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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1.28 21:59 수정 : 2015.01.29 10:10

[쿠바 개혁·개방 현장을 가다] (1) 반미에서 선회, 왜?

침묵 깨고 최근 개혁 지지글 기고
거처 철통경비…국민들 여전히 존경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피델 카스트로(89)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26일(현지시각) 마침내 말문을 열었다. 지난해 12월17일 쿠바가 미국과 관계개선을 선언한 이후 그의 침묵이 계속되자, 아바나에선 그가 이 선언을 반대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에서부터, 한때 사망설까지 돌았다.

피델은 공산당 기관지 <그란마>에 실린 편지에서 “정치적 적대세력을 포함한 전세계 국민과 항상 협력하고 우정을 나눠야 한다”며 “(라울이) 부여받은 권한에 맞게 적절한 조처를 취했다”고 밝혔다. 그는 “나는 미국의 정치를 믿지 않으며 그들과 대화한 적도 없다. 그러나 이것이 갈등의 평화적 해결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평생의 적이었던 미국에 대한 불신을 여전히 갖고 있지만, 이번 선언을 사실상 지지한다는 의미다. 피델은 2006년 장출혈 수술을 받은 뒤 동생 라울에게 임시로 권력을 이양했다가 2008년 2월 국가평의회 의장직을 공식적으로 물려줬다. 다만, 중요한 현안에 대해선 피델과 상의를 한다는 합의가 있었다. 쿠바 전문가로 피델과 여러 차례 만났던 줄리아 스웨이그 전 미국외교협회 선임연구원은 “피델과 라울의 메시지는 그동안 똑같았다”고 말했다. 피델은 2008년 은퇴 이후에도 유명 인사나 학자, 기자 등을 초청해 토론을 즐기고 신문에 자주 기고를 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정당한 사상은 승리할 것이다’라는 제목의 신문 기고를 끝으로 이런 활동마저 중단했다.

지난 22일 찾아간 아바나 외곽 하이메니타에 있는 그의 거처는 고요했다. 과거 외국인 소유 골프장 시설을 개조해 만든 그의 거처는 그리 높지 않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야자수를 비롯한 각종 수목이 무성했다. 입구는 경비병들이 철통같이 막고 있어 접근 자체가 불가능했다. 인근 주민은 입구에서 1㎞ 정도 가면 그의 거처가 있다고 했다. 입구에서는 경비병 숙소만 볼 수 있었다. 이 주민은 “최근 몇년간 코만단테(사령관)가 들고 나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 쿠바 사람들은 지금도 피델 카스트로를 혁명 당시의 직함인 ‘사령관’으로, 라울 카스트로를 ‘국방장관’으로 부르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지금도 피델 카스트로에 대한 존경심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아바나에 있는 혁명박물관 1층엔 피델의 사진과 함께 1975년 공산당 전당대회 당시 그의 기조연설 발표문에 포함된 한 구절이 적혀 있었다. “(쿠바 공산당의 역사에서) 완전히 새로운 여정이 시작됐다. 이 길은 멀고 험할 것이다.” 40년 뒤인 지금도 이 구절은 그에게 여전히 유효해 보였다.

아바나/박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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