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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1.19 13:39 수정 : 2009.01.19 13:39

‘시애틀’ 하면 언뜻 떠오르는 것이 뭐가 있을까요?

비의 도시, 매리너스 야구단, 마이크로소프트, 보잉, 탐 행크스와 멕 라이언이 함께 공연한 ‘시애틀의 잠못 이루는 밤’, 그리고 커피입니다. 시애틀 하면 역시 딱 떠오르는 이름 하나는 ‘스타벅스 커피’일 겁니다. 그리고 ‘시애틀 베스트’를 비롯해 ‘툴리스’ 등등, 시애틀의 커피 문화는 전 세계로 퍼지면서 시애틀을 ‘커피의 메카’로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시애틀 다운타운의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에 가면, 스타벅스 1호점에서만 나오는 갈색 머메이드가 그려져 있는 머그를 사서 커피를 담아 마시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그 앞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시애틀이 지난 몇 년 동안 ‘미국에서 가장 카페인 섭취가 많은 도시’로 꼽힌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대부분 커피에서 기인한 것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커피는 특히 겨울엔 ‘필수품’입니다. 흐리고 비 오는 날씨가 많은 까닭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카페인 섭취를 많이 하는 탓일 겁니다. 그렇게라도 기분을 좀 밝게 하지 않으면, 날씨에서 오는 우울함을 극복하기가 힘들고, 그 때문에 겨울엔 자살률도 껑충 뛰어 버리는 곳이 시애틀입니다.

그래서, 적어도 미국 안에서는 ‘커피=시애틀’ 이라는 말이 통할 정도입니다. 어디 타 지역에 가서도 누군가와 인사할 때 ‘시애틀에서 왔다’고 하면 거의 듣게 되는 첫 마디가 “좋은 곳에 사네. 커피에 대해 좀 알겠군?” 이라는 반문입니다. 그것은 이제 하나의 스테레오타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재미있는 일이 있었습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한 리서치 기관에서 조사를 했는데, 시애틀이 ‘미국에서 가장 카페인 많이 섭취하는 도시’의 타이틀을 플로리다 주 탬파에 내어 줬다는 이야기입니다. 많은 시애틀 사람들이 이를 듣고 의아해했습니다. 플로리다의 탬파라면, 맑은 날씨 때문에 휴양지나 은퇴지로 많이 선호되는 곳인데, 그런 곳에서 카페인 섭취가 가장 많다고..? 이런 식으로 말이죠.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미국 내에서 가장 단위 인구당 커피 소비가 많은 곳은 당연히 시애틀이었는데,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요? 여기에 미국의 새로운 트렌드 하나가 보입니다. 이른바 ‘에너지드링크’의 고속 성장입니다.

90년대 말부터, 유럽산의 ‘레드 불’이라는, 우리나라 ‘박카스’ 닮은 에너지드링크가 히트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몇번 마셔봤는데, 이건 박카스에 개스를 억지로 주입한 듯한 맛입니다. 그런데, 이 레드불이 히트를 치기 시작하자, 미국에서도 아류작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점점 양도 늘려가고, 특히 이 안에 함유된 카페인의 양을 크게 늘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커피보다 조금 셀 정도의 카페인을 함유했던 이 ‘에너지드링크’ 류 제품들은 점점 그 카페인 함유량을 늘려가더니, 지금은 카페인에 내성이 높아 취침 전에 커피한잔 정도는 마시고 자도 끄덕 없는 제 심장을 벌렁거리게 만들 그런 것들까지도 나왔습니다. 그리고 카페인 내성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알겠지만, 일단 이 카페인 효과에 노출이 되어, 그 강도가 지속적으로 강해진다면 이제는 ‘끊지 못할 지경’에까지 이르릅니다. 심지어 술 담배는 끊어도, 커피는 못 끊는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탬파와 시애틀이 각각 1위와 2위를 차지하고, 그 다음으로는 시카고가 3위를 차지했고, 그 뒤를 뉴욕과 로스앤젤레스가 각각 랭크됐습니다. 탬파의 경우는 특히 에너지드링크, 카페인이 들어간 진통제, 그리고 차의 소비량이 많았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통계조사는 미국 내 20개 대도시에서 실시됐는데, 조사 결과에 따르면 아직도 커피가 카페인이 들어간 음식과 음료 중 소모량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콜라와 차도 한 몫을 했습니다.

사실 플로리다의 탬파 지역은 집값 버블붕괴의 피해를 가장 크게 본 지역 중 하나입니다. 그런 면에서 시애틀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특히 집값 상승세가 크게 올라가던, 그래서 버블 붕괴의 피해도 가장 크게 본 지역들에서 카페인 수요도 많았다는 것이 뭘 의미하고 있을까 하는 망상도 잠시 들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깨어 있어야 할까요?

하긴, 시애틀이 카페인 소비 도시 1위에서 2위로 내려앉은 것은 스타벅스 등 커피에 들어가는 지출을 줄인 탓이기도 할 것입니다. 본부가 있는 시애틀에서조차, 스타벅스는 자사 직영 매장을 줄이고 적지 않은 직원들을 해고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만큼 사람들이 ’쓸데없는 지출’을 줄이고 있다는 것의 반증이기도 합니다.

미국 집값 버블의 붕괴가 경기 자체의 하락으로 이어지고, 전체 내수의 감소로 이어지면서, 그것이 글로벌 경제의 타격으로 이어지면서 세계의 소비곡선 자체가 하향세를 그리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지금껏 살아온 사회의 모순이 한꺼번에 도출되며 붕괴되는 것의 서곡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지금껏 미국 사회는 버블 하나가 꺼지면 새로운 버블을 키워가며 소비를 자극해 왔습니다. 그러나, 정작 밑바닥이 단단하지 않은 미국 소비자들의 행태는 곧 그들의 발밑을 파들어갔고, 이제 집값의 붕괴에 이어 이 사회를 위협하고 있는 것은 이들의 마지막 생존의 보루라고도 할 수 있는 크레딧카드 문제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여기에 계속되는 감원한파로 인해 그나마 안정된 수입조차 보장받을 수 없게 된 이들이 크레딧카드로 긁어 댄 빚을 더 이상 못 갚게 될 때, 미국에서는 또 한번의 경제적 지진이 발생하게 될 것으로 대다수의 전문가들이 전망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고 깨지는 골치의 고통을 달래기 위해 카페인이 들어간 두통약들을 먹으며 이 상황을 주시하고 있겠지요. 잠깐만 정신을 놓아도 어떤 나락으로 굴러들어갈지 모르는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스펜드’ 만 할 줄 알았지 ‘세이빙’에는 별로 관심 없었던 수많은 미국인들의 골치가 깨나 썩을 듯 합니다. 지금부터라도 이들이 커피 마시고 에너지드링크 마셔가면서 절약하고 정신 차리며 건전한 경제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데, 그러기엔 이미 환경이 꽤 악화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과연, 이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 미국이 어떤 길을 걷게 될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상황들이 닥쳐올지 더욱 주목되고 있는 시점입니다.

진한 커피 한잔이 갑자기 당기는군요.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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