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타임스 현직기자의 '102분' 출간
미국시간으로 2001년 9월 11일 오전 8시 46분. 뉴욕 세계무역센터 안에는 1만4천 명의 사람들이 출근해 하루 업무를 시작할 준비를 하거나 전망 좋은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민항기 한 대가 110층 짜리 북쪽타워(제1무역센터) 94~99층 사이를 충돌한다. 폭탄이 터진 줄로 착각한 사람들은 우왕좌왕하기 시작한다. 그로부터 정확히 16분 28초 뒤인 9시 2분 59초. 다른 민항기 한 대가 이번에는 북쪽타워와 비슷한 높이의 남쪽타워(제2무역센터) 77~85층 사이를 들이박는다. 9시 59분 남쪽 타워가 무너지기 시작했고 29분 뒤인 10시 28분에는 북쪽타워마저 붕괴된다. 항공기가 충돌한 층에 있다가 즉사한 사람은 600여 명이었고, 충돌 당시에는 무사했으나 건물에 갇혀 있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도 1천500여 명에 달했다. '102분'(동아일보사 펴냄ㆍ홍은택 옮김)은 당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9.11테러의 현장에서 사투를 벌였던 평범한 사람들의 생존 스토리다. 저자는 뉴욕 타임즈 현직 기자인 짐 드와이어와 케빈 플린. 특히 플린은 9.11 테러 당시 경찰 출입기자였다.저자는 무역센터 건물 밖 사람의 시선이 아니라 건물 안에 있었던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생존자와 목격자들의 인터뷰, 무전 교신, 전화 메시지, 육성 증언의 필사본, e-메일 등 방대한 자료들을 퍼즐 조각 맞추듯 서사 구조로 재구성한 것이다. 저자는 시종 건물이 붕괴하기 전까지 북쪽 타워에서는 102분, 남쪽 타워에서는 57분 동안 대피할 시간이 있었는데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희생될 수밖에 없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취재 결과 다양한 문제점들이 발견된다. 사무 공간만 11만2천 평에 달하는 무역센터 건물에는 대피할 수 있는 비상계단이 달랑 세 곳에만 설치됐다. 반면 사무공간 6만3천평에다 102층 규모의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은 무역센터건물보다 40년 가량 늦은 1931년 지어졌는데도 복도계단이 9곳이나 있다. 이는 1968년 뉴욕시 건축 안전수칙이 완화됐기 때문. 타이타닉호 침몰 이후 구명정의 정원이 승객 절반에도 못 미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는 점을 상기하면 '대형사고는 결국 인재'라는 말을 새삼 떠올리게 한다. 경찰의 초기 대응도 문제였다. 1차 충돌 이후 제5 세계무역센터에 있는 항만청 소속 경찰서로 문의 전화가 빗발쳤지만 경찰관들은 대부분 그들에게 그 자리에 있을 것을 권했다. 경찰이 대피 명령을 내린 것은 남쪽 타워가 붕괴하기 시작한 지 13분 뒤인 10시 12분이었다. 그뿐 아니라 경찰과 소방관은 서로 교신도 되지 않아 건물이 무너진다는 소식은 경찰만 알고 있었으며, 건물 내화 설비에 대한 실험은 2004년 여름에서야 미국국립표준기술연구소에 의해 이뤄졌다. 항공기 테러는 알 카에다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훨씬 전부터 거론됐던 것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타워 건설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항공기가 북쪽 타워를 쳐들어가는 그림을 뉴욕 타임스에 광고로 실었고, 건물이 연료를 가득 채운 보잉 707기가 건물에 충돌하는 상황을 전제로 설계됐다는 증언도 뒤늦게 나왔다. 책에는 장애인 친구 옆에서 구조를 기다리다 운명을 같이 한 사람, 26㎏이나 되는 소방장비를 착용하고도 계단을 뛰어올라가 남쪽 타워 78층에 갇혀 있던 부상자들을 구해낸 구조대원 등 감동적인 이야기도 소개된다. 404쪽, 1만4천500원.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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