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6.21 18:57
수정 : 2009.06.21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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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의보 대수술’ 성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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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청문회…7월 하원 논의…연말 법안통과
공공보험 대폭 늘려 의료비 인하 계획
보수파 저항과 재원마련 해결 ‘걸림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의료보험 혁명’에 나서면서 그 향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의 의료보험 개혁은 난제 중 난제인데다, 오바마의 진보정책 실현의 시험대로 꼽히기 때문이다.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은 의료보험 개혁을 두고 일대 회전을 벼르고 있어, 오바마 잔여 임기의 명운을 가를 한판 승부가 될 전망이다. 오바마는 최근 잇따라 “더이상 방치할 수 없다. 지금이야말로 의료보험을 개혁할 때다”라며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공화당은 재정적자 확대를 우려하며 반발하고 있다.
■ 고비용·저효율 대수술 시작 개혁법안 마련은 민주당이 맡았다. 헨리 왁스먼 의원은 19일 민주당의 의료보험 개혁안을 제시했다. 이번주 청문회 뒤 7월 중으로 하원에서 논의를 거쳐, 올해말까지 법안을 통과시킨다는 계획이다. 민주당의 의료보험 개혁 방향은 전국민 의료보험 확대, 의료보험 비용부담 축소로 요약된다. 선진국들 중 미국은 전국민 의료보험이 없는 유일한 나라다. 고비용, 저효율 구조도 뜯어고치겠다는 계획이다. 올해 미국 의료보험 비용은 국내총생산(GDP)의 18%에 이르고, 2040년에는 거의 3분의1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오바마는 지금을 의료보험 개혁의 최적기로 보고 있다. 민주당은 행정부와 의회를 동시해 장악해, 미국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특히,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민주당이 의료보험 개혁에 실패한 것은 두고두고 후회를 낳았다. 진보진영은 ‘의료보험 개선, 부유층 증세’ 등의 공약을 실현하라며 오바마를 압박하고 있다. 경제위기로 의료보험 탈락자가 속출하는 상황도 의료보험 개혁 필요성을 설득할 절호의 기회다. 최근 <뉴욕타임스>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 85%가 의료보험 개혁을 지지하고 보험료를 더 지급할 용의가 있다고 답했다. 오바마는, 의료보험 미가입자가 진료를 미루다 응급치료 비용 등으로 국가부담이 더 늘어나고, 과도한 의료비 부담이 가계의 가처분 소득을 줄이면서 경제성장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 커지는 재정적자 우려 문제는 ‘예산이 어디서 나오느냐’다. <워싱턴포스트>는 민주당 구상대로라면, 향후 10년간 약 1조~1조5천억달러의 비용이 추가될 것으로 분석했다. 민주당은 고소득층 세금 인상, 부가가치세 확대를 검토하는 한편, 노인과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의료보험의 효율성을 높여 정부 지출을 줄인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공화당은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데, 세금을 더 걷느냐’며 반대하고 있다. 미치 맥코넬 상원의원(공화)은 “전체 의료보험 비용은 더욱 늘어나고, 우리는 빚더미에 파묻히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 뿌리에 깔린 진보·보수 이념 차이 갈등의 뿌리에는 민주당과 공화당의 이념 차이가 똬리를 틀고 있다. 오바마는 전국민 의료보험 혜택을 추진하면서, 사보험에 맞서는 공공의료보험 체계를 갖추겠다고 밝히고 있다. 시장에 개입해 정부 역할을 확대하겠다는 뜻이다.
반면, 공화당은 정부의 공공의료보험 체계가 출범하면 각종 혜택에 힘입어 사보험 시장이 무너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공화당에서 “사회주의를 하자는 것이냐”는 반발이 나오는 까닭이다. 일부에서는 새로 출범하는 공공의료보험 체계가 정부의 지원을 받되 독자운영되는 ‘조합’ 형태를 갖추는 방식으로 양쪽이 절충할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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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파산자 62%가 “비싼 의료비때문”
세계 첫 민영의보 도입 미국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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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GDP중 의료보험비용 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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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의료보험 시스템은 문명화된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형편이 좋지 않다.
