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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진 애국심 반영” “표현의 자유 왜 막나” 미국 국기인 성조기를 불태우는 등 훼손하는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헌법 개정안이 미 하원을 통과하면서 이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미 하원은 지난 22일 ‘의회는 미국 국기에 대한 물리적 모독을 막을 권한을 갖는다’는 문구를 새로 담은 헌법 개정안을 찬성 286표, 반대 130표로 통과시켰다. 이 개정안은 과거 6번이나 하원을 통과했으나 상원에서 모두 부결됐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원 내 공화당 의원 수가 늘어 통과될 가능성이 높아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다. 애국이냐, 표현의 자유냐=성조기 훼손 처벌을 원하는 사람들은 이 개정안이 9·11동시테러 이후 깊어진 미국민들의 애국심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랜디 듀크 커닝햄 공화당 의원은 “세계무역센터에 서서 사람들에게 물어본다면 모두가 개정안을 통과시키라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필 깅그레이 공화당 의원 “국기 방화는 자유를 보호하려는 국가에 대한 도전”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존 코니어스 민주당 의원은 “우리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순간 언론과 종교 자유에 대한 제한으로 가는 길도 멀지 않다”고 맞받아쳤다. 개정안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는 미국시민자유연합(ACLU)는 “진정으로 애국하는 길은 이 나라에서 자유와 이견을 표현할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개정안은 지난 1989년 대법원이 ‘국기보호에 대한 연방법과 48개 주법’이 표현의 자유를 규정한 헌법에 위배된다며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나온 것이다. 공화당 의원들과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아예 헌법을 바꾸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러나 매번 상원에서 통과에 필요한 유효 득표수에 약간 모자라 통과에 실패했다. 1995년과 2000년 상원 표결에선 63표 대 37표로 부결됐다. 상원의원 수의 3분의 2인 67표에 4표가 부족했던 것이다. 하지만, 공화당이 지난해 11월 선거에서 4석을 더 얻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통과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표냐, 가치수호냐?=이 개정안을 둘러싸고 민주당 의원들은 ‘표’와 ‘가치수호’ 사이에서 곤혹스러운 상태다. 전통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중시해 온 민주당이지만, 9·11동시테러 이후 성조기가 국기 이상의 상징을 띄게 되고 공화당이 ‘애국심’을 자극해 총선과 대선에서 이겨왔기 때문에, 마냥 ‘표현의 자유’를 외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제럴드 내들러 민주당 의원은 “공화당원들이 9·11테러를 착취하고 있다”고 비난했지만, 민주당 전략가 크리스 러헤인은 “의미도 없는 상징 싸움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며 다음 선거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힐러리 클린턴 등 일부 의원들은 국기에 대한 존경을 드러내면서도 헌법 개정에는 반대한다는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힐러리 의원는 22일 성명을 내어 “성조기 훼손을 금지하는 법안에는 찬성하지만 헌법 개정이 답은 아니다”라며 “국기를 훼손하는 사람에 대해 헌법을 고칠 만큼 대응할 가치가 있는가”라고 밝혔다. 미 상원은 이르면 다음달 이 법안에 대해 표결할 예정이다.
강김아리 기자 a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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