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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6.02 18:46 수정 : 2005.06.02 18:46

워터게이트 사건을 폭로한 밥 우드워드(오른쪽)와 칼 번스타인(왼쪽) 전 <워싱턴포스트> 기자가 1일 워싱턴 인근 조지타운의 우드워드 자택 계단에서 기자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 \


“펠트, 닉슨을 나치같다 여겨”
우드워드 ‘FBI 정치이용에 경멸’ 등 추론

“왜 마크 펠트가 개인적 위험을 무릅쓰고 나에게 (정보를) 얘기했는지 의심하게 된 건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사임한 뒤였다. 내가 그 질문을 던질 때마다 펠트는 ‘나는 내 방식대로 그걸 해야 했다’고 똑같은 답변을 했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파헤친 <워싱턴포스트> 밥 우드워드는 해군 장교 시절 ‘디프 스로트’ 마크 펠트 전 연방수사국(FBI) 부국장을 알게 됐으며, 그가 왜 정보를 누설했는지는 지금도 의문이라고 2일 말했다.

우드워드는 이날 <워싱턴포스트>에 쓴 ‘마크 펠트는 어떻게 ‘디프 스로트’가 됐나’라는 제목의 장문의 기사에서 자신이 펠트와 교분을 맺게 된 과정과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의 만남 등을 자세하게 밝혔다.

우드워드는 해군 장교로 근무하던 1970년 백악관에 문서를 전달하러 갔다가, 역시 보고를 위해 백악관에 온 마크 펠트 당시 연방수사국 부국장을 처음 만났다고 밝혔다. 우드워드는 <워싱턴포스트>에 입사하기 전에 이미 펠트와 가까워졌다. 그 당시 펠트는 백악관을 “부패하고 부정직한 곳”이라 부르며 닉슨 행정부에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펠트가 닉슨 팀을 나치와 같다고 생각했다는 데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우드워드는 밝혔다.

1972년 6월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진 뒤 펠트에게 전화를 건 우드워드는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 사건은 앞으로 달아오를 것”이라는 얘기를 듣는다. 그 뒤 펠트가 전화를 받지 않자 우드워드는 집으로 펠트를 찾아갔고, 이 자리에서 펠트는 “절대 전화를 걸지 말라. 앞으로 모든 얘기는 직접 만나서 하자”고 은밀한 접촉 요청을 받아들였다.

영화 <대통령의 사람들>에 나오는 대로, 우드워드가 자신의 아파트 베란다의 화분 위치를 바꾸면 그날 밤 두사람은 워싱턴 시내의 지하주차장에서 만나게 된다.


우드워드는 “그 당시엔 내용이 맞느냐 틀리느냐가 중요했기에, 제보자의 제보 동기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닉슨이 사임한 뒤 비로소 펠트의 정보 제공 동기에 의문을 품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펠트의 동기를 정확히 알 순 없지만 몇가지 추론을 내놓았다. “펠트는 자신이 연방수사국을 보호하고 있다고 믿었다. 펠트는 백악관이 연방수사국을 정치적 목적에 활용하려 한다며 경멸했다”고 그는 밝혔다. 우드워드는 또 “펠트는 자신이 (1972년 숨진) 에드거 후버 연방수사국장의 후계자가 될 것으로 확신했다”고 밝혀, 이 부분도 정보 누설 동기가 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2차대전 때 방첩요원으로 활동한 펠트가 우드워드를 자신의 요원으로 생각하고 게임을 즐겼을 가능성도 있다고 그는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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