미국은 닉슨 행정부 시절인 1971년, 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인다며 세계 최초로 민영의료보험 시스템을 도입했다. 유럽이나 한국처럼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국가의료보험 시스템이 아니라, 민간보험회사가 가입자들에게 의료비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이런 민간보험 체계를 기반으로, 노인 및 장애인들에게는 ‘메디케어’, 저소득층과 임산부 등에게는 ‘메디케이드’ 등의 사회복지제도가 각각 연방정부와 주정부에 의해 운영되면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시스템이 중첩된다. <로이터> 통신의 최근 보도를 보면, 미국인 중에서 민간의료보험 가입자는 35%에 불과하다.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가 각각 전국민의 19%, 15%를 담당한다.
미국의 의료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싸다. 보험회사, 제약회사, 병원 등 의료시스템이 민간에 온전히 맡겨진 탓이다. 그래서 보험료도 비싸다. 4인가족 기준, 연간 의료보험료가 1만1천~1만4천달러(약 1390만원~1770만원)에 이른다.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의 혜택도 못 받는 저소득층은 병이 안 걸리기만 바라는 요행수로 버틴다. 보험없이 병원에 가면, 우리 돈으로 감기 한번에 10만원, 맹장염 수술 1000만원, 앰블런스를 불러 응급실에 가 외과수술 받고 열흘간 입원했다면 1억원, 이런 식이다. 지난해 미국 개인파산자의 62%가 의료비 때문이었다. 미국 의료보험 시스템을 고발한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를 보면,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한 남자가 나무를 자르다 중지와 약지 손가락 끝이 잘리는 사고를 당했는데 “손가락 봉합에 중지는 6만달러, 약지는 1만2천달러”라는 말을 듣자, 가운데 손가락을 포기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보험에 가입했더라도 계약에 명시되지 않은 진료에 대해선 보험 혜택을 못 받는다. <뉴스위크> 최근호를 보면, 2년 전 유방암 진단을 받은 캘리포니아에 사는 수잔 래코(59)는 유방절제술을 제안받는데, 비용이 10만달러였다. 이미 조직검사와 의사 면담 비용으로 1만달러 청구서를 받은 뒤였다. 래코가 가입한 보험사가 관련 치료에 대한 승인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결국 래코는 의료여행사를 통해 싱가포르로 떠났다. 수술비, 방사능 치료, 항공료, 호텔비, 수수료, 그리고 2주간의 발리 여행을 포함해 모두 3만달러였다.
권태호 기자 ho@hani.co.kr
의약업계·보험사 반발로 번번이 개혁 좌초
버락 오바마 행정부 이전에도 미국은 수차례 의료보험 개혁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오바마의 의료보험 개혁은 1993~1994년 빌 클린턴 대통령 이후 사실상 처음이다.
클린턴 정부 당시에도 전국민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하고 민간 의료보험 사이에 경쟁을 유도하면서 의료보험료를 정부가 통제한다는 구상이 나왔다. 하지만, 공화당과 의약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결국 좌초됐다. 또 당시 의료보험 가입 확대만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비용절감 부분을 설득해내지 못한 것도 실패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클린턴이 의회와 공조 없이 과도하게 의료보험 개혁을 몰아붙인 것도 실패한 핵심 이유로 꼽힌다.
오바마는 이런 실패에서 배우고 있다. 오바마는 의료보험 개혁을 외치면서도, 민주당이 의회에서 법안을 마련하도록 살짝 비켜나 있는 모습을 취하고 있다. 오바마는 최근 “내 방식”을 밀어붙이지 않겠다고 밝혔다. 또 미가입자 확대 못잖게 비용절감을 통한 효율성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에이피>(AP) 통신은 20일 이처럼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주지 않는 오바마의 태도가 민주당이 의회에서 법안을 마련하는 데 혼선을 낳는 면도 있다고 전했다.
앞서, 미국에선 1970년대에도 의료보험 개혁에 대한 공감대가 높았지만, 물가상승과 경기침체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스캔들과 맞물리면서 논의가 물건너갔다. 1965년 린든 존슨 대통령 당시 노년층을 위한 ‘메디케어’와 저소득층을 위한 ‘메디케이드’가 마련된 것은 미국 의료보험 체계의 주요 성과로 꼽힌다.
김순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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