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1년 지나도록 의회 상정조차 안해
미국은 외교 관례상 결례를 무릅쓰고 이미 타결된 통상 협정의 재협상을 여러차례 한 바 있다. 타결은 물론, 체결, 심지어 협상 상대방 나라의 의회에서 비준동의한 협정까지 재협상을 요구해 관철시키기도 했다. 미-페루, 미-콜롬비아 자유무역협정(FTA)이 대표적이다. 페루 의회는 2006년 6월28일, 미-페루 에프티에이 비준동의안을 ‘찬성 79, 반대 14’로 통과시켰다. 콜롬비아 의회도 비슷한 시기에 비준동의를 해줬다. 하지만 미국은 상대방 국가의 의회에서 비준동의를 마친 에프티에이임에도 수정을 요구했다. 새롭게 의회 다수당이 된 미 민주당이 작년 5월 이의를 제기했던 것이다. 결국 두 나라는 재협상 끝에 다시 서명하고 비준동의하는 절차를 거쳐야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미국은 관련된 에프티에이 이행법률안을 미국 의회에 상정하지 않고 있다. 미 의회 지도부가, 페루 국내법이 개정되지 않는 한, 승인하지 않겠다고 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4월 한-미 에프티에이 타결 발표 때만 해도 “글귀 하나만 고쳐져도 재협상이다. 재협상은 없다”고 공언했지만 미 협상단이 공식적으로 요구해오자 “몇개 문구 손보는 것은 재협상이 아닌 추가협의 수준”이라고 물러서며, 미국의 요구를 일부 들어준 바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비준동의도 아니고 체결도 아니며 타결 상태에 불과했던 한-미 에프티에이가 재협상 테이블에 올라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통상법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미 의회와 정부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미국의 시간표와 쇠고기·자동차 등 미국내 이해관계이지 협상 상대방의 ‘도리’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종속변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비준동의 여부를 떠나 미국이 필요하다면 재협상을 요구할 수도 있고 협정을 폐기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송창석 기자 number3@hani.co.kr [한겨레 관련기사]▶한-미 FTA, 한국 비준동의→미국 재협상 요구 ‘최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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