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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9.05 23:23 수정 : 2005.09.05 23:23

"미국의 유일한 유럽도시" 또는 "재즈의 발상지" 등으로 불리는 뉴올리언스가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황폐화됐다. 피해의 정도로 볼 때 이 도시가 재건될 지 아니면 다른 곳에 다시 지어질 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AP통신과 CBS방송 등에 따르면 미시시피강 어귀 바로 옆에 있는 뉴올리언스는 지난 1718년 태어났다. 프랑스 귀족인 장-밥티스트 르 모인이 엔지니어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만든 이 도시의 첫 이름은 `라 누벨 올리언스(La Nouvelle Orleans)'였다. 이 도시는 그후 첫 4년간 4차례나 허리케인으로 황폐화됐다.

스페인은 1763년 전쟁으로 뉴올리언스를 차지했으나 나폴레옹은 1800년 다시 이 도시를 빼앗았다. 프랑스는 1803년 다시 이 도시를 독립한 지 얼마안된 미국에 1천500만달러를 받고 팔았다.

뉴올리언스는 그 뒤 대형 국제항구 덕분에 남부연방의 가장 크고 가장 부유한 도시가 됐다.

이 도시는 그러나 그 위치 때문에 바다로부터의 공격에 취약했다. 프랑스와 스페인계 주민들은 1815년 전쟁에서 군인, 노예, 민병대, 인디언, 해절들과 합세해 영국군과 싸워야 했다.

또 모기에 의한 황열병이 1800년대 중반 해마다 퍼져 수천명이 사망했고, 화재와 치명적인 허리케인, 홍수 등이 도시를 공격했다.

그래도 뉴올리언스는 사람을 끄는 도시였고 이 도시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종종 이곳에 눌러 앉았다. 이 도시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연간 1천만명이 넘고 이 도시에서는 연간 3천회의 회담과 총회가 열린다.

가장 유명한 행사는 `지상 최고의 공짜 쇼'로 불리는 마르디 그라(Mardi Gras).


이 카니발은 매년 이 도시에 10억달러 이상의 수입을 가져다 준다. 마르디그라는 지난 1837년 시작됐는데 항상 1월 6일(크리스마스부터 12일째 되는날) 시작된다고 해서 "12번째 밤(The Twelfth Night)"이라고도 불린다. 축제기간에는 곳곳에서 가장 무도회가 열린다.

이 도시는 좋은 음식점들과 멋진 재즈로도 유명하다. 연례적으로 재즈축제가 열리며 장례식에서도 재즈가 연주될 정도다. 미국에서 가장 이국적인 도시로 통한다.

그러나 이같은 겉모습 뒤에는 50만명의 주민과 인종차별이 있다. 이들은 4분의1이 빈곤선 이하에서 생활하는 등 대부분 가난하고, 66% 이상이 흑인이며, 73개 지역에 모여 거주한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닥치기 전에도 범죄율은 높았다. 살인률은 최근 감소했지만 아직도 전국 평균의 10배나 된다. 지난해 연구조사의 일환으로 경찰이 도시 지역에서 700발의 공포탄을 발사했지만 총기발사를 경찰에 신고한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었다.

이 도시의 학교체제는 난장판이다. 학교 교육당국은 거의 파산지경에 이르렀고 교사들은 봉급을 못받을 뻔 했다. 루이지애나주의 78개 최악의 학교들중 55개가 뉴올리언스에 있다.

뉴올리언스는 인종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흑백으로 분리된 도시다. 지난 1896년 일명 플레시 대 퍼거슨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은 인종격리를 합법화했다. 이 사건은 뉴올리언스에서 일어났다. 흑인인 호머 플레시는 백인만이 타도록 돼 있는 열차칸에 탔다가 백인에게 좌석을 양보하지 않아 체포되고 기소됐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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