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3.07 10:26
수정 : 2009.03.07 16:12
클린턴, 이란에 ‘아프간 사태 해결모임’ 초청
러시아에도 비밀편지…외교정책 변화 가시화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가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힘을 모으자며, 이란에 손길을 내밀었다. 최대 외교난제를 최대 앙숙과 같이 풀자는 제안으로, 전임 조지 부시 정권 때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는 한마디로, 국제 현안 해결을 위해 적성국들과도 ‘대담하고 직접적인’ 외교를 펼쳐나가겠다는 오바마 판 ‘햇볕정책’이 본격적으로 시동단계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신호라고 할 수 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5일(현지시각) 벨기에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외무장관 회의에서 아프간 재건과 민주화를 위한 국제회의 개최를 제안하고, 이란도 초청할 뜻을 밝혔다고 <아에프페>(AFP)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클린턴 장관은 회의 뒤 기자회견에서 “아프가니스탄에 이해관계가 있는 모든 나라가 참여하는 ‘빅 텐트’ 미팅을 제안한다”며 “접경국인 이란도 참여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아프간 전략 국제회의는 이번 달 31일 네덜란드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란은 아직 공식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클린턴 장관은 “아프간과 파키스탄 국경지대는 9·11 테러(2001년), 마드리드(2004년)와 런던(2005년)에서의 폭탄테러, 베나지르 부토 전 파키스탄 총리 암살(2007년), 인도 뭄바이 테러(2008년) 등의 ‘신경 센터’”라며 “아프간과 파키스탄 문제를 단일한 전략적 관심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프간 인접국가들의 적극적 개입도 요구했다.
클린턴 장관은 최근 2001년 미군의 아프간 침공 때 강경 수니파인 탈레반 정권 축출을 위해 시아파 국가인 이란과 정례협의를 한 사실을 시인하며 “이란이 아프간 안정화에 유용한 구실을 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란과 아프간은 고대 페르시아 왕국에서 한 나라에 속해 있었고 파르시어 방언을 공유할 만큼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5일 “클린턴 장관의 제안은, 아프간이 미국 외교안보 정책의 주요 목표인 이란과의 외교 채널 개설을 위한 가장 확실한 수단을 제공할 수 있다는 미국 정부의 믿음을 강조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오바마는 이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에게도 편지를 보내, 이란 핵문제 해결에 협조하면 동유럽에서의 미사일 방어체제를 포기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유럽 나라들도 미국의 움직임에 발을 맞추고 있다. 이란과 비교적 원만한 관계에 있는 프랑스의 베르나르 쿠슈네르 외무장관은 “아프간 국제회의에 이란도 참석할 것을 희망한다”며 미국의 제안에 힘을 실었다. 앞서 4일에는 빌 람멜 영국 외무부 차관이 “레바논과 관계개선을 검토해 왔으며, 그런 뜻에서 헤즈볼라와 접촉창구를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레바논 연정에 참여할 만큼 엄연한 실세인 헤즈볼라를 인정하겠다는 신호이자, 헤즈볼라의 최대 지원세력인 이란을 의식한 조처라고 할 수 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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