게 되면( 오바마) 국방 관련 예산이 줄어들 것이 자명해 진다. 따라서 관련된 국방 군수업체들은 회사 규모를 줄이는 작업에 들어 가게된다. 아마 내 회사도 이런 미국내 권력 이동을 감지한 것인지 최근 부쩍 돈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 정리 작업에 들어갔다.
내가 미국에 건너와서 10 여년 동안 수많은 해고를 지켜 봐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 이다.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는 오랜 역사가 있는 곳으로 한때 미국 첨단 산업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곳 이였다. 이에 따라 나이가 드신 분들이 아주 많이 있다. 해고가 시작되면 우선, 나이가 많은분, 의료보험 혜택을 받기위해 일하는 장애인들…이들이 제일 타겟이 된다. 지난해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그랬다. 아마도 다음 해에도 그럴 것이다…. 계속되는 악 순환의 연속이다. 요즈음은 너무 그런 것들을 보아 와서 무감각해 졌다.
레이오프가 있는 날은 아침에 출근해 보면 분위기가 험악하게 돌아가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낀다. 어떤 이는 출근하면서 자기가 지니고 있는 배지가 회사 정문을 통과 할 때 작동을 하지 않거나, 회사에 기밀을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은 따로 불러서 해고 통보( 핑크 슬립)를 하면서 짐을 쌀 시간을 주고 중요한 자료를 가지고 가지 않나 감시를 한다. 조금 폭력성이 있을까 의심되는 사람은 해고 통보시 사고를 막고자 우리나라 조폭들 같은 덩치( Security Guard)들을 뒤에 붙힌다. 더 잔인한 회사는 아예 사무실을 폐쇄하고 회사에 전혀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아침 나절 회사 카페 한 구석을 멋지게 메워 주던 오인방 중 3명이 해고 되었다. 나와는 그리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 이였지만 항상 아침 나절 다섯 명이 차를 마시면서 한담을 즐기던 그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무리들이였다. 평범한 미국 사람들이였다. 두껍고 검은 안경을 쓴 쟌과 백발의 할아버지 덕, 그의 부인 수쟌, 안전요원 캐시 그리고 보일러 담당 진. 이들 중 세 명이 해고 되어 요즈음 단 두 명만이 앉아 있는 아침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워 보인다.
나와 잘 알고 지내던 많은 사람들도 최근에 벌어져 왔던 해고로 회사를 그만 두게 되었다. 풍체 좋은 데이비드, 조용하지만 일 잘하는 미어, 유머러스한 브라이언, 말이 아주 많은 덕 그리고 지난번 소개 드린 댄서 밥…, 다들 아침에 해고 통보를 받고는 침통해 하였지만 이내 다시 웃는 얼굴로 사람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있다. 모두들 이런 해고에 익숙해져 있는 모양이다.
이런 풍경이 미국의 제조업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의 현주소가 아닌가 한다. 나는 그 동안 운이 좋아서 이런 칼 바람을 피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장담이 서지 않지만 그냥 담담해지려 한다. 영주권이 없는 분들의 고통에 비하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 때의 고민을 나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계속해서 발표되고 있는 경기 부양책이 효과를 발휘해 경기가 좋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그래서 몇 년째 이어지는 이 지겨운 해고 열풍이 잠잠해 졌으면 한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