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시사지 타임 지에 실린 한 기사를 통해, 그동안 미국 사회를 짓눌러 온 이 새로운 공황의 무게가 얼마나 큰 것인가에 대해 새삼 알 수 있었습니다. 타임 지에 '새로운 근검절약정신'이라는 기사에 따르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번 경제 한파로 인해 그들의 소비 패턴을 변화시켰고, 심지어는 앞으로 다시 미국 경제가 되살아나 정상으로 되돌아가더라도, 지금보다는 덜 쓰고 저축하겠다는 미국인들이 많이 늘었다는 내용도 실려 있었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전체 미국인들 중 12% 정도만이 앞으로 6개월 이내에 경제가 나아질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었으며, 절반 정도는 앞으로 1-2년 안에 경기가 나아진다고 생각했고, 14% 정도는 아예 이번의 공황적 파동이 앞으로 오래동안 지속될 경기한파의 시작으로까지도 보고 있었습니다.
특히 대공황이후 처음으로 겪는 이같은 경제한파의 특징으로, 소득에 관계 없이 모든 계층이 현 경제상황에 대한 우려와 근심을 나타냈으며, 개개인들의 삶을 더욱 가까이에서 조망할 때는 이 경제한파의 실상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적인 낙관주의랄까, 56%는 '언젠가는 좋은 날도 올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기사는 자신들이 실시했던 통계조사를 통해, 경제가 다시 회복세로 돌아서 번영을 구가할 수 있게 되더라도, 61%의 미국인들은 앞으로 지출을 줄이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미국민 전체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연수입 5만달러 이하의 가정의 34%가 생활비 문제 때문에 병원에 가지 못했으며, 31%는 직장에서 해고당한 경험이 있고, 13%는 제때 끼니를 때워보지 못한 적도 있었습니다.
한편, 이 통계조사에 따르면 연수입 10만달러 이상 가정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되는데, 이중의 4분의 1은 지금껏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소매점의 자사 상표 부착 물건들을 사 봤고(예를 들어 세이프웨이의 '셀렉트' 시리즈나, 혹은 코스트코의 '커클랜드' 브랜드 같은 것들), 36%는 할인 쿠폰이 있어야만 물건을 사고, 39%는 절약을 위해 휴가를 연기하거나 취소했다는 대답을 했습니다.
수입 수준에 관계 없이, 응답자들 중 40%는 걱정이 늘었다고 답했고, 32%는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20%는 우울증 상태였습니다. 또 43%의 사람들은 과거 그 어느때보다도 뉴스를 많이 시청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수많은 삶의 단면들이 이 공황으로 인해 바뀌었습니다. 보험 에이전트들은 디덕터블, 즉 보험의 공제액의 가입자 책임 부분을 늘리더라도 매달 내는 불입금을 내리려는 고객들의 문의가 밀려들고, 어떤 사람들은 조금 차가 낡았으면 자기차를 고칠 때 커버해주는 옵션은 아예 포기하는 계약자들이 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큰 범죄들이 늘진 않았지만, 그래도 앞으로 이 경기 악화 때문에 범죄가 늘어날 거라는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고, 이 때문에 총기를 구입하는 사람도 늘었습니다. '일단 지르던' 사람들이, "없으면 쓰지 않는다" 주의로 변했습니다. 문제는 이같은 것들이 '자신들의 의지'에 의한 변화가 아니라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변화'라는 것입니다.
깡통따개, 냉동 백 같은 '저장음식과 저장을 위한 도구'들의 매출이 15% 늘었다는 것도 한 변화입니다. 정원의 잔디밭을 야채를 가꿀 수 있는 밭으로 바꾼 집도 크게 늘었고, 감기약의 판매가 줄어든 대신 치킨 수프나 감기 예방용의 비타민 제제들의 판매가 늘은 것도 이 변화를 말해주는 또다른 잣대가 됩니다. 병물의 경우, 판매량이 10% 정도 줄었습니다. 도서관 이용자가 크게 늘고, 책방의 손님이 줄었습니다. 그리고 카메라의 경우, 지난해 대비 그 판매량이 33% 나 줄었습니다. '흥정'이 국민적 스포츠가 되고 있다는 농담도 들립니다. 타임지는 이밖에도 이번 공황에 의해 영향받고 있는 사람들을 집중 취재해, 미국의 현재 생활상이 어떤가를 보다 자세히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읽어보고 읽어봐도, 결론은 하나입니다. 미국은 그동안 '쓰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사회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다시 호황이 찾아오더라도, 그같은 '소비지상주의의 시대'는 꽤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을 것이란 사실입니다.
즉, 이는 대량소비와 생산을 위한 생산을 강조하는 생산주의로 나타나는 신자유주의의 본격적인 종말과 이를 바탕으로 한 사회의 해체, 그리고 새로운 포스트 생산주의 시대의 도래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대량소비를 전제로 한 대량생산의 사양화, 그리고 여기에 함께 묻어 도래하고 있는 환경주의 등등... 우리가 겪고 있는 변화는 어쩌면 이 시대가 반드시 치렀어야 할 홍역인지도 모릅니다.
이런 와중에서, 한국은 어디를 지향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 미국이 변화한다는 것은 결국 세계 '시장'의 변화를 캐치하고, 거기에 맞는 대책을 세울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수출지상주의 아래서, 계속해 수출지상주의를 고수할 경우, 어떤 식으로 이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생존할 수 있을런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단 미국도, 또 많은 다른 나라들이 내수의 촉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은 이를 위해서는 상위 1%만을 위해 존재하고 있는 경제정책 자체에 변화를 주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절박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보다 적극적인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배려 - 그것은 그들의 '구매력'을 실질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이어야 합니다 - 를 통해 내수를 촉진하고, 사회 상위계층의 세금 부담을 늘리고 그것으로 공익 자금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신자유주의는 분명히 저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변화하는 세계의 시스템 안에서, 우리는 분명히 보다 자주적으로 우리 경제의 앞날을 개척해나가야 할 기로에 서 있습니다. 국제적 실물경제의 변화는 우리에게 더욱 적극적인 변화의 모색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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