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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1.28 21:50 수정 : 2015.01.29 11:34

쿠바 수도 아바나 혁명광장에 위치한 내무성 건물 외벽에 쿠바 혁명 지도자 중 한명인 체 게바라의 얼굴과 함께 ‘영원한 승리의 그날까지’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 아바나/박현 특파원

[쿠바 개혁·개방 현장을 가다]
“미국과 수교는 환영, 미국식 자본주의는 경계”

지난 23일(현지시각) 낮 쿠바 수도 아바나 시내에 있는 아바나대학 법대 앞 이그나시오 아그라몬테 광장. 19세기 스페인 식민지 시절 쿠바 혁명가의 이름을 딴 이 광장은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이 학생 시절 바티스타 독재정권 타도를 외쳤고, 집권 시절엔 대미 정책을 비롯한 주요 연설을 했던 유서깊은 곳이다. 그러나 이제 광장은 물론 대학 건물 어디에서도 반미 구호를 찾아볼 수 없었다. 1959년 혁명군이 독재정권 군대로부터 빼앗아 학생운동 지도부에 선물로 보내준 빛바랜 탱크 한대만이 광장 한켠에서 혁명의 역사를 웅변하고 있을 뿐이었다.

학생들은 지난해 말 발표된 미국과의 외교관계 정상화 선언을 환영하면서도 기대와 우려가 뒤섞인 반응을 보였다. 법대 3학년생이라는 에스페란사는 “희망을 느끼지만 동시에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우려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쿠바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 근처 카페에서 만난 한 학생은 이름을 밝히길 꺼리면서도 좀더 솔직하게 속내를 털어놨다. 친척이 미국에 산다고 밝힌 그는 “미국과 수교가 되면 미국으로 건너가고 싶다”고 했다. 지금 변호사 시험 공부를 하고 있다는 그는 “여기선 변호사가 돼도 월급이 적어 생활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라고 했다.

시민들 “경제발전 기대…돈이 힘”
“반미는 정치인이나 신경쓰는 것”
개혁개방 모델 중국·베트남 꼽아

아바나 시내 곳곳에서 만난 시민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반세기 동안 쿠바 사회를 지배했던 반미 구호는 더이상 시민들의 화두가 아니었다. 한 시민은 “반미는 정치인들이나 신경 쓰는 것이지, 나처럼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일반 시민들에겐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며 “미국과 관계 개선이 되면 쿠바 경제를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의 2011년 자영업 자유화 조처 이후 식당을 연 로바니 에르난데스(48)는 “(미국과의 수교를) 매우 환영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날을 기다렸다”며 “앞으로 미국 관광객이 많이 들어오면 매상도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캐나다 관광객은 한해 100만명이 넘지만 미국인은 금수 조처 탓에 10만명 수준에 머물러 왔다.

“왜 우리는 휴대전화가 없을까”

이날 오후 쿠바 혁명광장에서 만난 시민들 가운데 일부는 이번 선언에 경계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1959년 혁명 전처럼 미국에 종속돼 빈부격차와 퇴폐문화가 유입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였다. 국영기업에 다닌다는 마르코 산체스는 “1959년 이전 자본주의 기간에 미국인들은 사탕수수 등 주력 산업 대부분을 소유했다. 또 미국 부유층들은 당시 쿠바에서 카지노와 매춘 등을 즐겨 좋지 않은 인상이 각인돼 있다”고 말했다. 광장 한쪽 내무성 건물 외벽엔 카스트로 형제의 혁명동지인 체 게바라의 얼굴과 함께, 그가 1965년 또다른 혁명을 위해 콩고로 떠나기 전 피델 카스트로에게 보낸 편지 말미에 썼던 것으로 유명한 ‘영원한 승리의 그날까지’(Hasta la Victoria Siempre)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희망과 경계감이 뒤섞여 있지만 쿠바 사회가 변화의 한복판에 서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였다. 라울 카스트로는 지난달 연설에서 사회주의 혁명 고수 방침을 재천명했고, 군부와 고위 공무원 등 기득권 세력들도 이런 시각을 갖고 있다. 그러나 평범한 시민들 사이에선 이미 자본주의적 문화와 사고방식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었다.

한 관광 가이드는 현재 젊은이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있는 곳은 한국의 호프집과 비슷한 바(술집)라며 “아마 돈을 긁어모으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샹그릴라’라는 바에 가보니 젊은이들로 북적댔다. 비키니 차림의 여성들이 현란한 춤을 추는 뮤직비디오와 함께 팝송이 흘러나왔다. 한 젊은이는 “그전에 주말에 친구들과 말레콘 방파제에 가서 술을 마셨으나 항상 그렇게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여긴 분위기도 좋고 너무 재미있다”고 말했다. 이곳 종업원은 “주말에는 하루에 150~200명 정도 온다”고 했다. 40대의 한 시민은 “쿠바가 못살지만 자연환경이 너무 좋고, 돈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다”며 “머니 이즈 파워”(돈이 힘이다)라고 했다. 그는 쿠바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라고 설명했다. 관광산업을 비롯한 주요 산업이 외국인에게 제한적으로 개방되면서 외부 세계에 대한 소식을 접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는 “왜 우리가 이렇게 못사는지, 왜 우리는 휴대전화가 없는지를 보면서 많은 걸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그러나 쿠바 사람들은 미국식 자본주의를 대안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쿠바식 개혁·개방의 롤 모델에 대한 질문에 대부분 시민들은 중국과 베트남 방식을 거론했다. 다만, 아바나대 출신의 한 변호사는 “우리는 중국·베트남과 달리 여전히 세계 최대 경제대국인 미국으로부터 금수조처를 당하고 있어 더 어려운 처지다. 쿠바식 모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와 기업을 통틀어 유일하게 아바나에 진출해 있는 코트라의 서정혁 아바나무역관장은 “쿠바인들은 자존심이 매우 세다. 주권을 침해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매우 강한 반발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자본주의 도입 실험은 현 정부에는 스스로를 위태롭게 만드는 ‘트로이의 목마’가 될 수 있다. 일부 시민들은 중병을 앓고 있는 피델 카스트로가 숨지고, 현재 84살인 라울 카스트로가 2018년 임기를 마치고 퇴진하면 현 체제가 어떻게 될지를 두고 수군댔다. 한 시민은 이번 선언에 대해서도 라울 카스트로가 국민들의 불만을 잠재우려는 술책이라는 의구심을 감추지 않았다. 좀더 빠른 개혁개방을 지지한다는 그는 “미국과 수교함으로써 국민들이 기대감을 갖게 해 정권의 수명을 연장하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또다른 시민은 “카스트로 형제의 영향력이 워낙 강해 이들이 살아 있을 때까지는 시민들이 가만히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이들이 사라졌을 때 쿠바의 미래는 쿠바 시민들이 선택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바나/박현 특파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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