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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오바마 정부, '폭력의 덫'에서 자유로울까 |
버락 오바마가 미국의 제44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이 시각 미국은 기대와 희망으로 부풀어 있다. 세계의 이목도 미국 사회 못지않게 백악관으로 쏠려 있다. 그 시선에는 역시 기대가 섞여 있다. 미국의 젊은 흑인지도자를 대하는 각국의 여론은 여전히 관대하고 뜨겁다.
그리고 짧게는 몇 달, 숱한 화제와 기록을 갱신하며 지구촌을 들뜨게 했던 드라마는 끝났다. 미국의 시계바늘이 20일 낮 열두시에 걸리는 순간. 화려한 수사도 이쯤에서 끝내는 것이 좋겠다. 미국시민의 몫까지 가로챌 마음이 없다.
사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우려했던 대로 지난 일이지만 오바마 당선자가 보여준 것은 안타까움 뿐이었다. 현실적응능력이 뛰어난 정치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각료 인선에선 신선도가 떨어졌다. 면면을 살피며 보수와 진보를 가릴 처지도 아니다. 더 두고 봐야겠지만, 힐러리 클린턴을 앞세운 대외정책이 신뢰가 가지 않는다. 불량기마저 없지 않다. 팔레스타인 민중이 수없이 죽어가는데도 구차스럽게 외면했다. 얼마 남지 않은 현직 대통령에 대한 예의가 반듯해서인지, 아니면 예비신입생 티를 너무 낸 것인지 이만저만 실망이 아니었다. 그게 미국 대통령의 모습이고, 미국의 현주소일 수 있겠다.
오바마 정부의 중동정책, 왜 걱정될까
오바마 시대가 열렸다. 우리의 관심은 미국이 처한 산적한 국내 문제가 아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면서 미국의 위상을 높이려는 대외정책에 있다. 다른 말로 대신하면, 미국의 세계패권전략이다. 그 전략은 항상 인류공존의 명제에 찬물을 끼얹었다. 지켜져야 할 평화는 언제나 조롱대상에 머물렀다. 분쟁을 일으키고, 대리독재정권을 탄생시키며, 때론 군사력을 앞세워 전쟁범죄를 저질러왔다. 이 과정에서 점령과 폭력, 억압, 고립은 약소국가를 유린하는 지배장치였다.
세계에는 많은 분쟁지역들이 있다. 이 가운데 중동만큼 초강대국 간의 대결 위험을 불러일으키는 곳은 없다. 지구 차원의 핵전쟁 위협이 도사리는 곳도 이 지역이다. 특히 이스라엘·아랍 분쟁이 그렇다. 그 분쟁의 중심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있다. 중동의 모든 나라가 이 분쟁에 자유롭지 못하며, 세계 각국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인류생존의 문제다.
오바마 새정부의 중동정책에 세계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바마 시대에 중동정책은 어떻게 펼쳐질까? 왜 미국은 중동에 목을 매고 있을까? 중동의 평화는 정착될까? 우리 역시 남북관계 못지않게 주목하는 관심사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천명한 외교정책 기조는 '스마트 파워(Smart Power)'다. 지난 정부가 호되게 비판받았던 일방주의(하드파워) 외교와 단절하겠다는 전략이다. "외교·경제·군사·정치·법률·문화 등 모든 수단 가운데 상황에 맞춰 올바른 수단을 선택해 구사한다"는 것인데, 이것만으로는 역대 정부와 차이가 없다. "외교를 최우선으로 하지만 국익을 위해 필요할 경우 최후의 수단으로 군사력을 사용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역대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해 온 소리다. 처음부터 외교를 뒷전에 두고 군사력을 앞세워 침공하겠다는 바보정부는 없었다. 지난 8년 부시 정부와 차이를 보이는 것이 있다면, 외교의 주도권이다. 즉 네오콘을 중심으로 한 백악관과 국방부에서 외교의 중심이 국무부로 옮아갔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그것이 시종일관 지켜질지는 지금으로서는 미지수다. 실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새정부의 미국의 중동정책이 크게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 같다. 석유자원의 지배와 통제, 견고한 미-이스라엘 동맹관계, 이슬람위협론은 오바마 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질 것이다. 미국이 집요하게 고집해 온 중동의 전략적 이익을 포기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이 중동에 집착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엄청나게 매장된 원유(중동은 전 세계 산유량의 31%를 차지하고 있고, 전 세계 원유 매장량의 62%가 중동 지역에 위치)와 그 원유를 통제함으로써 세계 권력을 얻기 위해서다. 또 원유를 생산하여 중동에서 미국 자본으로 편입되는 막대한 부가 자국 경제에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기 때문에 개입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미국의 중동정책은 2차 세계대전 이래로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중동 내 토착세력(아랍민족주의 세력) 등 다양한 위협에 맞서 이런 핵심적 이익을 방어하고 통제하는데 일관되게 맞춰져 있다. 아랍민중들이야 굶든 말든, 중동평화는 지켜지든 말든.
