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4.21 08:01
수정 : 2009.04.21 09:40
이란·쿠바 등 ‘화답’했지만 뚜렷한 수확은 없어
미국내 보수파 “성급하고 무책임” 반대 목소리
‘스마트 파워’를 앞세운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화해와 협력 외교가 고비를 맞고 있다. ‘스마트 외교’의 주요 공략 대상인 이란, 쿠바, 북한, 베네수엘라 등 이른바 ‘적성 국가’들과의 복잡한 수 싸움이 본격화하고 있다. 스마트 외교를 둘러싼 논란도 고개를 들고 있다.
■ 스마트 외교의 방향타, 이란과 쿠바
미국 스마트 외교의 최우선 대상은 이란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1월 취임연설에서 “움켜쥔 주먹을 펼 용의가 있으면 우리는 손을 내밀 것”이라며 이란을 향해 화해·협력의 키워드를 던진 이후, 다양한 화해 신호를 보냈다. 이란 핵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7자회담 속에서 이란과의 직접대화 틀을 마련했고, 최근에는 일정 기간 이란의 우라늄 농축을 용인하겠다는 방안도 내놓았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19일 테헤란의 검찰 총수에게 편지를 보내, 스파이 혐의로 8년형이 선고된 미국계 여기자 사건을 공정하게 조사할 것을 요청했다. 미국과의 화해 무드를 깨지 않으려는 의사를 드러낸 것이라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미국이 이처럼 이란에 공을 들이는 것은 인접한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때문이기도 하다.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까지 탈레반 세력에 위협당하고 있는 아프간·파키스탄 사태가 더 악화될 경우, 서남아의 광대한 지역이 모두 이슬람주의 세력하에 들어가게 된다. 페르시아만 지역과 자원의 새로운 보고로 떠오른 중앙아시아에 대한 전략적 접근권이 모두 차단되는 것이다.
쿠바와 중남미는 미국 외교의 명예를 회복시켜야 하는 스마트 외교의 또다른 우선 대상이다. 1800년대 중반 유럽의 중남미 개입을 불허한 먼로주의를 천명한 이후 사실상 미국의 배타적 뒷마당이었던 중남미가 조지 부시 행정부 시절 최악의 반미 지대로 변했기 때문이다. 미주기구(OSA) 정상회의에 참석했던 오바마 대통령은 폐막식인 19일 기자회견에서 쿠바가 공공의료 체계와 기술로 중남미 여러 국가들을 상대로 의료지원 활동을 펼치는 것을 다른 중남미 국가들이 극찬하는 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미국이 좀처럼 평가하지 않던 적성국가의 긍정적 부분을 인정하는 파격적인 말이다. 그는 “이 국가들과 우리의 상호작용이 마약 단속이나 군사적인 것뿐이라면, 우리의 영향력을 증진시킬 관계를 발전시킬 수 없을 것”이라며, 향후 미국 대외정책의 변화를 예고했다. 앞서 미국은 지난 13일 쿠바계 미국인의 쿠바 여행과 송금 제한 폐지를 뼈대로 한 봉쇄 완화 조처를 발표해, 대쿠바 정책에서 수십년 만의 최대 변화를 보였다.
■ 고개 드는 한계론
오바마 행정부의 스마트 외교는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에서 ‘포스트 아메리카’ 시대로 옮겨가는 시대적 조류에 밀린 산물이다. 미국은 패권의 한 축이던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까지 위협받고 있다. 오바마는 “미국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전례없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수차례 밝혀왔다. 오바마 대통령이 19일 “적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 미국을 강하게 한다”며 악수를 하고 공손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미국의 전략적 이해를 위태롭게 하지는 않는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오바마의 스마트 외교가 상대 국가들과의 샅바싸움 속에 아직 구체적 결실을 내지 못하자, 숨죽이던 미국 내 보수파들은 반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있다. 존 인사인 공화당 상원의원은 19일 <시엔엔>(CNN) 인터뷰에서 “미국 대통령이 세계에서 가장 반미적인 지도자 중 한 사람과 웃고 농담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은 무책임하다”며 오바마가 차베스와 악수하는 등 화해 몸짓을 보인 것을 비판했다. 민주당의 클레어 매캐스킬 상원의원도 “이제 우리가 적합한 조처를 했으니, 공은 쿠바에게 넘어갔다”며 압박했다.
미국과 우방국들을 둘러싼 이해관계도 복잡하다. 동유럽 미사일방어(MD) 중단을 러시아는 반기겠지만, 폴란드와 체코의 반발이 뻔하다. <이코노미스트>는 스마트 외교가 “극히 중요한 이해관계 앞에서 정권의 태도를 바꾸지는 못한다”며 “미국의 원칙과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복잡한 상황에 곧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뉴욕 타임스>는 “오바마가 새 시대에 맞게 부시의 외교 정책을 고쳐 쓰는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물려받은 외교 정책의 근본 틀은 대부분 그대로 유지한 채 새로운 언어로 포장했을 뿐”이라고 평가했다. <에이피>(AP) 통신은 오바마가 (소련 해체를 불러온)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 같다며 “옳은 것이 언제나 정치적으로 건강한 것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오는 29일로 출범 100일을 맞는 오바마 정부로서는 스마트 외교의 구체적 결실이 절실한 시점이다.
정의길 선임기자,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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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마트외교 이른바 ‘스마트 파워’에 기초한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대외정책 기조를 말한다. 스마트 파워란 군사력과 경제제재 등 ‘하드 파워’와, 정치·외교·문화적 접근 등 ‘소프트 파워’를 접목시킨 개념이다. 미국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스마트 파워 위원회’가 창안한 개념으로, 조지프 나이와 리처드 아미티지 등 초당적 인사가 참여해 2007년 11월 보고서를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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