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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1.20 14:00 수정 : 2009.01.20 14:00

월요일 아침, 뜨겁게 물을 끓여 커피를 우려낸 후 찬찬히 잔에다 부어 놓고 나서 잠시 인터넷을 서핑하며 이런저런 소식들을 접하고 있습니다. 이 여유로움은 오늘이 공휴일이라는 데 있습니다. 연방공휴일인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기념일을 맞아 집에서 쉬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매년 1월 셋째주 월요일을 기념일로 정해, 그의 정신을 기리고 있고, 적지 않은 추모행사가 미 전역에서 열립니다. 오늘 아침, 제가 가질 수 있는 이 여유로움은 사실 그런 선대의 투쟁 없이는 이뤄지지 않았을 것들입니다.

이민자로서, 그리고 미국에 살고 있는 ‘소수 민족’의 한 사람으로서, 저는 킹 목사를 마음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가 아니었다면, 미국 내에서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이 자유로움이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 시대의 선지자였고, 비폭력 사회개혁운동가로서의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모습은 인종과 시대의 갈등을 뛰어넘어 인류의 역사에 각인된 위대함이었고, 예지였다고 생각합니다.

1960년대 초반, 미국은 계속되는 인종간의 갈등으로 인해 사회가 위협받는 위기의 시대였습니다. 미국에 노예로 잡혀 팔려온 아프리카인들은 자본주의적 성장의 필요성으로 인해 공업화된 미 북부 지대의 노동력 확보 요구에 따라, 정치적으로는 ‘노예해방선언’이라는 이름으로 남부 대농장들에 묶여 있던 흑인들을 표면적으로 ‘해방’시키게 되었고, 이로부터 자각된 미국 내 흑인들은 실질적으로 자신들의 위치를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했으나 그것은 그들의 꿈에 불과했습니다.

실제적으로 흑인들이 미국 사회에서 그나마 어느정도 자신들의 위치를 확보하게 된 것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소련과의 냉전시기였습니다. 군대와 국방 부문에서 더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했던 미국 사회는 그때까지 문을 열지 않았던 유색인종에의 공직 진출 허용을 단행했고, 자각한 흑인들은 지금까지 드러내놓고 자행됐던 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번번히 그 두터운 차별의 벽에 막혀 그 날개가 꺾이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흑인 사회엔 두 명의 걸출한 지도자가 탄생하게 되니, 말콤 엑스와 마틴 루터 킹입니다. 각각 미국 내 인종관련 사회운동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이 두 지도자는 모두 암살로 삶을 마감해야 했지만, 이들이 그들의 목숨을 바쳐가면서까지 이뤄낸 이 사회에서, 지금 저같은 유색인종 이민자도 비교적 여유롭고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말콤 엑스는 그의 사회운동가로서의 삶의 초기엔 극렬한 흑백 분리자로서, ‘흑인만의 공화국’을 외쳤고, 인종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극렬 폭동주의자’로서의 이미지로서 자리매김됐었으나, 그의 삶을 마감하기 전 비폭력주의로 돌아섰고, 이로 인해 노선이 다른 ‘같은 흑인’에게 살해당하는 비극을 겪어야 했습니다. 반면, 킹 목사는 처음부터 비폭력주의로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꿈을 민중들에게 전달했으며, 이같은 그의 입장은 흑인 뿐 아니라 진보적 백인들에게까지도 광범위한 지지를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같은 꿈은, 그 스스로가 ‘희생제물’로서 제단에 올라가지 않는 이상은 성취가 불가능한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의 죽음으로서 미국 사회는 킹 목사가 성취하고자 했던 이상에 한 발짝 다가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흑인들의 지위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향상되어 왔고, 인종차별을 금지하고 이를 어길 경우 처벌할 수 있는 근거인 법안들도 마련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에서 흑인들의 지위는 아직도 이 사회가 그들에 대한 차별을 분명히 가지고 있는 사회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흑백 인구비율과 대비해 볼 때, 미국 내 교도소 수감 인구를 흑백으로 비교해 보면 사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인종평등의 ‘허구’가 금방 나옵니다. 그리고 백인 중심의 이 사회의 건재를 위해, 미국 정부는 1960년대 이후 가족의 부 축적을 위해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는 성향이 강한 아시아인들의 대량이민을 허용했고, 이들은 ‘흑백 갈등’의 중간지역에 위치하는 일종의 ‘버퍼’로서 사회의 일익을 담당해내고 있습니다. 심지어, 백인들은 빈부 격차로 인한 대규모 갈등 폭발이었던 로스앤젤레스의 4.29 폭동을 ‘인종폭동’으로 규정하고, 이를 매스컴을 통해 몰아부치기도 했었습니다. 이때의 폭동으로 삶터를 잃은 한인들에게 이같은 사실 왜곡은 그대로 받아들여지기도 했고, 일부 한인들은 흑인들에 대해 깊은 증오심을 보이고 있기도 합니다만, 그 진실은 사실 다른 데 있을 것입니다.

이유야 어떻게 됐든, 우리 한인 이민자들 역시 그들에게 많은 빚을 진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들은 그들이 사는 곳에 들어가 장사를 해 부를 축적했고, 그들이 싸워서 얻은 것들을 거의 우리 힘 안 들이고 누리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리고, 여기 사는 우리는 내일 미국에서 처음 ‘흑인 대통령’이 선서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될 것입니다. 마틴 루터 킹이 꿈꾸었던 그 세상이 아직 이곳에 도래했는지, 저는 그것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만일 살아 있다면 80이 되었을 그의 생일 이후에 지켜보는 오바마의 대통령 선서는, 아마 그에게 그가 꿈꾸었던 날개 하나를 달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게 주어진 이 휴일, 저는 킹 목사를 생각하며 그에게 감사합니다. 또 오바마의 선서를 지켜볼 것을 생각하며, 그래도, 적어도 진정한 사회통합이라는 면에서 앞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는 미국의 긍정적인 미래를 생각하며 커피 한 잔으로 이 아침을 차분히 즐기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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