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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9.08 13:53 수정 : 2005.09.09 13:59

검붉은 물에 갇힌 도심에는 헬기 소리 요란

재즈의 도시 뉴올리언스의 다운타운은 언뜻 한가로운 마천루의 숲이었으나 머리를 아래로 돌리면 사자들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시커먼 독수의 그릇이었다.

모든게 잠겨있다. 일반 도로도, 프리웨이도, 전찻길도, 그리고 그 길들을 달리던 차량들도, 옛 조상들의 묘지도 예외없이 독수에 잠겨 썩어가고 있었다. 죽음의 늪에서 생명의 움직임은 감지 되지 않았고 썩는 냄새는 시간이 흐를수록 눈을 아리게 했다.

주민들이 완전히 철수해야 하는 8일(이하 현지시간)의 마감시한을 하루 앞둔 7일 루이지애나 주도 배턴 루지에서 평소 1시간여이면 닿을 70마일 거리를 5시간만에 간신히 도착해 확인한 다운타운에는 어느 구석에서도 재즈의 향기를 맡을 수 없었다. 뉴올리언스 도심을 통과하는 Ⅰ-10번 프리웨이가 차단된 가운데 주방위군의 허가를 받아 웨스트뱅크(서안)쪽에서 미시시피강을 건너는 `미시시피 리버 브리지'에 올라서 내려다본 도심은 유령의 도시였다.

평소 관광객들을 실은 유람선이 활기차게 출발하고 내륙을 오가는 상선들이 닻을 내리던 미시시피항구에는 정박해 있는 대형 구축함 위로 수색 및 구조용 헬리콥터들이 쉴사이없이 뜨고 내렸다.

눈을 왼쪽으로 돌리니 뉴올리언스가 자랑하는 슈퍼돔이 흰색 덮개를 대부분 광 흉물스럽게 버티고 있었다. 한 때 이 지역 경제를 살려온 자긍심의 상징은 언제 파괴시켜 버릴지 모르는 괴물 신세로 전락해 있었다. 이날 캐슬린 블랑코 루이지애나 주지사의 한 측근은 CNN과의 회견에서 심각하게 상처입은 슈퍼돔을 무너뜨리는 방안을 마련중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차를 몰고 리버 브리지를 건너 다가간 다운타운에서는 역겨운 냄새가 맨 먼저 맞이했다. 무너진 둑을 타고 들어온 물이 생활하수, 자동차 오일과 부동액 등 각종 화학물질, 시신 부패에 따른 독성물질, 인근 정유소 등에서 흘러나온 화학물질 등과 어우러지며 독수로 변했고 고인 물이 햇볕을 받으면서 열심히 역한 냄새를 풍겨댔다.

뉴올리언스의 `명동'이라는 델가도커뮤니티컬리지 인근 도로에는 수백대의 차량들이 누런 부동액을 토해내며 독수에 잠겨있었다. 이곳에서 한 블록 건너면 뉴올리언스의 중심중의 중심가인 `캐널스트리트'. 평소 운치있는 전차들이 다니며 유럽풍 정취를 선사하던 이 거리 역시 검붉은 물속에 잠긴채 가로에 심겨진 야자수만이 옛 영화를 증명하는 가운데 강풍에 숱한 창문이 깨져나간 유명 호텔들이 을씨년스럽게 버티고 있었다.

졸지에 뭍을 잃은 비둘기들은 수재민들이 음식물을 버리고 간 고가도로에서 생명줄을 찾았지만 움직일 수 없는 공동묘지의 영혼들은 고스란히 찬 물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곧이어 9일동안 흑인 거주지역에서 머물던 20여명의 수재민이 주방위군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탈출, Ⅰ-10번 도로위에서 간단히 검사를 받게 되면서 비로소 사람들의 웅성거림을 들을 수 있었고 이들은 곧바로 뉴올리언스 컨벤션센터 옆 임시수용소로 옮겨졌다.

임시수용소 경비 책임을 맡고 있는 돈 소프(49) 헌병대장은 "1987년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1년간 춘천과 용산에서 근무했었다"며 "이곳에서 이재민들을 접하면서 용산근무 시절 물난리가 나 이재민들을 구했던 기억이 났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들른 매터리의 한인 거주지역은 이날 현재 물에 잠겨있지는 않았으나 대부분 발목까지 침수됐던 상태라 거의 집을 새로 지어야할 형편이었다. 더구나 에덴본 거리의 소깎 잡화상 K마트는 일부 주민들의 약탈로 거의 모든 물건이 사라진 상태이고 건너편 술판매점은 원인모를 화재로 폭삭 주저앉아 있었다.

통행금지 시간인 오후 6시 이전에 서둘러 나오기 위해 배턴 루지로 발길을 돌리려는 순간 이미 도로는 차량의 행렬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비상용으로 차 트렁크에 넣어놓은 2갤런짜리 휘발유통에서 쏟아져 차안으로 흘러오는 휘발유 냄새가 수십년동안 침전돼 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와 함께 소용돌이친 미시시피 강변의 늪에서 나오는 악취와 더해지며 4시간여의 귀환길은 또다른 고통의 시간이었다. (뉴올리언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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