이스라엘이 미국의 몸종이 된 것은 이러한 사정 때문이다. 석유자원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과정에서 위협이 되는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다. 전략적 동맹관계가 필요하다. 노암 촘스키의 표현을 빌면, 이스라엘은 미국의 '전략적 자산'이다. 이스라엘은 걸프를 비롯한 중동지역의 족벌독재라는 안전장치를 갖춘 중동 친미국가들과 암묵적으로 결탁해 그 지역에서 미국의 목표를 충족시켜왔다. 이 두 나라는 대부분 군사력 강화와 그 파생 분야에 집중된 공동연구와 개발프로젝트에 서로 연계되어 있다. 미국은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원조국이 되었고, 이스라엘은 원유생산지역을 목표로 한 미국의 방대한 군사개입시스템의 가동을 지원하기 위해 기지와 저장시설을 제공해왔다.
중동분쟁의 불씨, 그 위험한 동맹관계
지역패권을 꿈꾸는 이스라엘이 중동의 아랍민족주의 세력과 대항하는 '특별한 동맹관계'가 확고히 맺어진 것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을 거치면서다. 이때부터 미국은 이스라엘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면서 중동지역의 석유 지배권을 방어하게 되었고, 이스라엘은 미국을 위해 군사적 용맹을 떨치며 중동의 살쾡이로 군림하는 영예를 얻었다. 이스라엘이 저지른 전쟁범죄를 열심히 지원한 미국이 발뺌할 여지는 전혀 없다. '이스라엘 지지자들'이 서운할지 모르겠지만, 이스라엘은 미국의 머슴이며, 중동의 행동대장이다. 전략적 이익을 실천하기 위해 이 두 나라가 궁합이 맞는 것이 있다면 테러리즘과 폭력을 늘 숭배한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유대인들에 의해 움직이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정치·경제·사회·문화계 등 각 분야의 30~35%가 유대인들이 장악해 있다. 중동정책에서도 미국 내 유대인 사회가 정계와 여론에 끼치는 영향력은 적지 않다. 하지만 그것은 미국의 전략적 이익과 관련되어 있을 때 성립이 가능한 이야기다. 이스라엘의 막강한 지위와 영향력도 '미국의 이익을 실현할 전략적 자산'의 범위 내에서만 보호받고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관계는 오래갈 수 없다. 시간으로 잴 수 없지만,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이스라엘과 아랍 이슬람 국가 간의 힘겨루기 결과에 따라 얼마든지 파경으로 치달을 수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동맹관계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오늘날 이스라엘은 미국의 보호 아래 레바논, 시리아, 사우디아라비아와 요르단을 포함한 팔레스타인 지역을 불안정하게 만들어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 지역패권 확보와 영토 확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속셈이다. 시오니즘 운동의 차원을 이미 넘어선 것이다. 맹목적 애국주의에 불을 붙인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미국의 지원을 받고 성장한 군사력이 자생력을 갖추게 되면 미국이 바라는 목표와 정면으로 충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의 정치·군사적 압력에 따라 이스라엘의 꿈은 현실과 이상 사이를 오락가락 하다가 환상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절망적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이스라엘이 미국에 대드는 행위, 즉 늘 있어왔던 '협박' 수준을 넘어 최후의 비밀무기(핵무기)를 들고 나와 '미치광이 행동'을 저지를 가능성이다. 