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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25 08:02 수정 : 2005.07.25 08:03

"폭탄을 투하하자 마자 우리는 180도 방향을 틀어 달아났고 곧 섬광을 봤다. 누군가가 '이 전쟁은 끝났다'고 말했다."

60년전인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미군들 가운데 한 생존자가 전한 당시의 상황이다.

시사주간지 타임 최신호(8월1일자)는 원폭 투하 60주년에 즈음한 특집 기사에서 당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행 폭격기에 탑승했던 미군 4명의 회고담을 전했다. 다음은 이들의 회고 요지.

◇ 시오도어 밴 커크(84. 당시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한 B-29 폭격기 '에놀라 게이' 항법사) = 1994년 내 지휘관으로 부임한 폴 티베츠 대령이 "우리는 지금은 밝힐 수 없는 임무를 수행하게 될 것"이라면서 "이 일이 제대로 진행되면 전쟁은 상당히 일찍 끝나게 된다"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그런 이야기는 이미 여러번 들었다"고 생각했다.

8월5일 저녁 10시나 11시에 우리는 소집돼 핵폭탄 투하 임무를 부여받았다. 우리는 얼마간 눈을 붙이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어떻게 잠을 이룰 수 있었겠는가. 다음날 새벽 2시45분 우리는 출항했다.

450㎏이나 되는 폭탄이 떨어져 나가자 가벼워진 비행기는 순식간에 솟아 올랐다. 우리는 180도 방향을 틀어 가능한 한 최대의 속도로 현장을 벗어났다. 잠시 뒤 원자폭탄이 폭발했고 충격으로 우리가 탔던 비행기가 요동쳤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섬광 뿐이었다. 누군가 "이 전쟁은 끝났다"고 말했고 나도 같은 생각을 했다.

◇ 모리스 젭슨(83. 당시 '에놀라 게이' 무기 시험관) = 내 임무는 회로를 작동하는 배터리에서 시한장치와 기압계 스위치에 이르기까지 모든 전자장치를 점검하는 것이었다. 나는 투하 30분 전 원폭에 연결된 초록색 테스트용 플러그를 제거하고 빨간색 폭발용 플러그를 연결했다.

그동안의 시험 결과대로라면 폭탄은 투하된지 43초만에 폭발하게 돼 있었다. 폭탄이 투하된 후 나는 마음속으로 43초를 셌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진정으로 걱정되는 순간이었지만 몇초 뒤 비행기 앞부분에 타고 있던 사람들로부터 섬광이 보였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아래를 바라본 사람들에게 거대한 구름과 섬광, 검고 흰 연기의 파괴 흔적이 보였다. 아래쪽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우울한 순간이었기 때문에 누구도 기뻐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임무는 완수됐다.

◇ 프레드릭 애슈워스(93. 당시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한 '복스카' B-29기의 발사담당자) = 8월9일 오전 1시30분 명령을 받고 '복스카'에 집합하자 기장인 찰스 스위니 소령과 엔지니어가 비행을 위한 시험을 하고 있었다. 예비 탱크의 휘발유를 공급해주는 펌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으나 지휘관인 티베츠 대령은 비행에 큰 지장이 없다는 이유로 출발할 것을 지시했다.

우리는 랑데부 지점에서 폭발 측정과 관측을 담당한 다른 두대의 비행기와 만나기로 돼 있었지만 관측기가 나타나지 않았다. 35분 뒤 우리는 첫번째 공격목표로 예정돼 있었던 고쿠라로 갔으나 구름이 너무 짙어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없었다. 결국 우리는 두번째 목표였던 나가사키로 갔지만 그곳도 기상예보와는 달리 구름이 짙어 시야가 분명하지 않았다.

우리는 목표물에 대한 시야가 확보될 때에만 폭탄을 투하하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휘발유가 고갈돼 가고 있던 상황이어서 나는 기장에게 레이더를 사용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때 폭격수인 커미트 비헌 대위가 목표물을 식별해 냈다고 소리쳤다. 구름사이로 난 구멍을 통해 목표물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폭탄은 투하됐다.

우리는 기지가 있던 마리아나 제도의 티니안 섬 대신에 가까운 오키나와에 비상 착륙했다. 이미 휘발유는 완전히 고갈돼 있었다. 티니안 기지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일본인들이 항복하기 위해 스위스에 도착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돌아보면 우리는 그 상황에서 해야 할 일을 했고 그것은 전쟁을 끝내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 일에 참여할 수 있었다는 것을 행운으로 생각한다.

◇ 찰스 앨버리 (84. 당시 '에놀라 게이'에 동행했던 비행기의 부조종사. '복스카'에도 탑승) = 8월6일 우리의 임무는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의 폭발과 방사능을 기록하기 위한 장비를 투하하는 것이었다. 폭탄과 측정장비가 투하되고 우리 비행기가 회전한 후 나는 내 생을 통틀어 가장 밝은 빛을 봤다. 버섯구름의 꼭대기에서는 가장 무서우면서도 가장 아름다운 온갖 무지개 색을 볼 수 있었다.

이어서 누군가가 비행기를 두세 차례 내리친 것과 같은 충격이 왔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나는 "주여, 밑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돌봐 주소서"라고 기도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8월9일 고쿠라로 출격할 때는 날씨가 좋지 않았다. 두번째 공격 목표인 나가사키조차 구름에 휩싸여 시계가 확보되지 않았다. 우리는 레이더에 의존해 원폭을 투하하거나 바다에 이를 버리고 가야 하는 선택에 직면하게 됐다. 결국 구름 사이로 난 구멍을 통해 시야가 확보돼 공격 목표였던 언덕의 한쪽에 폭탄을 투하했다. 나가사키 인구의 대부분은 언덕의 반대쪽에 살고 있었다. 구름 사이의 구멍이 수많은 민간인의 목숨을 구한 셈이다.

http://blog.yonhapnews.co.kr/choow/

(뉴욕=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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