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6.04 19:31
수정 : 2009.06.05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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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순방에 나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4일 이집트 카이로대학교에서 미국과 이슬람권의 역사적 화해를 촉구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카이로/A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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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대학서 “평화 파트너십” 제안
“팔레스타인 국가건설 부인할 수 없다”
“앗살라무 알라이쿰.”(신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미국과 무슬림의 역사적 화해를 요구하는 연설은 4일 이렇게 시작됐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날 이집트 카이로대학 연설에서 미국과 무슬림의 “새로운 출발”을 제안했다. 그는 “의심과 불화의 반복을 끝내자”며 “미국은 이슬람과 전쟁을 하고 있지 않고, 결코 전쟁을 벌이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평화의 파트너십”을 맺고 미래로 함께 나가자는 제안이다. 오바마는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에 맞서 싸우는 게 대통령으로서 나의 임무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날 카이로 연설은 대선 후보 시절 이슬람 세계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취임 100일 이내에 무슬림 국가의 수도에서 연설하겠다고 한 약속에 따라 마련됐다. 그의 연설은 주요 방송을 통해 중동 지역에 생중계됐고, 백악관 홈페이지, 페이스북, 트위터 등의 인터넷 웹사이트에도 연설문 내용이 게재됐다.
그는 이날 특히 팔레스타인에 관해 이슬람권 쪽의 손을 들어줬다. 그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견딜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며 “미국은 존엄과 기회, 그리고 독립국가를 바라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열망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미국 대통령의 언급 중 가장 적극적인 것이다.
그는 “팔레스타인 국가의 건설을 부인할 수 없다”며,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와 이스라엘이 공존하는 ‘2개 국가 해법’을 “유일한 중동 평화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오바마는 “미국은 (팔레스타인 서안지역에서) 계속되는 이스라엘의 유대인 정착촌 활동을 용인할 수 없다”며 “정착촌 건설은 과거의 협정 위반일 뿐만 아니라 평화 달성의 노력을 저해하는 행위”라고 이스라엘을 강력히 비난했다. 그는 이스라엘 쪽에 “약속을 지키라”고 압박했다.
오바마는 무슬림 또한 미국을 인정할 것을 요청했다. “무슬림에 대한 고정관념이 맞지 않는 것처럼, 미국도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잔혹한 제국이라는 고정관념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중동지역의 최대 현안인 이란 핵 개발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두고서도 견해를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은 아프간 군부대를 유지할 의도가 없으며, 영구적인 군기지를 만들 생각도 없다”면서도 미국은 테러리스트들을 뿌리 뽑는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이란이 평화적인 핵에너지를 개발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이란이 핵무기를 보유하려 한다면 미국은 강력한 대처를 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랍연맹의 암르 무사 사무총장은 이날 “오바마 대통령이 수년 동안 지속된 서구와 이슬람 사이의 긴장과 대립을 끝낼 수 있을 것”이라며, 오바마 대통령은 중동 평화 진척의 ‘정직한 중재자’가 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당장 문제는 동지다. 이스라엘은 정착촌 건설 중단을 거부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역사학자인 모하마드 압둘라 알줄파는 “이스라엘이 2개 국가 해법을 수용하길 망설이는데, 아랍권에 무엇을 바라는가?”라고 되물었다. 오바마의 화해 몸짓이 공허한 메아리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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