그때는 최악이다. 그렇다고 마냥 나무랄 수도 없다. 견고한 동맹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미국으로서는 화약고를 짊어진 이스라엘에 '병' 주는 대신 달래면서 '약'을 먹이는 게 낫다. 지금까지 중동에서 이스라엘이 기고만장한 이유, 또 팔레스타인 민중을 대량학살해도 미국이 관대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오바마 정부가 제거해야 할 '폭력의 덫'
오바마 정부는 역대 정부가 중동에 설치한 '폭력의 덫'을 제거할까. 지금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비관적이다. 미국은 중동문제의 해결 주체가 될 수 없다. 비열하고 고약한 정복자 이스라엘을 앞세워 평화를 말할 수 없다. 지난날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같은 독재자를 부려 아랍민족주의 세력(이란)을 제거하는 미국식 공작정치도 문제다. 반미 대결구도만 양산할 뿐이다. 지금의 이란이 그렇다. 중동 통제가 불가능할 때만 이슬람 근본주의를 '적=테러단체'로 간주하는 한 미국 역시 분쟁을 야기한 당사자다. 폭력의 덫에 갇힌 것은 아랍민중이 아니다. 과거 미국과 이스라엘 정부, 서방언론들이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등에 씌웠던 저주의 가면이 이제는 팔레스타인의 하마스와 레바논의 헤즈볼라 등에게 대신 씌우며 중동평화를 방해하는 그들이다.
폭력의 덫을 거두려면 미국의 중동정책이 우선 바뀌어야 가능하다. 중동의 석유자원을 지배·통제하는 에너지 패권전략은 중동 분쟁의 근원이다. 아프카니스탄의 에너지 수송로를 장악하여 중국의 에너지 확보 전략을 견제하려는 계획이나, 기존 페르시아만 지역에서 페르시아만과 카스피해를 잇는 풍부한 석유·가스 자원과 에너지 수송망을 장악하는 확장 전략이 오바마 정부에서 멈추지 않는다면 중동의 위기는 더욱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이스라엘과 맺은 '특별한 동맹관계'는 아랍국가들을 위협하고 억압하고 고립시키는 그물망이므로 당장 폐기해야 한다. 이스라엘이 60여 년 넘게 저질러 온 점령과 약탈, 억압과 폭력에 신음하는 팔레스타인 난민문제와 독립국가 건설은 아랍국가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최우선 해결해야 할 국제사회의 숙제다.
오바마 대통령이 끝내는 군사력으로 저지하려는 이란의 핵개발 문제도 아프간과 아랍민족주의 흐름을 떼어놓고 해결할 수 없다. 1979년 미국의 지원으로 시작된 이란의 핵개발 프로그램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란으로 하여금 핵무기를 억제 수단으로 개발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위협을 당장 그만두는 것. 미국도 국제사회의 요구대로 확인 가능한 핵물질생산금지조약(FMCT)을 이제는 받아들이는 것. 핵보유국에게 핵무기 제거를 위한 선의의 노력을 의무화한 핵확산금지조약(NPT) 제4조를 다른 핵보유국과 마찬가지로 앞장서서 위반하는 미국이 먼저 충실히 이행하는 것. 이를 외면하면서 '스마트 파워 외교'를 운운하는 것은 정직하지 않은 태도다.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국무장관에게 권고한다. 곧은 시선으로 중동문제를 바라보는 지미 카터 전 대통령과 노암 촘스키 교수를 중동정책의 정치적 스승으로 모셔 과외를 받기 바란다. 지금 이대로는 불길하다. 국제사회가 절실히 바라는 것은 인류의 평화다. 전쟁과 학살, 폭력은 이제 그만!
Ø굴렁쇠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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