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가 흑인 사회엔 두 명의 걸출한 지도자가 탄생하게 되니, 말콤 엑스와 마틴 루터 킹입니다. 각각 미국 내 인종관련 사회운동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이 두 지도자는 모두 암살로 삶을 마감해야 했지만, 이들이 그들의 목숨을 바쳐가면서까지 이뤄낸 이 사회에서, 지금 저같은 유색인종 이민자도 비교적 여유롭고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말콤 엑스는 그의 사회운동가로서의 삶의 초기엔 극렬한 흑백 분리자로서, ‘흑인만의 공화국’을 외쳤고, 인종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극렬 폭동주의자’로서의 이미지로서 자리매김됐었으나, 그의 삶을 마감하기 전 비폭력주의로 돌아섰고, 이로 인해 노선이 다른 ‘같은 흑인’에게 살해당하는 비극을 겪어야 했습니다. 반면, 킹 목사는 처음부터 비폭력주의로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꿈을 민중들에게 전달했으며, 이같은 그의 입장은 흑인 뿐 아니라 진보적 백인들에게까지도 광범위한 지지를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같은 꿈은, 그 스스로가 ‘희생제물’로서 제단에 올라가지 않는 이상은 성취가 불가능한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의 죽음으로서 미국 사회는 킹 목사가 성취하고자 했던 이상에 한 발짝 다가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흑인들의 지위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향상되어 왔고, 인종차별을 금지하고 이를 어길 경우 처벌할 수 있는 근거인 법안들도 마련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에서 흑인들의 지위는 아직도 이 사회가 그들에 대한 차별을 분명히 가지고 있는 사회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흑백 인구비율과 대비해 볼 때, 미국 내 교도소 수감 인구를 흑백으로 비교해 보면 사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인종평등의 ‘허구’가 금방 나옵니다. 그리고 백인 중심의 이 사회의 건재를 위해, 미국 정부는 1960년대 이후 가족의 부 축적을 위해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는 성향이 강한 아시아인들의 대량이민을 허용했고, 이들은 ‘흑백 갈등’의 중간지역에 위치하는 일종의 ‘버퍼’로서 사회의 일익을 담당해내고 있습니다. 심지어, 백인들은 빈부 격차로 인한 대규모 갈등 폭발이었던 로스앤젤레스의 4.29 폭동을 ‘인종폭동’으로 규정하고, 이를 매스컴을 통해 몰아부치기도 했었습니다. 이때의 폭동으로 삶터를 잃은 한인들에게 이같은 사실 왜곡은 그대로 받아들여지기도 했고, 일부 한인들은 흑인들에 대해 깊은 증오심을 보이고 있기도 합니다만, 그 진실은 사실 다른 데 있을 것입니다. 이유야 어떻게 됐든, 우리 한인 이민자들 역시 그들에게 많은 빚을 진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들은 그들이 사는 곳에 들어가 장사를 해 부를 축적했고, 그들이 싸워서 얻은 것들을 거의 우리 힘 안 들이고 누리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리고, 여기 사는 우리는 내일 미국에서 처음 ‘흑인 대통령’이 선서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될 것입니다. 마틴 루터 킹이 꿈꾸었던 그 세상이 아직 이곳에 도래했는지, 저는 그것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만일 살아 있다면 80이 되었을 그의 생일 이후에 지켜보는 오바마의 대통령 선서는, 아마 그에게 그가 꿈꾸었던 날개 하나를 달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게 주어진 이 휴일, 저는 킹 목사를 생각하며 그에게 감사합니다. 또 오바마의 선서를 지켜볼 것을 생각하며, 그래도, 적어도 진정한 사회통합이라는 면에서 앞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는 미국의 긍정적인 미래를 생각하며 커피 한 잔으로 이 아침을 차분히 즐기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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