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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2.12 18:58 수정 : 2008.12.12 23:49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차관보가 11일 중국 베이징 조어대에서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과 북핵 6자회담 각 나라 수석대표가 만난 자리에서 고개를 숙인 채 생각에 잠겨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부시정부 마지막 협상 ‘실패’
오바마 ‘특별임무’ 맡길수도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차관보는 11일 오후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회의가 공식적으로 끝나기도 전에 회담장인 조어대를 빠져나와 귀국길에 올랐다.

6자 회담 미국 수석대표로서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이번 회의에서 ‘검증의정서 문서화’ 실패가 그에게 안겨줄 심리적·정치적 타격은 만만치 않다. 회담 결렬로 그가 지난 10월 평양 담판으로 마련한 ‘검증 문제에 관한 북-미 이해사항’의 신뢰성을 문제삼는 이들의 목소리도 커지게 됐다.

그는 6자 회담의 모든 주요 합의의 산파이자 산증인이었다. 2005년 4차회담 때부터 미국 수석대표로 나선 이래 6자 회담장과 평양, 베를린, 싱가포르 등지를 오가며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과 직접 협상을 벌여 20년 북핵 위기 역사에서 전인미답의 길이었던 ‘불능화’를 이끌어냈다. ‘네오콘의 덫’이라고 불린 ‘방코 델타 아시아’(BDA) 문제와 북한의 고농축우라늄프로그램(HEUP) 및 북-시리아 핵확산 의혹 등 수많은 장애물을 피해왔다.

이 과정에서 그는 미국 내 강경파와 납북자 문제에 집중해온 일본 등으로부터 ‘북한 편만 든다’는 비난과 함께 ‘김정힐’(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이름에 빗댄 별명)이란 비아냥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엔 한국 정부 인사들도 사석에서 ‘힐은 사기꾼’이라고 비난하는 일이 잦아졌다. 하지만 힐 차관보는 역대 주한미국대사 가운데 대중적 인기가 가장 높았을 정도로 한국사회와 한반도 문제에 강한 애정을 보여왔다.

1995년 보스니아 내전을 종식한 데이튼 평화협정과 동북아 탈냉전의 전략적 비전으로 평가받는 9·19 공동성명의 산파이기도 했던 이 “냉정하고 열정적인 협상가”(리처드 홀브룩 전 유엔대사)한테는 이제 좋아하는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의 야구경기를 관람하는 일만 남은 것일까? 워싱턴의 외교소식통은 “오바마 쪽에선 힘겨운 북핵협상을 온몸으로 밀고온 힐을 ‘우리의 영웅’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많다”며 “그가 오바마 행정부 출범과 함께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를 내놔야 하는 것은 확실하지만, 북핵 협상에서 ‘특별 임무’를 부여받을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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