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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08 16:06 수정 : 2005.08.08 16:06

7일 폐암으로 사망한 피터 제닝스(67)는 지난해까지만해도 톰 브로코(NBC), 댄 래더(CBS)와 함께 미 공중파 방송의 3대 스타 앵커로 이름을 날린 ABC 방송의 간판 앵커다.

특히 그는 ABC '월드 뉴스 투나잇' 프로그램에서 22년간 앵커로 활약하며 국제 뉴스에 대한 오랜 경험과 감각, 부드러운 목소리를 바탕으로 도시 지역 시청자들을 비롯한 모든 미국인들의 안방에 뉴스를 전달해왔다.

대형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제닝스는 뉴스 화면을 떠나지 않았는데 지난 2001년 9.11 테러 당시에는 사건 발생후 1주일간 무려 60시간에 걸쳐 방송하기도 했다.

제닝스는 당시 "앵커라는 직업이 대중에게 매일 밤 그들의 집과 마을, 국가가 안전하다는 것을 재확인시켜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소신있는 앵커관을 펴기도 했다.

지난 4월 폐암 진단을 받은 뒤 그는 방송을 통해 거친 목소리로 "여러분 가운데 일부가 알고 있듯이 제가 폐암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상태가 좋은 날은 방송을 계속할 것이지만 제 목소리가 항상 지금 같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었다.

그는 이후 종종 사무실에 나오거나 전화 또는 e-메일로 뉴스 아이템을 정하는 회의에 참석하는 등 방송제작 활동을 지속해왔으나 결국 그가 약속한 방송출연은 하지 못한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1938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태어난 제닝스는 지난 2003년까지 캐나다 국적이라는 것과 고졸 출신이라는 사실로 인해 방송가에 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오타와에서 성장한 제닝스는 9살 때 캐나다 CBC에서 어린이 쇼를 진행한 것이 첫 방송계 입문으로, 이후 사립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온타리오 라디오에서 일하다가 62년 CTV 공동앵커가 됐으며 64년 뉴욕으로 건너와 ABC에 입사했다.


그러나 그는 83년부터 ABC 방송의 간판 앵커로 밤 뉴스를 진행하면서도 캐나다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부모 때문에 캐나다 국적을 버리지 못했다.

제닝스는 이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9.11 테러를 계기로 미국 사회와의 깊은 유대를 느끼게 돼 2003년 국적을 취득하고 뒤늦게 미국 시민이 됐다.

당시 그는 "9.11 테러와 뒤이은 미국 여행에서 미국과의 유대감을 새롭게 느끼게 됐다. 미국에 관한 책을 집필하는 동안 건국시조들의 꿈과 미래에 대한 이상에 훨씬 더 가까이 연결되는 느낌을 갖게 됐다"고 시민권 취득의 소감을 밝혔었다.

제닝스는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특파원으로 일하면서 중동 전문가로도 명성을 얻어 74년에는 이집트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에 대한 인물보도로 피바디상을 수상하고 72년 뮌헨올림픽때는 아랍의 대이스라엘 테러공격을 심층보도하는 등 언론인으로서 14차례의 에미상과 2차례의 피바디상, 7차례의 외신기자클럽상을 수상했다.

부시 행정부의 감세정책을 비하하고 이라크 전쟁 반대파의 입장을 주로 전하는 등 보수파로부터는 '너무 진보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제닝스는 작년 대선때는 존 캐리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대통령'이라고 호칭,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데이비트 웨스틴 ABC 회장은 "그는 암 치료가 어려운 싸움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주의와 용기, 그리고 자신이 행운아일 것이라는 굳은 희망으로 이에 맞섰다"며 "그러나 결국 그는 행운아가 아니었다"며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유족으로는 아내 케이스 프리드와 1남1녀가 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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