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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14 02:34 수정 : 2005.08.14 02:40

"여기저기서 살려 달라는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소방대장은 교신이 되지 않는 무전기에 욕설만 퍼붓고 있었다"

"4명의 상관이 4개의 다른 지시를 내리면 어떻게 하란 말이냐" "지휘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현장에 있던 사람 모두가 지휘자였다"

지난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테러에 의해 무너져 내리던 당시 세계 최대의 도시라는 미국 뉴욕의 비상대처 체제는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테러가 발생하자 마자 소방대원과 구조요원들이 즉각 출동, 현장에 속속 도착했지만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해야 할지 지휘하는 사람도 없고, 물어볼 사람도 없이 우왕좌왕했던 모습이 당시의 녹취록에 의해 생생하게 재연된 것.

뉴욕시 소방국이 뉴욕주 대법원의 결정에 따라 12일(현지시간) 마지 못해 공개한 자료에는 당시 현장에 투입된 소방대원과 의료진 500여명의 육성이 편집된 15시간 상당의 무선 교신 녹음 테이프와 1만2천여 쪽에 이르는 녹취록 등이 담겨 있다.

이들 자료에 따르면 첫번째 비행기가 세계무역센터를 강타한 이후 상황대처에 대한 초기 지휘체계가 확립되지 않은채 현장과 지휘자간 무선 교신도 매끄럽게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두번째 비행기의 강타와 세계무역센터 건물의 붕괴 등 또다른 위기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었음에도 불구, 지휘자들이 대형참사에 대한 `평범한 대처절차'를 밟아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테러가 발생하자 마자 시 소속 앰뷸런스 뿐아니라 자원봉사대 등 민간 소속 앰뷸런스도 수십대가 현장에 도착했지만 환자를 돌보기 위한 시스템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 의료진은 화재지휘본부에 도착했을 때 책임자가 작동되지 않는 무전기에 욕설을 퍼붓는 것만 보았다고 밝혔다.

이번에 공개된 자료는 특히 응급의료 활동의 문제점을 보여준다고 뉴욕타임스는 13일 지적했다. 응급의료기술자인 알란 쿡은 "많은 사람들은 당시 응급의료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잘 모른다"고 지적했다.

앞서 이 자료들을 열람한 독립 조사위원회는 9.11 테러에 대한 뉴욕시의 대응에 큰 허점이 있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긴급 교신은 제 기능을 하지 못했고 경찰과 소 방국간 협력도 적절히 이뤄지지 못했으며 긴급 메시지는 전달되지도 않았다는 것.

이에 대해 소방국측은 "9.11 이후 큰 변화가 있었고, 특히 교신체계에 대한 광범위한 개선이 이루어졌다"면서 "지금은 대규모 비상사태에 대처하기 위한 준비가 잘 되어 있다"고 말했다.

뉴욕시 소방국이 공개한 자료에는 대참사의 현장이 육성으로 담겨 있어 유족들의 아픔을 더해주고 있다.

한 소방대원은 "파란색 옷을 입은 여성이 건물에서 뛰어내려 하늘을 가로 질러 다른 소방관 위로 떨어졌다"며 끔찍한 광경을 전했다. 또 무선교신 테이프에는 한 시민이 "갇혀서 숨을 못 쉬겠다. 살려 달라. 공기가 부족하다"고 고통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담겨 있었다.

소방관 모린 매카들-슐만은 사람들이 WTC에서 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마치 종교의 희생의식을 보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죽음을 선택했는데 나는 그걸 지켜보고 있었다. 더이상 볼 수 없어서 나와 다른 사람은 눈길을 거두고 벽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사람들이 (땅에) 부딪히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고 말했다.

일부 소방관들은 이 기록에서 북측 타워가 무너지기 전에 대피 명령을 받았으며

일부 동료들을 타워를 떠났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시 북측 타워에서 대피해 살아남은 뒤 은퇴한 소방관 제리 라일리는 "

그런 대혼란은 이전에 들어본 적도 없다"며 "9ㆍ11 전에도 소방 분야에서 무선교신

이 열악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우리는 관련 훈련을 받은 적도 없다"고 말했다.

은퇴한 소방대장 알 푸엔테스도 "당시 현장에서 철수하기 전에 교신상황이 너무

좋지 않아 소방관들이 수신호에 의존해야 했을 정도"라고 전했다.

한편 BBC는 이번에 공개된 자료로 당시 343명에 달하는 소방대원들의 희생을 막을 수 있었는지 여부에 대해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고 전했다.

소방관 유족들은 정보 공개로 쌍둥이빌딩의 북쪽 타워에 있던 소방대원들 상당

수가 남쪽 타워 붕괴 뒤 무전 대피 명령을 들었으나 무시하고 구조를 계속하다 화를 입었다는 주장에 대해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당초 뉴욕타임스는 2002년 정보자유법에 의거해 기록 공개를 요청했으나 뉴욕시의 거부로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3월 뉴욕주 대법원은 문제의 소지가 있는 부분은 제외할 수 있다는 조건 하에 정보 공개를 명령하며 뉴욕타임스의 손을 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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