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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9.10 07:03 수정 : 2005.09.10 07:03

조성인씨 “이제 다시 일어서기엔 너무 힘겨워”

"온 몸을 던졌고 이제 살만하다 했는데...그래도 몸은 성하지 않느냐고 자위하며 살아야 합니까?"

그야말로 맨 밑바닥에서 시작해 안해본 것이 없는 25년의 미국 생활에서 마련한 집 3채를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아귀에 고스란히 빼앗겨 버린 뉴올리언스 한인이 뒤늦게 알려져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딸 7, 아들 1명 등 8형제중 셋째로 태어나 지독히 가난하게 살던 올해 61세의 조성인씨(여)가 한국 땅을 버리고 미국 땅을 밟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꼭 25년전인 1980년 3월 3일.

초청결혼 비자를 받아든 당시 36세의 조씨는 정작 루이지애나 땅을 밟고도 신랑될 사람을 만나지도 못했고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데다 돈도 없어 우선 미국 가정에서 청소를 해주고 잠자리를 해결하면서 채소가게, 식당 등 업소를 가리지 않고 일했다.

미국 입국 2년만인 1982년 한인 남자를 만나 결혼했으나 8개월만에 헤어져야 했고 고단한 삶은 1985년 재혼하고서도 한동안 계속됐다.

재혼해 가정을 꾸렸지만 여유가 없어 식모살이를 계속해야 했던 조씨는 남편과 근근이 모은 돈으로 조그만 미용재료 가게를 차리면서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고 급기야 1992년 10월 뉴올리언스 다운타운 인근에 처음으로 '내 집'을 마련하고는 밤새 울음을 쏟았다.

하지만 행복한 순간도 잠시였다. 결혼 10년만인 1995년 갑자기 남편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떴고 또다시 혈혈단신의 고단한 삶이 시작됐다. 하지만 뉴올리언스의 중심가인 캐널스트리트에 가발, 미용재료 가게를 운영하면서 고독함을 떨쳐낼 수 있었고 틈틈이 모아지는 돈으로 집을 2채나 더 늘릴수 있었다.

3채 모두 흑인 주거지역과 인접한 곳에 마련했고 최근 은행 대출이 끝나면서 보험가입도 해지한뒤 이중 싱글홈 1채를 팔기 위해 가진 돈을 모두 쏟아부어 리모델링까지 끝내고 33만9천 달러에 내놓았다.


나머지 1채의 싱글홈은 30만 달러 상당이고 월세 675달러를 받던 타운하우스는 대략 16만 달러 상당.

온 몸을 아낌없이 던졌고 홀몸이지만 여생은 남부럽지 않게 살수 있겠다며 잠시나마 행복할 수 있었던 조씨는 갑작스레 닥친 카트리나로 3채 모두 완전히 수장되는 깊은 생채기에 한동안 실성한 사람이 됐으나 지난해 만난 미국인 남자친구와 함께 앨라배마에 잠시 머물며 정신을 차렸다.

'복자'라는 이름이 싫어 '성인'이라는 이름을 쓴다는 조씨는 "어이가 없더라. 안쓰고 안먹고 안입으면서 모았다. 페인트 칠도 내가 했고 정원 관리도 내가 했다. 뼈가 부서져라 일해 모은 것들이 눈깜짝 사이에 물속에 잠긴 것을 상상하겠느냐"면서 "물이 빠지고 나면 현장에 들어가 확인해야 겠지만 건질 것은 땅덩어리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씨는 "워낙 피해자가 많아 1인당 보상액이 2천달러일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며 "죽은 남편의 연금으로 받는 월 500달러로 입에 풀칠은 면하겠지만 너무 힘에 겨워 다시 일어설 지 모르겠다"며 한숨 쉬었다.

(뉴올리언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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